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거겠지만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가 달라진다. 가끔 궁금하다.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며 보내는지. 그래서 나의 과거 경험을 끄적여 본다.
20대 후반 4년 동안 나는 애니메이터로 근무했었다. 구체적으로는 2D 동화 애니메이터, 흔히 ‘동화맨’이라고 부르는 직업이다. 회사에 다녔지만 정규직원은 아니었기 때문에 상당히 자유로웠다. 일단 출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서 제각기 다른 시간에 출근했다. 나는 입사 초기에는 10시 30분 정도에 출근했고, 나중에는 점점 늦어져 거의 12시 가까이 되어 출근했던 것 같다. 월급제가 아니라서 늦게 출근한다고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일단 출근을 하면 책상에 일이 놓여 있다. 일은 1,2개가 있을 때도 있고 벌써 여러 개가 쌓여있을 때도 있다. 일이라는 것은 서류봉투에 넣어진 그림들이다. 나는 일단 그것들을 다 열어서 정리를 하고 예상 퇴근시간을 대충 계산했다.(대부분은 틀렸지만.) 보통은 늦게 출근하다 보니 일 좀 정리하다가 보면 점심시간이 되어 버려서 밥을 먹는다. 밥을 먹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일 하는 시간. 가장 급한 일을 꺼낸다. 이어폰을 끼고 선을 긋다 보면 일이 끝난다. 끝난 일은 제출하고 다음 일로 넘어간다. 작업을 하다 보면 시간이 굉장히 빨리 갔다. 1,2시간이 10분 20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오늘 할 일을 다 하면 퇴근. 하지만 바쁠 때는 내일로 넘어가는 일이 있어서 일을 남겨둔 채 퇴근하곤 했다. 퇴근 시간은 일의 양에 따라 달랐지만, 여하튼 밤중에 퇴근하는 일이 잦았다. 출근 시간이 늦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퇴근할 때는 배가 고파서 종종 편의점엘 들러 간식거리를 사서 먹곤 했다.
재작년부터 작년 초 까지는 백화점 내 베이커리에서 직원으로 근무했었다. 직원 출입구를 지나 출근을 하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3층 탈의실로 간다. 그곳은 손님에서 직원으로 변신하는 공간. 저마다의 개성이 깃든 옷은 캐비닛에 고이 넣어 둔다. 그렇게 직원이 된 후 지하 1층으로 출근한다. 출근하면 쇼케이스에 불을 켜고 주방에도 인사를 한다. 베이커리는 오전에 할 일이 많다. 일단 커피를 뽑을 에스프레소 기계를 예열해 둔다. 그리고 바닥을 한 번 쓸고 닦는다. 빵 포장에 필요한 가격표를 뽑고, 빵 바구니에 기름종이를 깔아준다. 조금 식은 빵부터 예쁘게 진열한다. 모닝빵이 식으면 모닝빵을 포장한다. 앗, 벌써 영업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나온다. 매장 앞에 서서 소리에 맞춰 인사를 한다. 이때부터는 빵 진열과의 전쟁이다. 빵이 계속 나온다. 포장이 필요한 빵들은 포장을 하고, 크림빵 등 냉장 빵은 포장 후 냉장고에 진열한다. 손님이 오면 계산을 한다. 식빵이 식으면 식빵을 썰어서 포장한다. 그렇게 전쟁 같은 오전 시간이 지나고 오후반이 출근하면 즐거운 점심시간이다. 지하 식당은 넓고 커피도 저렴해서 좋았다. 식당 앞에는 종종 직원들을 타깃으로 하는 할인 매대가 생기기도 했다. 밥을 먹고 나서 여자 휴게실로 가는데, 종종 사람이 꽉 차서 줄을 서야 할 때도 있다. 그래도 10분이라도 편한 의자에 앉아 쉬겠다는 일념으로 기다린다. 그렇게 1시간의 휴식시간이 지나면 다시 복귀. 오후에는 손님 응대와 매장 정리를 하다 보면 금방 퇴근시간이 되었다. 오전 근무 때는 퇴근을 하고 백화점을 잠깐 구경하며 지하 식품매장에서 돈을 잔뜩 쓰기도 했다.
끈기 없는 내가 ‘일상’을 알 정도의 기간 동안 근무한 것은 이 두 직업뿐이다. 생각해 보면 어떤 일을 하든 그 안에서 낙을 찾을 수 있어야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애니메이터로 일하던 시절에는 일하면서 팟캐스트나 노래를 하루 종일 듣는 것이 낙이었고, 베이커리에서 일할 때는 아침에 빵 냄새를 잔뜩 맡을 수 있는 것이 낙이었다. 그런 소소한 행복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이상, 지금은 낙이 없어 힘든 백홍시의 과거 회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