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9 - 중요하고 귀찮은

by 백홍시

싱크대 대청소를 했다. 이사 온 직후에는 주 3회 정도는 싱크대 대청소를 했었는데 요즘은 설거지나 제대로 하면 다행이다. 부모님 집에 얹혀 살 땐 요리와 설거지 정도나 가끔 했었기 때문에 청소에 관해서는 대부분 혼자 살고 나서 배웠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배수구 안쪽까지 청소를 해야 하는 것이나, 가스레인지 삼발이를 청소해야 하는지도 그 전엔 몰랐다. 사실 대학 시절 1년 정도 혼자 살았고 졸업 후에는 동생과 또 1년 정도를 살았는데, 그때도 청소에 대한 지식은 전무했다. 그럼 어떻게 살았느냐고? 청소를 안 하고 살았지, 뭐. 그리고 그땐 그게 더러운 줄도 몰랐다.

이제 제대로 독립한 지 4년 차에 접어들지만 청소와 수납을 본격적으로 배워본 건 이번에 이사하면 서다. 그 전에는 그냥 내가 아는 지식 안에서 쓸고 닦고 청소하고, 청소가 잘 안 되는 것들만 인터넷에서 부분적으로 찾아서 따라 하곤 했다. 거의 보이는 곳만 청소하는 식이었는데 그래도 깨끗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제 사람답게 좀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한창 우울하던 시기여서 새 집이 더러우면 더더욱 우울해질 것 같기도 했다. 원룸 생활을 하면서 늘 내가 임시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시로 산다는 건 내가 좋아하는 작가 채사장이 팟캐스트에서 했던 말이다. 좋은 때가 오면 그때 뭘 해야지, 하고 지금은 늘 임시로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그 좋은 때가 언제 올 줄 알고. 어쩌면 인생 전체가 임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원룸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언제인지는 몰라도 원룸을 벗어나게 되면 그때 집도 좀 꾸며 보고 제대로 살아야지 생각했다. 지금까지 거쳐 온 집들을 모두 나름대로 좋아하긴 했지만 나는 그들을 ‘임시 거처’ 쯤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KakaoTalk_20190719_002334999.jpg 햇빛 소독 중인 침대 식구들.

이번에는 임시로 살지 않으리, 그런 마음으로 이사를 준비하면서 수납, 정리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았다. 세상에 그렇게 많은 수납, 정리 책들이 있는 줄은 몰랐다. 몰랐던 수납 아이디어와 청소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이 청소 전문가나 전업주부들이 쓴 책이라 그런지 청소 루틴이 내 기준으로는 놀라울 정도였다. 이대로라면 청소를 하다 하루가 다 갈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그들은 4인 가구이고 나는 1인 가구니 좀 띄엄띄엄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나만의 1주일 청소 루틴을 만들었다. 3개월이 지난 지금 그 루틴은 잊힌 지 오래다. 변명을 하자면, 사실 혼자 살면서 설거지, 청소기 돌리기, 물건 제자리에 놓기만 매일 잊지 않고 해도 어느 정도 깨끗함은 유지된다. 원래가 더러운 나로서는 이 정도만 해도 그럭저럭 깨끗하다 생각하며 살 수 있다. 귀찮을 땐 이 조차도 안 해서 문제지만.

예전에는 청소 같은 걸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하다 보면 되겠지, 생각했다. 지금은 수납, 청소, 정리를 배우는 것이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생각이 든다. 깨끗하게 청소하는 법을 알고, 보기 좋게 정리하는 법과 편리하게 수납하는 방법을 아는 것. 집을 깨끗이 가꾸고 내 물건들을 말끔히 정리하는 것은 나로 하여금 ‘임시로 살지 않게’ 해 준다. 내가 나를 잘 보살피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은 안정감과 안락함을 느끼게 해 준다. 삶이라는 것은 일상의 반복이고, 청소는 그 일상 깊숙이 파고들어 있는 너무나 가까운 일이다. 그런 청소에 대해 한번쯤은 공부해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아, 청소의 중요성을 이렇게 피력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청소가 싫다. 머리로 아는 것과 몸이 반응하는 것은 다르니. 오늘도 나는 집에 오자마자 벗은 옷을 대충 행거에 걸쳐 놓았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어지르는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혼자 살면 ‘치우는 사람’ 따로 있지 않으니, 많이 어지르지는 말자고 다짐은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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