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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흥만 Jan 03. 2016

가방은 두고 나오거라.

아시시 - 진짜여행을 하는법에 관하여


2015년 12월 31일 나는 본의 아니게 네덜란드 산부인과 의사와 이탈리아 국어선생님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기억에 남는 대목은 그 네덜란드 산부인과 의사가 내 벽돌 같은 가방을 보더니, 여행을 제대로 즐기려면 가방을 집에 두고 나와야 된다고 조언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그것을 깨우친 그 날부터 더 흥미진진한 여행을 위해선 가방을 안메고 다닌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이 부분을 생각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가방 안에 DSLR카메라도 담아야 하고 까페에서 읽을 책 한권, 여행서, 다이어리 등 늘 내 가방은 무거웠고, 버거웠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집에 두고 나올 것이 없어 보였다.


2015년 마지막 자정전례를 성 프란치스코성당에서 봉헌하고 집에 가니 새벽 1시, 이것저것을 들추다보니 2시가 되었고, 하루종일 여기저기서 얻어마신 와인에 커피에 홍차에 맥주까지 잡다한 카페인을 섭취한 탓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예민한 나는 아시시생활에 완벽히 적응하지 못해서 그런지 bnb가 내 집처럼 완전히 편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상관없다. 가끔 집도 안편하니 말이다.


그렇게 2016년 첫날 오전과 오후를 피곤함으로 날려버리고, 오후 늦게 성 프란치스코성당에 들렸는데 때마침 천주의 성모마리아 대축일 미사 시작 직전이라 대축일미사를 봉헌할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엄마 성모님의 초대였으리라. 그러나 아쉽게도 역시 이탈리아어미사시간에는 자동적으로 졸음이 와 이날도 여지없이 잠이 들었고 최고의 수면시간은 뭐니뭐니해도 강론시간임을 부인하지 않겠다.


해가 지고, 다시 해가 떠서 1월 2일이 되었다. 나는 아시시 다음 여행플랜을 세우기 위해 아시시 내 트래블센터를 방문했다. 딱히 도움될만한 이야기나 서비스는 없었지만, 담당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내 상황이 내 스스로 정리가 되었다. '나의 이번 여행은 여행도 아니고 순례도 아니고 별놈의 데를 다 가보고 싶은 내 마음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욕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튼 난 다음주 수요일 나폴리와 소렌토를 가기 위해 로마를 가야만했다. 하여 나는 기차표를 예매하기 위해 아시시역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고 이윽고 아시시역에서 다음주 월요일 로마로 향하는 기차표를 예매할 수 있었다. 사실 별거 아닌데 난 기차표만 티켓팅하면 뭔가 해낸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흥이 한껏 오른 난 비오는 아시시를 걸으며 '너의 집'이라는 의미의 bnb숙소 까사 투아로 향했다. 그렇게 몇 발자국이 내딛었을 때 왠 잘생긴 이탈리아 아저씨가 머리에 스카프를 뒤집어쓰고 멋있게 걷고 있는 게 아닌가? 내가 그를 의식했을 때, 그도 나를 의식한 모양새였다. 우리는 거의 같은 타이밍에 서로를 바라보며 인사했다.


시칠리섬에서 약사를 한다는 그는, 로마에서 누나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로 가는중에 아시시에서 약6시간 머물다가 간다고 했다. 그는 마치 평화의 메신저 존레논 같은 말들을 하였다. 사실 처음에는 그의 사고를 정말 멋져서 믿지 않았는데 꾸준히 멋있는 말을 하는 그를 보면서 아 이 사람이 척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멋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런데 그런 내외가 모두 멋진 그 앞에서 예쁜여자가 좋다고 엉걸결에 말한 나를 얼간이로 볼까봐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어쨌든 그는 아시시를 한 두 번 와본 폼새가 아니었다.


IS의 파리테러 이후 이탈리아 대성당 앞에는 모델처럼 멋진 이탈리아 군인들이 관광객들을 공항 출입국관리소처럼 검문하고 있었다. 그런데 41살 약사 다비드형은 여행을 좋아해서 그런지 20년 전에 샀다는 스위스칼을 애지중지 하고 있었다. 저 앞 군인아저씨들 앞에 가면 분명 회수될 것이 자명하기에 그는 아무도 안보는 골목구석에 스위스칼을 숨기고 성당으로 들어갔다. 다비드형은 아시시의 지리를 꿰고 있는 눈치였다. 우리는 아시시의 명동성당인 성 프란치스코성당을 살짝 둘러 보고, 그는 나를 Bosco di San Francesco로 안내했다. 사실 이 코스는 정말 아름다운 길인데 비가 오는 관계로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중간에 여친가방을 들고 있는 이탈리안 사내를 만나면서 '사랑 앞에선 한국이나, 이탈리아남자나 다 똑같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요즈음 이탈리아에서 느끼는 거지만, 오래전 내 전여자친구가 내게 했던 독한 말들이 떠올랐다.


"오빠가 제대로 한 게 뭐 있어?"


일개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도 아니고 전대협 임원출신이던 그녀는 내게 틈틈히 독한 말들을 쏟아냈었다. 이제는 그녀가 없는데도, 늘 내게 독한말을 하던 아버지가 안계신데도 그들 대신 나는 나에게 독한말들을 내뱉고 있었다.


'내가 잘하는 게 뭐 있겠어, 영어도 요리도 공부도 사랑도 연애도 수영도 신학도 심리학도...내가 잘하는 게 뭐 있겠어..'


다비드와 대화하는데 조금만 난위도 높은 정치, 문화, 사회로만 빠지면 나는 내 남은 혼신의 힘을 다해 내 뒤꿈치에 묻은 때까지 영어로 쓰고 싶은 지경이었다. 다비드와 맥주 한 잔에 파스타 한 그릇씩을 하고 형을 아시시역으로 다시 데려다주는데 형이 그런다. 나와 헤어지고 이젠 'Your Time'이다. 좋은사람도 만나고, 시칠리도 놀러와라. Your Time.. 얼마나 쉬우면서도 꿈과 희망을 주는 말인가..영어가 짧아서 그런지, 꼭 이런 문장은 머리속을 떠나지를 않는다.


'너의 집'을 뜻하는 A Casa Tua에 도착하니 안나의 조카 22살 총각 마르코가 와있었다. 젊어서 그런지 에너지가 보통 아니다. 밀라노에서 금융업 임원이었다던 안나와 밀라노 헤드헌터였던 다비드아저씨 그리고 마르코에 나까지 넷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새로운 길을 잃어버린 이탈리안 게스트가족을 찾으러 마르코의 차를 타고 아시시의 중앙광장격인 Piazza of Comune으로 나갔다.


오늘 하루종일 영어를 신나게 쓰면서 불편도 했지만, 내가 나를 가둬놓은 수많은 벽들이 떠올랐다.

사실 내가 불편했던 건 원활하지 못한 나의 영어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쌓아놓은 수많은 편견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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