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겠다고 결심 할 때에는 누구나 쓰지 않고는 못 견디는 무언가가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한이기도 하고 원이기도 하고 열망이기도 한 그 무언가가 결국 글이란 것을 만든다.
다 늦은 나이에 글공부를 시작할 때에 나의 희망은 블로그에 글다운 글을 올리고 싶다는 소박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자기계발 관련 글을 올리고 싶어했고, 책 리뷰를 하고 싶어했다.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했지만 읽으면 그뿐, 남는 게 없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나도 보고 배운 것은 있어서 독후감이라는 것이 이야기의 요약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단 한번 제대로 된 독후감을 써본 적이 없다는 사실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갈증을 선생님에게 호소했고, 일주일에 한 번씩 어린 시절 나에게 영향을 미쳤던 그중에서도 단편소설에 대한 독후감을 다시 작성해 보게 되었다.
나는 여기에서 내가 어떤 단편소설에 대한 독후감을 작성했는지 그리고 그 내용이 어떠한 것인지를 나열할 생각은 없다. 다만 달랐다. 어릴 때 내가 그 소설들을 읽으면서 느꼈던 느낌과 생각이 40년이 지난 지금 확연히 다른 결로 다가왔다.
나는 가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지금 내 나이 18살이라는 말을 하고는 한다. 아직 나는 철딱서니도 없고 세월의 무게에 따른 삶의 지혜라고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얼치기 중년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시간은 내게도 공평하게 흘렀다. 그 시간 속에 축적된 나의 역사가 지금 현재 나의 기준과 견해를 만들고 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에 특별한 주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글공부를 끝내고 더 이상 규칙적으로 글을 쓰지 않게 되어 어떻게 하면 계속 글을 쓸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게 브런치에 글을 올려보자는 거였다. 누가 보아나 줄까? 걱정스럽기도 하면서 의식적으로 기대따윈 하지 말자 다짐하며 시작을 하게 되었다.
주제도 없이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정말 걱정하지 않았던 것은 글감이었다. 나름 이유는 있었다. 20년 가까이 방구석에서만 살아보기도 했고, 갑자기 세상에 나와 사회부적응한 상태로 이곳저곳 떠돌며 정착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던 과거가 있었다. 엄마와 불화하고 동생들한테 치여서 집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했고, 항상 부유하는 부평초 같은 삶이었다. 나름 구구절절한 역사가 있고 그 속에 살아남기 위해서 나를 다독이며 깨닫게 된 작은 성찰들이 있다고 믿었다.
나는 그에 대해 천천히 써보려고 했다. 마음을 정리하고, 상처를 다독이며, 그래도 스스로를 응원하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기 위해 한 자, 한 자 다듬어 보겠다는 결심 또는 포부였다. 할 말은 많았고, 간단히 써놓은 글감조차 한 페이지를 훌쩍 넘겼다. 그랬다. 그랬었다. 나는 할 말도 있었고, 그래서 이야기하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이해되고 공감받고 싶었다. 분명 그랬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나는 당황스러운 현실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 동안 나를 지배하고 있던 많은 감정들은 글을 쓰는 과정에서 사정없이 생략되고 삭제되었다. 단순히 주제에 어긋나기 때문에 지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 감정들은 다 지나간 옛일이었다. 더 이상 현재에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었다. 다만 내가 잡고 있었을 뿐이다. 내 한이라고, 슬픔이라고, 억울함이라고 혹시라도 놓칠까 양손에 꼭 쥐고 있었을 뿐이었다.
물론 나는 20년 가까이 히키코모리였었다. 그랬었다. 엄마와 불화했고 어디서도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해 욕구불만과 우울함으로 늘 슬펐다. 그랬었다. 최저임금근로자로 여기저기 고개를 내밀었지만 자리를 잡지 못하고 늘 밀려났었다. 그랬었다. 분명 그랬었다.
그럼 지금 완전히 벗어났냐하면 그렇지는 못하다. 비상구를 열고 나왔다고 해도 전형적인 내향형인 나는 홀로 있을 때 더 편안함을 느낀다. 가족과는 불화하지는 않지만 화목하다고 말하기는 사실 어렵다. 그리고 지금도 최저임금근로자이다.
그러나 홀로 편안한 만큼 같이 있을 때에도 사람들과 모나지 않게 잘 어울리고, 어머니에게 어린아이처럼 징징거리고 매달리지 않을만큼 단단한 내가 되었다.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서운하지 않다. 아니 괜찮다. 나를 사랑하는 내가 있기 때문이다. 최저 임금근로자이지만 일을 함에 있어 최선을 다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책임을 다한다. 나는 지금 내 모습이 좋다. 지금 이대로 충분하다.
흘러넘치는 지난 감정들을 가지치기 하면서 그 때 그렇게 슬펐던 것, 아팠던 것, 속상하고 때로 분하기까지 했던 것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물론 상처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너무 희미하다. 자세히 돋보기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절대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나 본인은 새삼 돋보기를 들이댈 생각이 없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아픔에 대한 글쓰기를 하고 싶지 않다. 정확히는 아픔에 대해 명징하게 말할 수가 없다. 아쉬움이 있다. 그때 말했어야 했다. 진창에서 마구 뒹굴었을 때, 소리조차 못 내고 깊은 심연에 빠져들어 허우적거렸을 때, 두 손을 뻗어 무엇이라도 잡고 싶어 발버둥쳤을 때 그 때 말했어야 했다. 아니 기록이라도 남겨두었다면 좋은 소재가 되어 냠냠짭짭 써먹을 수 있었을 텐데...
지나간 시간이 손가락 사이에서 그냥 흘러내리기만 한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힘들었었는데, 참 애썼었는데, 다 가버렸구나 하는 허탈감마저 나를 감싼다. 분명한 것은 내 영특한 계산처럼 과거팔이를 하고 살 수는 없을 거라는 것이다. 팔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팔 것이 남아있지 않다.
글이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남긴다. 생각을 정리해서 내 생각이 무엇이었는 지를 알게 한다. 과잉 감정도 미련도 정리가 되고 그래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하는 지 방법론도 글을 쓰면서 도출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처럼 한 시대의 종언을 맞기도 한다.
그렇다면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을 것인가? 아니다. 그런 결론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의 주제가 무엇인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언가를 근본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나는 감성팔이는 틀렸고... 실제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글을 써보고 싶다. 이제부터 나의 과제는 내가 쓰고 싶은 글과 그래서 쓸 수 있는 글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내 나이쯤 되면 내일을 생각한다고 갑자기 밝아지지도 않고, 꿈에 부풀지도 않는다. 그래도 나는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잘 버텨왔고 그래서 결국 행복해졌다는 것을. 손에 쥔 무언가가 없어도, 내세울 무언가가 없어도, 있는 그대로 참 잘살고 있다는 것을. 내 인생은 분명 핑크빛이 아니다. 그렇지만 잿빛 그대로도 그냥 괜찮은 거였다. 그래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