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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범수 Feb 23. 2019

신기술과 함께 살아가기

유행한 지 꽤 됐는데 일본에 보컬로이드라는 음악이 있다. 가상 아이돌이라고 할까. 레이저 빛으로 만든 가수가 대형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할 때 진짜 인간들은 열광한다. 어지러운 기계음 중간에 아찔한 동작이라도 '선사'하면 누구는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수천 명이 운집한 일본 보컬로이드 공연 광경은 필자가 지난 몇 년 새 목격한 가장 낯설고 당황스러운 장면 중 하나였다.

보컬로이드에 빠진 자녀를 둔 부모는 문화적 충격에 휩싸인다. 중학교 2학년 아들이 보컬로이드만 듣는다는 한 지인은 "저게 뭐가 좋냐"는 질문에 이런 답을 들었다고 한다. "진짜 여자 중에는 이만큼 예쁜 애가 없잖아요."

또 다른 잊지 못할 장면은 이미 9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생생한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3G 출시를 발표하던 순간이다. 워낙 유명한 장면이라 정보통신(IT) 분야 소식에 별 관심 두지 않던 필자도 유튜브에서 일부러 찾아본 기억이 난다. 그가 아이폰을 소개할 때 관객석에서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건 또 뭔가, 사람도 아닌 '상품'이 등장했다고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이라니. 우리는 정말 갈 데까지 간 걸까.
  

'보컬로이드' 하츠네 미쿠 공연장면


5세대(5G) 이동통신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까. 5G에 사운을 건 한 기업 관계자에게 농담조로 물었다. "핸드폰 좀 이제 그만 빨라지면 안 되겠습니까." 지금도 충분히 빠른데 뭘 더 빨라지겠다는 것인가. 그는 답 대신 냉소적 웃음을 날렸지만, 5G 혹은 6G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다 줄지 그 역시 잘 모를 것이다. 그저 7G, 8G 시대가 오면 그에 맞는 삶의 방식이, 주변 기술의 발전이, 새로운 비즈니스가 절로 나타나 우리 삶을 어떻게든 '좋게' 바꿔줄 것이란 막연한 기대 말고는.

그래도 그렇게 비관적으로 나오면 안 돼. 세계적 추세를 거역할 순 없잖아. 거듭되는 이동통신 세대교체는 지금 우리 머리로 상상하지 못하는 새로운 세상을 가져다 줄 거야. 정보의 평등과 기회의 균등은 기술과 함께 진보할 것이며 그 흐름에서 뒤처지는 국가와 기업은 '아날로그로 회귀', '소외된 인간' 같은 진부한 이야기나 나누며 도태될지 몰라.

보컬로이드에 빠진 아들도 언젠가 진짜 사람과 진짜 연애의 달콤함에 빠질 테니 걱정할 것 없어. 아이폰3G 때 충격은 4부터 8 그리고 X까지 여러 번 봐서 더 이상 낯설지 않아. 멋진 상품에 박수 치고 소리 지르는 게 꼭 이상한 건 아니잖아. 왜 사람한테만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

이렇게 애써 긍정 마인드로 무장한 채 시대에 순응하지만 마음 한구석 불편한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건 좀 아니지 않아?"라고 말했다간 세태 못 따라가는 사람 취급받을까 두려운 마음, 조금씩 갖고 있잖아.

"우리는 '속도'를 발전시켰지만 스스로를 그 안에 가둬버린 꼴이 됐다(영화 위대한 독재자 중)." 찰리 채플린은 과학과 발전이 인류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세상을 갈망했다. 기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가라는 그의 고민은 지금도 유효하지 않을까. 기술이 과학이 되기도 전, 우리는 누구에게 질 새라 그것을 너무 쉽게 삶의 일부로 인정해 버리는 건 아닐까.

이 순간에도 신제품, 새로운 서비스, 혁신적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기술의 위대함을 칭송하는 목소리가 차고 넘친다. 그 경연장 한 복판에 서서 잠시 생각해보았다.


아시아경제, 2017년 9월 27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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