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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범수 Feb 27. 2019

YS의 두 번째 민주화

<김영삼 전 대통령이 2015년 11월 22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삶은 민주화 투사에서 시작해, 권력욕과 신념을 바꾼 얇팍한 정치인을 지나 IMF 구제금융 원인 제공자라는 평가를 관통한다. 그런데 막상 그가 사망하자 언론과 시민들은 가장 긍정적인 평가라 할 수 있는 '민주화'에 주목했다. 고인에 대한 예의 차원이라 보기엔 당시 그를 둘러싼 '영웅화' 분위기는 언뜻 이해되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사망한 시점과 관련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기자의 개인적 평가는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22일 빈소에서 한 말과 거의 일치한다. "폭압적인 군부 독재를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세우는 데 고인이 크게 헌신했다. 그것만으로도 온 국민의 애도를 받기에 모자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말이 심 대표가 가진 김 전 대통령에 대한 평소 생각을 그대로 반영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어렵게 얻어낸 것이며 김 전 대통령에게 어떤 과(過)가 있더라도 그 공(功)의 가치를 훼손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우리가 그것을 상실하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한탄하고 있다고 느꼈다.


제한된 환경에서 비롯된 편협한 생각일 수 있으나 기자가 느껴온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시중의 평가는 '1997년 외환위기'에 압도돼 있었다. 이것이 그의 민주화 경력보다 더 최신 사건인데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수많은 경제적 모순과 팍팍한 삶의 근본 원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막상 그가 서거하자 민주화 경력에 세간의 평가가 집중되고 있는 것에 적잖게 놀랐다. 서거 직후 긍정적 평가로서 고인에 대한 예의를 보이는 것이란 생각도 들지만 과연 그것으로 지금의 전 국민적 애도 분위기를 모두 설명할 수 있을까.


외환위기는 극복된 성공담이다. 그러나 민주화는 어떤가. 김 전 대통령이 목숨을 걸고 쟁취한 민주주의는 2015년 현재 우리에게 확보된 불변의 가치인가? 손에 잡힌 줄 알았으나 그 틈으로 속절없이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어찌해볼 도리 없이 무기력하게 바라보고 있는 그런 대상은 아닌가? 우리가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경력에 집중하게 되는 것은 그처럼 제 몸 던져 민주주의를 되찾아줄 어떤 영웅을 갈망하는 시민들의 심리가 반영된 것은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보면, 김 전 대통령 빈소에서 그의 정치적 아들이자 상주(喪主)를 자임하는 사람들의 면면에 씁쓸함을 금할 길이 없다. 시민을 총으로 쏠 수도 있다거나, 의식 잃은 시민보단 박살난 경찰차를 감싸고도는 그들이 '민주화'라는 김 전 대통령의 유산에 손을 대려는 것은, 표 냄새를 감지해내는 본능적 기회주의가 아니고서는 달리 이해하기 어렵다.


그들이 치켜세우고 있는 김 전 대통령은 시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꿈꾸며 국가권력에 대항했던 사람이지, 물대포를 쏘는 쪽에 섰던 사람은 아니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공(功)이 아닌 과(過)쪽으로 크게 기울었다면 가장 먼저 그를 부인했을 사람들이다.


김 전 대통령이 18년 전 'IMF 구제금융 신청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던 그 날(1998년 11월 22일), 경찰의 물대포를 맞아 혼수상태가 된 백남기씨가 입원해 있는 바로 그 병원 같은 중환자실에 실려와 백씨 옆에서 눈을 감은 것은 그저 우연의 일치라 하기엔 너무나 섬뜩한 무언가를 느끼게 한다. 그는 자신의 실책을 겸허히 인정함과 동시에 자신이 목숨을 걸고 얻어낸 민주주의가 퇴색해 가는 현재를 경고하며 우리에게 중요한 임무를 남기고 떠난 것은 아닐까. <아시아경제. 2015월 11월 25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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