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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나의 새벽별 Jul 19. 2022

엄마와 딸, 그 멀고도 가까운 관계

'글쓰는 딸들'을 읽고.


뒤라스, 보부아르, 콜레트.

그들에게는 일찍 일어나는 습관과 자연을 접하기를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리고 하나 더. 그들이 글 쓰는 딸들로 커가는데 상당량을 일조한 어머니가 존재했다.


불규칙하고 혼란스러운 모성, 과잉되고 무절제한 모성, 숨 막히게 권위적인 모성.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혹은 착각된 일종의 폭력과도 같은 모성으로부터의 피난처로 그들은 글쓰기를 선택했다.

결국 이름을 남긴 작가가 되었으니 행복했을까? 어머니라는 대상에 대하여 이질적이고 이중적인 감정을 가졌던 것은 아닐까.

아무리 떼어내고 없애려고 해도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태고부터 어머니와 한 몸이었다는 증거로 남은 흔적. 그 흔적이 서로에게 연결된 보이지 않는 끈을 상기시켜준다. 끝내 그 끈을 완전히 끊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것도.

그것은 비극일까..? 희극일까...?



투명성을 강요한다는 건, 아이에게서 그만의 비밀공간과 내밀한 영역을 빼앗는다는 건 얼마나 큰 폭력인가.
-글 쓰는 딸들 중에서


어릴 적 나만의 비밀 일기장이 있었다. 엄격하고 권위적인 엄마는 나의 모든 것을 관리 감독하려 했다. 비밀 일기장은 나의 해방터였다. 그 해방터에 엄마를 위한 자리는 없었던 탓에 해방터를 지키기 위한 나름의 분투들이 있었다. 일기장 제일 앞쪽에 '이 일기장을 발견한다면 당장 다시 덮어주시기 바랍니다. 이 말을 어기고 일기장을 보는 것은 저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입니다.'라는 경고성 쪽지를 써둔다거나, 일기장 위에 학용품을 올려두고 조금이라도 각도가 흐트러졌는지 확인한다던가 하는 식이었다.


그렇다면 엄마가 된 '나'는 어떤가?

나 역시 아이들의 모든 것을 투명하게 알고 싶다. 그건  사랑일까. 욕망일까.

욕망은 균형을 잃고 무너지기 쉽다. 적절한 사랑의 농도를 맞추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나는 어려운 것은 덤비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아이를 내 소유의 생명체가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재하게 그냥 두는 것이다. 그렇게 독립된 인격체는 멀지 않은 날에 떠나가게 될 것이다.

그래도 흔적은 지워지지 않고 남을 테지.  

나는 너희들의 엄마로, 너희는 나의 딸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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