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창작이든 창작물이라는 것은 하나의 대화라고 생각한다. 이름 모를 타인과의 대화가 될 수도 있고 혹은 누군가를 겨냥한 대화가 될 수도 있고, 자신과의 대화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종종 글을 쓰거나 만화를 그리면서 짜릿함을 느낀다. 그 짜릿함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첫째는 내가 하고픈 말을 세상에 내보인 그 사실 자체이고 둘째는 누군가가 내 말에 반응을 해 준다는 사실이다.
내가 하는 말에 아무도 답이 없다면 그것은 메아리도 치지 않는 곳에다 대고 소리를 지르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들어주는 이 하나 없는 데서 말을 하는 것은 얼마나 외로운가. 한도 끝도 없이 고독한 일이다. 하지만 단 한 명이라도 내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 준다면 별 것 아닌 말일지라도 그것은 그들과 나의 대화가 된다.
내가 창작하는 내용들이란 건 대체로 내가 실생활에서 하지 못 하는 말들이다. 왜 하지 못하느냐 하면, 아무도 그 말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서다. 고독한 이야기,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우울과 불안에 대한 이야기, 삶의 의미에 대한 생각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고민, 진리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들. 이런 이야기는 내 주변의 누구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쩌면 나 또한 그럴지도 모른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는 더 그렇다. 누군가 나에게 우울한 이야기를 하면 내심 진저리를 칠지도 모른다.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좀 슬픈 사실은 예전에는 그들과 분명 이런 비슷한 주제로 꽤나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사실이다. 어릴 때는 그랬다. 모두가 미성숙하던 시기에 우리는 종종 마주 앉아 의미 없는 삶에 대해서도 논해 보고, 서로의 우울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대화가 사라졌다. 우리는 실용적인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대화에서는 직장이나 돈이나 남자 친구가 더 중요해졌다. 당장 내 눈 앞의 고민들, 그러니까 월급이나 집값, 어떤 옷을 살 것이며, 어떻게 다이어트를 할 것인지가 중요해졌다. 모두의 마음은 바빠졌고 빈틈없이 현실에 발을 딱 붙이고 있었다. 그런 대화가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대화만을 나누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어쩔 수 없는 헛헛함이 밀려들곤 했다.
감성적인 말들은 언젠가부터 '오글거리는' 말이 되었고, 고민을 털어놓는 일은 묻지도 않은 'TMI'가 되었고, 진리이니 하는 것들은 일찍이 '뜬구름 잡는 소리'가 되었다. 언젠가 참석했던 모임에서, 인생의 진리를 논하는 어느 책에 대해 누군가가 "이런 고민들은 청소년기에 끝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날 밤에 그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쩌면 다들 이런 고민들은 애초에 끝내고 사는 것일까? 모두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이것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지 않아서일까? 나는 평생에 걸쳐 고민할 것 같은데. 만약 정말 그렇다면 나는 너무나도 외로워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혼자 한없이 고독해질 것 같았지만 글을 쓰고 만화를 그리면 달랐다. 그곳에는 언제나 나의 글과 만화를 읽어 주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저 독백으로만 끝날 줄 알았던 내 만화는 내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나 혼자 이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구나.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반가웠다.
마음이 바닥나버려 살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나는 현실에서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만화가 되어 누군가에게 공감을 받았다. 나는 그렇게 마음의 독을 조금 채웠다.
예전에 한 독자 분으로부터 정성스러운 글을 받은 적이 있다. 죽음까지 생각할 만큼 힘든 시기를 보내던 중에 내 만화를 보고 너무나도 큰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분은 나에게 감사하다고 했지만 오히려 감사한 것은 나였다. 혼자 외롭지 않으려고 그린 만화가 생각지도 못 하게 남의 인생에 손톱만큼이라도 도움을 주었다니 놀랍고 감사했다.
생각해 보면 나도 그런 순간들이 많았다. 어떤 책의 한 페이지 전체가 마치 내가 쓴 듯이 너무나도 공감이 되어서 눈물이 날만큼 위로받았던 순간, 어느 노래의 첫마디를 듣는 순간 내 맘속 이야기를 꺼내 준 것 같아서 몸에 전율이 돋던 순간. '누군가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다. 그 사람과 만나는 것이 글이 되든 만화가 되든 노래가 되든 강연이 되든 상관이 없다.
이 넓디넓은 세상에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섬에 갇혀 있다. 산다는 것은 외롭고 고독한 일이다. 하지만 타인의 섬에도 내 섬에 있는 코코넛 나무가 있고, 우리 둘 다 코코넛 열매의 맛을 알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가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열매를 혼자 꼭꼭 씹어 삼킬 수밖에 없지만, 열매의 맛이 어떤지 나눌 수는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열매를 글로 엮는다. 남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미래에 이 열매의 맛이 필요할 때에 스스로 목을 축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창작이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대화의 형태다. 독자들에게도 공감과 위로가 되면 좋겠지만, 설사 그러지 못한다 해도 나는 계속 창작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런 대화를 속으로 다들 나누고 싶겠지?' 하는 궁금증과 바람을 조금 담아서 던져 보는, 외롭지 않기 위한 나의 작은 몸부림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