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적은 여자다?

4. 그럼에도 결혼하고 싶은 페미니스트를 위하여. (하지 마 도망가)

by 박서운과박식빵



인간은 어리석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 작자 미상 -




경험자가 이미 발설해 버린 이 수많은 결혼의 단점에

대해 서 낱낱이 들어놓고도

여전히 결혼이란 시시한 제도에 이 한 몸 바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는 순진무구한 여성이 있을 것이다. 그대들은 아마도 너무도 순수하여 그런 불행은 나와 내 남자친구 사이에선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부류이거나,

지금 곁에 있는 그 남자를 너무나도 사랑하여 법적으로도

내 것이라고 꽁꽁 묶어놓고 싶은 부류일 것이다.

혹은 결혼 그 자체에는 심드렁하지만,

꼭 내 아이를 낳고 키워보고 싶은 열망을 가진, 그러나 아직 이 땅에서 법적인 테두리 밖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 나 위험한 일인지는 아는 똑똑한 부류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내 삶에

결. 혼.이라는 두 글자를

편입시켜버리고 난 이후에는 그 한 단어가 내 일상을 얼마나 뒤바꾸어놓는지…. 그것은 경험해 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다. 아무튼, 그 어떤 이유에서건 결혼이란 걸 하기로 했다면

누가 말리겠는가. 자식 이기는 부모도 없다지만,

최소한 내 글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는

나 같은 소심 한 페미니스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법적으로 한 남자와 엮이고 나면 그 남자만 나의 것(?)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 뒤로 수많은 것들이 딸려온다. 흔한 예로 앞서 말한 바 있는 고부갈등이나

며느리로서 요구받는 ‘며느리의 도리’라는 것, 그리고 아이를 낳게 되면 ‘엄마의 책임’ 또한

내 어깨 위에 얹히게 된다. 싱글과 기혼자의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이 책임과 자유의 영역일 것이다.

결혼에 뛰어드는 것은 이 아름다운 자유를 몸소 뿌리치고

책임과 의무의 영역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배우자만을 영원히 사랑하고, 오직 배우자하고만

평생 성적인 관계를 맺겠다고 서로 약속하는 것이다.

물론 간통죄는 폐지되었지만, 맘스홀릭 부부 클리닉 게시판이나 네이트판 게시판에

하루가 멀다고 ‘상간녀 위자료소송’, ‘남편 외도 증거’ 같은 키워드가 난무하고,

외도했다가 들키기라도 하는 날엔 부부 사이는 파국으로 치닫게 되니

이제 거의 도덕의 영역으로만 남게 된 그 ‘약속’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엄청나게 평탄한 삶은 아니었지만, 나는 이런저런 작고 사 소하며 평범한 고비들을 넘기며 살아왔다.

하지만 결혼 이후 의 삶은 왠지 더 스펙터클해진 느낌이다.

분명 안정감 있는 노후(?) 즉 30대 이후의 삶을 위해 결혼을 택한 것 같은데,

왜 결과는 정반대가 된 것일까. 그것은 결혼 후 내가 오로지 나 로서만 살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로서만 존재하고 나만 을 위해 살면 되었던, 그리고 나에 대한 책임만 지면 되었던

젊은 날의 나는 사라졌다. 내 두 발로 스스로 차버렸다.

그리고 나는 거대한 책임과 의무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도대체 왜인지 모르겠지만 결혼 7년 차인 아직도 나를 못 잡아드셔 안달인 시어머니와

수시로 대립하고,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고, 때때로 남편과 의견충돌로 다툰다.

귀여운 아이가 주는 피로함과 막대한 육아 노동은 애교처럼 느껴질 수준이다.

그래도 살아야만 한다.

내가 선택한 일이고, 또 나는 이제 엄마이기도 하므로.

이제는 오직 나만 을 위한 선택을 할 수는 없다.


아 물론, 나만을 위한 선택이 이혼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불의의 사건이나 사고로

이혼이 내 삶에서 최선이 되지 않는 한, 그때까지는 최선을 다해 이 결혼생활을 유지할 것이다.

남편이나 육아 문제라면 이미 많이 말한 것 같고, 시가 문제라면 극한 고부갈등을 겪은 경험자로서

좀 더 과하게 경고하고 싶다. 어느 정도는 겁을 주고픈 정도의 마음이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야겠지만, 남자친구의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남편의 어머니가 되는 순간

악랄한 시어머니로 변모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그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절대 ‘여자의 적은 여자다.’는 틀에 자신도 갇히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 전쟁은 결코 시어머니 대 며느리 이중 구도의 전쟁이 아니다.

시어머니 뒤에서 가만히 팔짱 끼고 한 발 물러나 방관 자로만 존재하는,

겉으로만 사람 좋아 보이는 가부장제의 화신 시아버지, 또는 그런 가부장의 귀한 아들로만 살아와

결코 아내의 편에 서주지 못하는 못난 남편, 그 모두가 고부갈 등의 주체라는 점이 핵심이다.


만일이라도 시어머니 입에서 헛소리가 나와 내 속을 긁어놓는다면,

시어머니한테만 할 말 다하며 당당한 며느리가 된 다고 해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내 발로 이 가부장의 세상에 뛰어들었으니 이 집안에서 잘못된 모든 것과 싸우겠다는 심정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그리고 끝끝내 지치지 않겠다고 수없이 다짐해야 할 것이다.

시부모 때문에 수없이 싸우다가 며느리 측에서 먼저 연락을 끊어버리기는 오히려 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면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어른을 변하게 만들기란 어렵다. 거의 불가능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다. 아무런 변화가 없어도, 아무리 말해도 못 알아들어도

계속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 야만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 남편을 완전히 편입시켜서 같이 해나가야 한다.


고부갈등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구시대의 마인드를 가진 윗세대와 새로운 마인드를 가진

젊은이들 사이의 세대 간 갈등이다. 그리하여 사실상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나처럼 극한 고부갈등을 겪은 내 또래가 시어머니가 된 세상에서는

과연 고부갈등이 1도 없을까? 아마 제사나 명절 차례 풍습은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도 그때엔 뒷방 늙은이일 뿐이고 자식 또래 의 젊은이들 생각을 온전히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물론 조금 강도나 양상은 다르겠지만, 그때엔 또 다른 형식의 고부갈등이나

세대 간 갈등이 존재할 것이다. 내가 결혼하며 만난 최고의 숨겨진 복병이 고부갈등이었기에

나의 관점에서만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경험해 본 것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

혹자는 최고의 복병이 사랑해마지 않던 전 남자친구인 남편일지도 모른다.

별도 달도 따줄 듯하던 세상 스윗하고 여자를 위해주던 남자친구가 결혼하자마자 돌변하여

이 시대 최후의 가부장의 화신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 모든 위험한 가능성을 가슴에 품고도 결혼하기로 했다면 부디, 그대의 결정이,

그대의 안목이 잘못되지 않았기 만을 바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최소한의 검증은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여적여’ 프레임에 갇히지 말 것을 주문하며 추가로. 슬기로운 결혼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체크리스트 또 는 염두에 두어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서.




이후에 이어질...

<그럼에도 결혼하고 싶은 페미니스트를 위한 체크리스트>

목록은 아래 책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밀리의 서재 등에서 보실 수 있는 e-book도 있음)






이 글은 2021년 출간된 <이혼하고 싶어질 때마다 보는 책>에서 발췌했습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98470313


이전 09화딸아, 공주드레스를 입지 않아도 넌 멋지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