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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나의 새벽별 Apr 15. 2022

내가 배우는 이유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아주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됩니다."
인간은 무엇에서건 배운다.
그러니 문학을 통해서도 배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서 가장 결정적으로 배우고, 자신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로부터 가장 처철하게 배운다.
그때 우리는 겨우 변한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그때 우리는 겨우 변한다.

그리고 우리는 쉽게 되돌아온다.

이것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관성의 법칙이 아닌가.
저자는 말한다. 안타깝게도 아무리 읽고 써도 피는 흐르지 않는다고. 혹 피 흘려 깨닫는 순간이 온다 하더라도 다시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는 것이 인간이라고.

인생은 반복들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그러나 믿을 수밖에.
지금의 나는 10년 전의 나보다
좀 더 좋은 사람이다.
10년 후의 나는 더 좋아질 것이다.
안 그래도 어려운데
믿음조차 없으면 가망 없을 것이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얼마 전에 [동적 평형]이라는 책을 읽었다. 분자생물학자인 저자가 '생명이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과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인 고찰을 한다.
그중에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우리가 배워야 하는 이유는 생물학적 한계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란다.

배움의 이유 중에 가장 신박한 근거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신경회로는 계속해서 쓰이는 것만 강화되고, 그렇지 못한 것은 퇴화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 같은 것을 보고서도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편견에 사로잡히는 이유이기도 한다.

지금의 반쯤 감긴 눈을 뜨이게 하고, 어두워진 뇌의 한쪽에 빛을 반짝이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배워야 하는 것이다.


오늘, 배워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를 찾았다.  

앞에서 말한 근거보다 더 앞서야 할 이유이다.

모든 배움의 목적이 되어야 할 이유이다.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배워야 한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배우고 싶다.

아니 조금이라도 덜 나쁜 사람이 되기 위해 배우고 싶다. 배워도 결국에는 다시 돌아가겠지만 , 다시 돌아가더라도 시작점으로 회귀하는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억만 분의 1만큼이라도 타인의 슬픔과 고통을 살필 수 있기를.

나의 이익과 편리함보다는 올바른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을 위해 나의 불편을 조금은 감수할 수 있기를.

하루 중 시간이 남아있다면 필요한 곳에 손 내밀며 작은 목소리라도 낼 수 있기를.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렇게 1mm라도 나아가는 삶을 살기를.


지금의 나는 아는 것이 없다.

배우고 싶다.

조금이라도 덜 나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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