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37 - 냉동실

by 백홍시

여행 전에는 플레이리스트를 싹 뜯어고치고 가.
그리고 여행지에서 계속 그 노래들을 듣는 거지.
여행지의 추억을 노래에 꽁꽁 얼려 놓는 거야.
노래라는 게 참 괜찮은 냉동 창고더라고.
한참 나중에라도 그 노래를 들으면, 냉동된 추억들이 살살 녹아 나와.
거기에는 풍경도 있고 사람도 있고 냄새도 있고 소리도 있다?
공기의 온도며 바람 소리, 잠깐 스쳤던 완전한 타인들의 수다라든지, 마침 이 소절을 들을 때 뚱뚱한 참치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었던 기억도.
입안에서 살살 굴리며 천천히 녹여 봐.
방금 만든 것만은 못 하지만 허기를 채우기엔 충분해.
어쨌거나 냉동실이 꽉 차 있으면 마음이 든든한 법이지.
마음이 출출한데 먹을 게 없다면, 오랜만에 냉동실 한번 열어 볼래?
우리 엄마가 그랬어.
냉동실에 있는 건 절대 안 상한다고.


그렇게 나는 방금 오로라를 또 보고 왔지.
추워서인지 감동해서인지 눈물을 찔끔했던 기억과 함께, 몇 시간 동안 설산에서 떨며 저릿해진 발가락의 통증까지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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