대학을 휴학하고 집에서 열심히 놀고 있을 무렵, 한 교수님의 전화를 받았다. 뭐하고 지내냐 물으시기에 "그냥 있어요."라고 답했더니 교수님 왈. "그래요. 존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 그렇다. 존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존재하는 것만 해도 우리는 에너지가 닳는다. 몸에도 기초대사량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마음이라고 그런 게 없을까. 우리가 목숨을 부지하려고 하는 생존활동들은 정신적인 에너지가 소모된다. 사람들과 부대끼고 일을 하는 것. 미래를 걱정하고 대비하는 것. 그것만 해도 충분히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 그래서 남은 시간 동안 재미를 느낄 에너지조차 없는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내가 재밌어했던 모든 것들에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날들도 있다. 바야흐로 인생의 노잼 시기. 뭘 해도 재미가 없고 무료하고 지루하고 이 지루한 삶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아득하기만 하다. 아무것도 재미있는 게 없다며 투덜대다가 또 한편으로는, 재밌는 것이 인생의 기본값이 아닌데 재미가 없다고 투덜댈 필요가 있나 싶다. 산다는 건 말 그대로 사는 것이고, 존재하는 것이고, 생존하는 것인데. 재미라는 것은 있다 없다 하는 것 아닌가. 재미가 없으면 뭐 어때. 그저 생존하는 데나 집중하자 싶다. 그러다가 또 한 편의 한편으로는, 이렇게 계속 재미가 없다면 생이 너무 길고 지루하겠다는 절망도 든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 상 이런 노잼 시기에는 뭘 해도 노잼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이 딱히 없었다. 그저 참고 생존하는 데 집중하다 보면, 언젠가는 또 뭔가 재밌는 것이 생기겠지. 안 생기면? 그럼... 그냥 존재로서 존재나 하련다.
하지만.
생겨요.
언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