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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사자 Mar 11. 2024

그만하면 훌륭한 거야

 살아간다는 것은 롤플레잉 게임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에게 맞는 캐릭터를 골라야 한다. 구경만 해서도 안되고, 해설서만 보고 있어도 소용없다. 생각은 더 쓸데없다. 중요한 것은 플레이다. 몬스터를 잡아 포인트를 쌓고, 사냥을 하거나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여러 가지 스탯 중에서 내 캐릭터에 맞는 스탯을 조합해 강화하거나 버려야 한다.


 그리고도 잘하기 위해서는 오랜 경험, 판단력, 진득한 엉덩이의 힘과 더불어 민첩한 손가락과 시간 때로는 돈의 투자가 필요하다. 공부를 이렇게 하면 sky는 따논 당상일텐데... 인생이란 게 원래 그렇게 순조로운 것이 아니다.      


 마트 판매사원으로 일하던 때이다. 사물함 열쇠를 잃어버린 적이 있다. 내가 직접 쇠톱으로 자물쇠를 자를 수가 없었다. 사무실에 요청을 하면 보안요원들이 사람들 없는 시간에 들어와 잘라주고 갔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류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했다. 처음 들어간 낯선 사무실 그리고도 생전 처음 받아 든 16절 갱지로 된 서류를 들고 중년의 남자 관리자에게 애타게 물었다.      


 “사유를 뭐라고 쓰지요?”

 “그냥 그대로 쓰세요.”     


 ‘모년 모월 모일, 열쇠를 잊어버렸습니다. 열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볼펜을 꼭꼭 눌러 정성스레 사유를 써서 그에게 돌려주었다. 서류를 받아 든 관리자의 그 똥 씹은 표정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나도 알았던 적이 있었는데. 분실이라고... 내 생에 어느 순간에는 나도 그 단어를 알고 있었던 그때가 있었다.      


 세상에 나온 내가 깨닫게 된 처절한 진실은 내가 바로 ‘하 중에 하’라는 것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매번 그 사실을 온몸으로 깨닫고 또 깨달았다. 좌충우돌하며 어떻게든 그 자리에서 버텨내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찾고,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아등바등하는 나를 어여삐 보는 사람들 덕에 때마다 적절한 도움도 받았고, 그래서 용케 버티고 견디어 왔다.      


 병원 정기검진일에 의사선생님에게 하소연을 했다. 다른 사람들과  경쟁할 수 있는 형편이 못된다는 것을 아무도 인정하지않는다고... 그래서 너무 속상하다고...


 평상시에는 너무 바쁜 분이라 푸념 따위는 할 수 없었지만, 그날은 주저리주저리 한탄을 했다. 귀 담아 들으셨던 것 같지는 않다. 눈치로는 귀찮아하신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했다.        


 “니 병에, 그만큼 약을 먹고, 그 정도 기능하고 살면 훌륭한 거야.

 사람은 자기를 잘 알아야 돼.

 남이 아니라 내가 나를 알아야 하는 거야.

 세상엔 그걸 모르는 사람이 많으니까.

 나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건 자기 자신뿐이야.”     


 나는 인정욕구에 목이 마른 사람이다. 그렇다면 인정받게 되면 그 욕구가 채워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지가 않다. 칭찬은 허공 중에 산산이 흩어지고, 부족한 나, 모자란 나, 세상 물정 모르는 해맑은 내가 언제나 남아있다. 아무리 물을 켜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 것처럼 내 인정욕구는 언제나 블랙홀이다.      


 사실은 고마운 일이지만 악몽과도 같던 기억이 있다. 첫 번째 입사했던 고객센터에서의 일이다. 그곳에서는 강사님이 저성과자를 불러 함께 콜을 듣고 개선할 점을 코칭을 해주고는 했다. 당연히 그분에게 불려가서 처음으로 내 콜을 듣고, 내 목소리를, 내가 말하는 어투를 듣게 된 적이 있었다.


 그분이 말씀하셨다. 이렇게 낮은 점수는 지금까지 유례가 없다. 고치지 않으면 일은 계속 할 수 없다라고...     


 예전에 무당에게 갔을 때였다. 그녀는 나에게 목소리에 복이 있다고 일러주었다. 한두 번은 목소리가 예쁘다는 소리고 들었던 터라 나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너무나도 끔찍했다. 나는 한없이 느릿했고 낮고 졸렸다. 게다가 계속 음...음... 하며 더듬더듬 거리는 그 어투를 듣고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나는 나조차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그런 사람이었다.      


 치열하게 노력했던 이유는 그곳에서 계속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도 참을 수 없는 나를 개선하고 싶었다. 도무지 함량미달인 나를 어떻게든 끌어올리고 싶었다. 세상에서 밀려나고 싶지 않았다. 꼬바리로라도 턱걸이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이후에도 한번 더 코칭을 받았다. 규정상 한번이었지만 노력하는 모습을 가상히 여긴 강사님께서 나를 위해 업무 시간 외에 도와주신 것이다. 그에 힘입어 그 다음 달 평가 점수가 가장 많이 향상되었다고 인센티브를 제일 많이 받았다. 강사님은 그 후 교육자료로 내 콜을 사용하신다고 했다. 그분이 덧붙이셨다. “사람들이 다 놀래요. 같은 사람 맞냐고.“      


 그리고 세상에 턱걸이를 했을까?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냥 첫 삽이었을 뿐이다. 그 후로도 나는 알몸의 나와 시시때때로 마주해야 했다. 그럴 때마다 당황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키지 않도록 표정 관리에 필사적이었다. 그리고 물론 기를 쓰고 적응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해야했다.      

 

 그렇게 10여 년을 살고 나서야 겨우 꼬바리에 섰다. 내 곁에 어떤 사람이 서 있는 지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아직도 공감에 익숙하지는 못하지만, 대화를 할 때는 독심술을 하지 말고, 호기심을 가져야 상대를 만날 수 있다는 이치를 겨우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강제로 분수를 지켜야 했지만, 이제 나는 얼추 내 모습이 어떤지 그릴 수 있다.      

 

 나에게 물었다. 그렇게 인정에 목말라하면서도 남이 칭찬하는 말을 왜 귓등으로도 안 듣지? 왜 향상할 수 있는 방법론에는 마음이 꽂혀서 눈을 번들거리고 달려들면서, 그래서 잘하게 되었다는 말은 왜 의미가 없는 것이냐? 왜 자꾸 딴소리만 하는 거지?     

 

 나는 한동안 그 이유가 수치로 측정될 수 있는 성과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만큼 하면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며 사는 지금의 나를 긍정하고 행복하지 않는다면, 막상 성과가 난다고 해서 만족을 느낄 수 있을까를 생각했을 때 그렇지는 못할 거라고 판단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되었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나는 결과를 말하고 싶다. 수치로 측정할 수 없다고 해도, 아무도 내 성취를 모르고, 내세울 수 있는 무언가가 없다고 해도 나는 이마만큼 성장해 왔다.      


 오랫동안 나는 낭중지추였다. 뛰어나서가 아니라 모자라서 못나서 호주머니 속에서 자꾸만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 어리벙벙하고, 한없이 곤혹스럽고, 다들 그냥 하면 된다고 하는데도 나 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한없이 초라했던 그때, 고민과 자책으로 뒤척이던 그 불면의 밤에 나는 오히려 숨을 쉴 수 있었다. 백주대낮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나를 목도 하는 것보다는 말이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사람들 속에 숨어 산다. 섞여 있으면 나를 따로이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뛰어난 인재는 못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냥 그들이 되었고, 직원들이 되었고, 함께 하는 군중에 속한다.      


 나이가 들면서 체감으로 느끼는 시간이 너무 빨라 가끔 나이를 헤아려 보게 된다. 어릴 적 나는 변화 그 자체였다. 가만있으면 자동적으로 승급이 되었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주어진 수행 과제를 효과적으로 했는지 안 했는지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시간은 나를 기다려 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의 도움 없이 내 퀘스트는 나 스스로 깨야 한다. 그래야 다음 단계로 올라 설 수 있다. 보이지도 않는 까마득한 파이널에 도달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도 아직은 포기할 수 없다.      


 그동안 잘해주었다고 나에게 말을 건네고 싶다. 그래도 열심히 산 건 맞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 이제는 제법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살고 있다고 격려해주고 싶다. 결국 파이널에는 올라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는 가능성보다 그러지 못할 가능성이 더 많다. 그렇지만 그래도 주어진 퀘스트를 피하지는 말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 있는 힘껏 깨보라고 하고 싶다.      


 인생이란 그냥 살아가는 일인 것 같다. 매일은 그리 별다를 것이 없다. 그렇지만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내가 아니다. 내 감정과 생각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자세와 태도는 늘 변화한다. 내일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막연히 기대한다. 조금은 더 현명해지기를, 조금은 더 편안해지기를, 칸트의 말처럼 사람을 목적으로 생각하고 대하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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