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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튜플리츠>와 <킬미힐미>의 공통점

넷플릭스 영화ㅣ<섹스튜플리츠>(2019)

by 아임유어엠버


2019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미국 영화 ‘섹스튜플리츠’는 배우의 연기력이 극 전체를 이끌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영화다.


‘화이트 칙스’ ‘리틀 맨’으로 유명한 말론 웨이언스가 6명의 인물을 연기한다. 외모는 물론이고 목소리 톤, 눈빛, 손끝 하나, 심지어 성별까지 달리 표현한 그의 노력은 영화를 보는 내내 감탄을 자아낸다.


◇ ‘킬미 힐미’와 비슷한 점?


섹스튜플리츠는 배우 누미 라파스가 1인 7역을 한 영화 ‘월요일이 사라졌다’와 비교되곤 하는데, 실은 MBC 드라마 ‘킬미, 힐미’와 비슷한 측면이 더 많다.




킬미, 힐미에서도 배우 지성이 다중인격장애를 지닌 재벌 3세 차도현 역을 맡아 신세기, 페리박, 나나, 안요섭, 안요나 등 총 일곱 개의 인격을 연기력으로 소화해냈다.



1인 다역을 했다는 표면적인 공통점 외에 결정적인 접점이 있는데, 바로 주인공이 아픔을 지녔다는 사실이다.


트라우마나 외부의 공격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내는 차도현처럼, 섹스튜플리츠의 앨런은 고아로 자라 마음 한구석 가족에 대한 궁금함을 안고 산다.


그는 공동 대표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예쁜 변호사 아내에 곧 태어날 아기까지 많은 걸 갖고 있지만, 파티 때 부를 가족이 없어 장인 장모의 눈치를 본다. 가족이 있었다는 소식은 앨런의 잠재 욕구를 자극한다. 그는 만삭의 아내를 홀로 남겨둔 채 집을 떠날 정도로 가족에 대한 커다란 그리움을 지닌 인물이다.


여기에 오랜 ‘집콕’ 생활로 사회성이 떨어지는 러셀, 교도소에 수감 중인 돈, 물질만능주의 이선, 신장 이식을 기다리며 병실에서 지내는 베이비 피트, 납치와 감금을 일삼지만 속은 여린 재스퍼까지 앨런의 형제‧자매들도 어딘가 부족한 부분을 하나씩 갖고 있다.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할 때마다 생기는 에피소드는 연결고리가 없는 ‘코미디 쇼’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하나의 종착지로 향한다. 오랜 세월 떨어져 산 이들이 ‘가족’이란 이름으로 하나가 되는 과정이다.


앨런은 출산을 앞둔 아내의 연락에도 형제‧자매와 시간을 보내는 데 집중한다. 그들이 친 사고를 수습하느라 아내와의 사이도 조금씩 멀어진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앨런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앨런은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맞춰 나가듯 형제들과 교감해나간다. 결국 이들은 크고 작은 소동을 벌이며 가족이 되고, 앨런은 공허함을 극복하고 웃음을 되찾는다.


이는 차도현이 내면의 인격을 꺼내면서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상처를 마주하고 이를 치유해나가는 이야기와 닮아있다. 잔잔한 감동을 준다는 점에서 섹스튜플리츠는 가족코미디라는 탈을 쓴 힐링극이다.


◇ 한국적인 이야기…유머코드는 ‘글쎄’


“Family is Everything!”


앨런의 대사처럼, 내게 원하는 것만 많고 때로는 문제를 일으켜 나를 힘들게 하지만 그래도 내 공허함을 채워주는 건 가족이며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준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딸 순이를 찾아 우주를 떠도는 태호(송중기)의 이야기를 다룬 ‘승리호’를 포함해 아버지가 딸을 구하기 위해 괴물과 싸우는 ‘괴물’ 등 국내 영화에는 가족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가족을 찾아 나서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다는 점에서 섹스튜플리츠는 한국적이다. 진지함을 덜어내고 B급 웃음 코드를 버무린, 미국에서 보기 드문 가족 소재의 영화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인물들의 결핍이 코믹 요소로 가볍게 치부된다는 점은 아쉽다.


예를 들어 여동생 돈은 앨런의 돈으로 교도소에서 나와 주유소에서 만난 남자들과 신경전을 벌인다. 앨런과 가족이 돼간다는 걸 그리기 위한 장면이었을 테지만, 범죄자가 죄를 다 짓지 않고 보석으로 빠져나왔는데 또 폭력을 행사하는 걸 희화화했다는 점에서 보기 불편했다.


그런가 하면 몸이 아픈 작은 몸집의 베이비 피트는 안쓰럽게 그려지다가 초면에 앨런의 신장을 탐하는 철면피로 돌변한다. 그는 후반부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파티에서는 휴양지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모습으로 등장해 웃음을 준다.


앨런이 어린시절부터 그리워해 온 존재인 ‘엄마’가 싱겁게 등장한다는 점도 시청자에게 실망감을 안겨 주는 부분이다.


앨런이 제스퍼까지 만나고 나서 엄마는 태연하게 집에 귀가하는데, 처음 보는 앨런을 경계해 러셀이 거짓말을 한 탓에 ‘엄마가 죽었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전까지 쌓아온 호흡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다. 눈물 콧물 짜며 재회를 하는 신파가 연출되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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