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with Cancer' 11편, 중요해지는 생존자 관리
암을 극복했거나 암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우리나라에만 72만 명이 있다. 얼추 잡아도 한국인 10명 중 1명은 암환자이거나 그 가족인 셈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평균 수명까지 살 경우 10명 중 3명은 암에 걸린다. 또 암환자 10명 중 6명은 5년 넘게 생존한다.
이 모든 수치는 암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변화돼야 함을 의미한다. 윤세창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과 교수는 "암은 불치병이며 진단은 사형선고라는 인식은 의료진과 환자, 사회 전반에 여전히 팽배하다"며 "이 틀을 깰 때 우리는 비로소 '암과의 공존'을 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암이 가져오는 신체적 통증은 필연 정신적 고통을 수반한다. 신체적 고통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암의 '의료적 측면'이라면 정신적 접근은 '인간적 측면'이다. 한편 기존 질병 중심의 접근법은 암을 치료나 생존, 병리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이 패러다임을 환자 중심으로 옮기면 병리는 고통으로, 치료는 치유로, 생존은 웰빙 및 웰다잉(well-dying)으로 관점이 바뀐다.
◆암환자 절반이 정신과적 증상 호소
우리나라 암 치료 성적이 세계 최고 수준에 달한 지금, 살아남은 자들의 정신적 문제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각종 연구에 따르면 암환자 중 절반 정도가 불안이나 우울 등 치료가 필요한 수준의 정신과적 증상을 호소한다. 하지만 이 중 5% 정도만이 전문적 도움을 받고 있다.
암환자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적절히 관리하지 않으면 치료 성적에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것은 확인된 사실이다. 이에 따라 일부 선진국에서는 암환자의 심리 관리를 포함하는 통합적 암 치료를 70년대 중반 도입했다. 이런 학문을 '정신종양학'이라 부른다.
윤 교수는 "정신종양학이 질병의 양상이나 경제ㆍ사회적 문제를 직접 해결해주지는 못하지만, 조언과 적절한 약물치료 등을 통해 해결방법을 스스로 찾는 능력을 키워줄 수 있다"고 말했다.
◆암환자 자살률 일반인 3배 넘어
암환자의 정신과적 치료가 더욱 중요한 것은 '자살 예방'이라는 중대한 역할 때문이다. 암환자가 암과 상관없는 이유로 사망하는 비율은 20% 수준인데 그중 자살이 4위다. 암환자의 자살률은 일반 인구의 3배에 달한다. 정신종양학의 과제는 자살을 생각하는 초기 단계를 알아내고 그에 따른 적절한 의료적 처치를 제공함으로써 암환자의 생명을 최대한 구하는 것이다.
윤 교수는 "자살을 생각했던 환자들이 정신과적 상담 후 치료에 집중하고 삶에 대한 의욕을 갖게 되는 사례는 매우 흔하다. 이런 측면에서 정신과적 치료는 암환자의 생존과 직결된 중요한 분야"라고 강조했다.
암환자나 가족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의료적 판단'에 대한 도움도 제공한다. 생명을 좌우하는 큰 결정을 앞에 두고 의료진은 "어떻게 하실지는 환자가 직접 선택하세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환자를 배려하는 것이지만 전문적 판단이 어려운 환자 입장에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란 인상을 받게 된다.
윤 교수는 "환자편에 선 의료인이라는 정신과의사의 역할 상 이 같은 소통 부재를 원만하게 해결해주는 역할이 가능하다"며 "환자들이 의료진의 본 뜻을 이해하고 가장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정서 및 의학적 조언을 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언론이 유명인의 암 극복 사례를 더욱 많이 발굴해 달라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 고환암 발병 후 불굴의 의지를 펼친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의 예를 들었다. 암스트롱은 더 많은 사람들이 '암 이후의 삶'에 대해 인식하게 되는 좋은 선례를 남겼다.
윤 교수는 "암환자의 정신적 문제를 이해하고 치유할 때 그들은 더 이상 환상적인 문구로 유혹하는 엉뚱한 치료에 의존하지 않게 된다"며 "이는 궁극적으로 암환자의 삶의 질 개선은 물론 전반적인 치료 성적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