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수가 거듭될수록 아내의 몸은 생기를 잃었고 그만큼 더욱 깊은 동굴로 들어갔다. 첫 항암주사를 맞고 2주가 지나자 어김없이 머리가 하나 둘 빠져나갔다.
아내의 부탁으로 머리를 밀러 가던 날의 기억이 또렷하다. 미용실 갈 용기가 없어 가발 피팅룸으로 발길 했다. 몇 번이나 쉐이빙이 가능한지 확인했고, 그분들은 능숙하게 다른 이가 볼 수 없도록 커튼을 치고 눈물 닦을 티슈를 준비해주었다.
결국은 가족이다. 아내가 위축되지 않도록 아이들과 힘을 북돋아주기 위해 노력했다. 매일매일이 힘겨웠지만 그 속에서 감사함을 찾았다. 소소함 속에 감사함을 일기로 적었고, 어느 날 카페에 올렸던 글을 보고 한 업체가 항암일기를 웹툰으로 그려보고 싶다고 연락했다.
처음 생각은 No였다. 세상에 알리려 쓴 글도 아니고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현재의 이 감정을 느낌을 나중에도 간직해 보고 싶었고, 그렇게 웹툰 제작에 응했다.
유방암카페에 올렸던 간병일기 원본
"아빠, 나 시험 끝났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밝은 목소리 만으로 얼마나 기분이 홀가분할지 선명하게 그림이 그려진다.
"그래, 고생했다. 우리 딸~ 병원이니까 잠시 뒤에 전화할게"
아내는 정말 괜찮다며, 나가서 딸내미 맛있는 점심 사주고 오라며 손짓한다. 하필 귀국 후 딸아이가 처음 본 학교시험이 끝나는 날 아내는 병원 침대에 누워있다. 공교롭게도 5차 항암주사 맞는 날이다. 혼자 병원밥을 먹을 아내에겐 미안하지만 시험 마치는 날마저 바쁜 학원 일정에 저녁도 함께하지 못할 터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 먹고 싶어? 너 고기 좋아하니까 샤부샤부? 맛녀에 나왔다는 돼지불백 갈까?"
"돈가스!!"
의외에 대답이었지만 언젠가 아내와 한번 가자고 했던 수요미식회에 나온 맛집이 생각나 발길을 돌렸다. 다행히 오픈시간 전이라 예약 줄이 길지 않았다. 뭘 먹을지 고민하는 딸에게 만원이 훌쩍 넘는 스페셜 메뉴를 권했다. 평소 같았으면 젤 싼 메뉴부터 봤을 텐데 첫 시험에 성적까지 잘 나온 딸을 위해 약간의 사치를 부려본다.
어렵고 외로운 해외생활에도 스트레스 심한 한국에서의 입시교육이 엄두가 안나 참고 버텼는데 올해 초 코로나로 인해 발이 묶이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내의 유방암까지 발견돼 서둘러 해외생활을 마감하고 돌아왔다. 아니 가지 못해 정리도 못한 채 돌아온 셈이다.
모든 일상이 무너졌다. 어쩜 우리에게 이렇게 큰 시련이 닥칠까 싶어 원망스럽기도 하고 멘탈이 무너졌는데 그래도 가장 힘들었을 당사자인 아내가 묵묵히 5차 항암까지 버티어 주고 철없게 생각했던 아이들도 요즘 부쩍 성숙해진 느낌이다.
"왜 다 안 먹어? 입에 안 맞아?"
평소 같으면 고기에 사족을 못쓰는 아이인데 배가 부르다며 돈가스를 몇 조각이나 남겼다. 그리곤 포장용기가 없는지 묻는다. 혼자 맛있는 것을 먹은 것이 못내 미안한 모양이다. 집에 혼자 있을 동생 몫을 알뜰히도 챙긴다.
아침에는 일찍 병원을 가야하는터라 11살 된 둘째만 두고 나오는 것이 맘에 걸렸는데 10시쯤 아이가 보낸 톡이 울렸다.
"나 아침 뭐 먹지?"
"아직 아침 안 먹었어? 할머니 아직 주무셔?"
할머니가 피곤하셨는지 아직 주무시고 계신 모양이다. 매일같이 대식구의 삼시 세 끼를 챙겨주시니 쓰러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지금 주무시는 것 같아서 쉬시게 깨우지 않으려고..."
한창 배고플 때인데 할머니 생각하는 그 말에 마냥 아기 같던 아이가 언제 이렇게 컸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