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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Feb 09. 2020

기안84가 칭찬을 먹고 박태준이 욕먹는 이유[1]

웹툰을 보고서 1


“A는 자신을 진심으로 죽이려는 눈빛을 보았다”, “난 너의 예상을 예상했다”.. ‘외모지상주의’의 명대사들은 다른 웹툰 댓글창에서 자주 인용될 정도로 획기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만큼 박태준 작가의 구성력에 빠져든 이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외모지상주의’를 향한 네티즌의 시선은 그리 달달하지 않다. 애정이 컸던 만큼 날카로운 혹평이 몰아치고 있다. 지난해 가을까지 9점대 후반, 12월까지도 9점에 육박하던 평점은 두 달 사이에 5점대로 솟구쳤고 댓글에는 ‘싸움 독학’이나 ‘인생 존망’만큼 신경을 써달라는 요구가 빗발친다. ‘이러려고 쿠키를 날렸나’ 류의 비관적인 반응도 보인다.     


1회부터 쭉 봐온 ‘찐’ 팬으로서 네티즌들의 의견에 어느 정도 동조한다.


박형석-이진성-바스코-홍재열-진호빈-이태성 등 재원고의 인물들의 내분이 일어나면서 캐릭터의 개연성이 깨졌다. 새로운 몸에서도 기존의 착한 마음씨를 유지했던 박형석은 자신이 ‘천재’라는 것만 믿고 이진성과 대결을 벌이는 ‘싸움캐’가 돼있었다. 요약하자면 박형석의 방향성이 무엇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4대 크루를 통일하라”는 DG의 지시를 따르려는 것인지, 본래의 박형석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것인지, 새로운 몸으로 평화롭게 친구들과 지내려 하는 것인지 그의 속내가 드러나지 않으니 그의 모든 행동들이 황당하기 짝이 없다. 박형석은 욕받이로 전락했고, 그의 원래 몸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따윈 궁금하지도 않다.       


‘외모지상주의’는 비주류 외모를 지닌 주인공 박형석이 겪는 차별, 새로운 몸을 갖게 되면서 부러움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주류가 되는 이야기를 주축으로 해왔다. 사회의 편견에 메시지를 던지는 만화였지, 격투 만화는 아니었다. 그런데 각자의 차별화된 능력치를 지닌 싸움짱들이 등장하면서 격투 만화의 양상을 띄고있다.


 재원고의 친구들, 4대 크루(김기명이 이끄는 강서의 빅딜, 강북의 갓독, 강동의 호스텔, 강남의 일해회)에 이어 최근 천량팸까지 더해지면서 피로도가 높아졌다. 각자의 사연을 지닌 너무 많은 인물들이 대결을 펼치는 양상 속에, “그래서 대체 이 싸움이 언제 끝날 것인가”의 논제가 희미해지고 말았다. 어느새 극의 주축은 “박형석이 4대 크루를 통일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호스텔+빅딜+천량팸과 재원고의 힘 대결이 돼버렸다. 이 과정에서 김기명, 편덕화, DG, 최수정 등 여러 인물들이 스리슬쩍 모습을 감췄다.      


소재면에서도 비슷한 아쉬움이 발견되고 있다. 불법 또또, 사이비 종교, 소년교도소, 가출팸, 동물학대 등 이야기는 그간 쉬쉬하며 가려졌던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비췄다. 박태준 작가의 디테일함이 빛을 발한 에피소들이기도 했다. 그러한 ‘사건’ 중심의 에피소드들이 단일 인물 중심으로 바뀌면서 캐릭터의 개성과 ‘힘 대결’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게다가 모두가 힘이 너무 강해져서 대결의 결과가 도무지 종 잡히지 않는다.    

  

그림체도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변화했다. 통통하던 작은 박형석의 외모는 버프를 먹고 꽃미남 돼지가 돼 있었고, 민폐 캐릭터였던 박지호는 카리스마 돌아이가 돼있었다. 장진혁과 왕오춘의 주도로 재원고 친구들의 대결이 그려지는 것도 어딘가 타당하지 못한 느낌이 든다.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이기에 실망감이 큰 것이다.   



독자들의 분노를 더욱 자극한 것은 ‘외모지상주의’ 내의 이유만은 아니다. ‘싸움 독학’,‘프리드로우’,‘인생 존망’ 등 액션을 기반으로 한 학원물들이 생겨나면서 기시감이 들기 시작한 것. 이중 ‘싸움 독학’,‘인생 존망’은 박태준 작가가 스토리를 짠 작품으로, ‘외모지상주의’와 흡사한 측면이 있다. 문제 삼으려는 게 아니라, 독자들의 시각에서 '또야?'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는 것이다. ‘싸움 독학’의 경우 가난한 형편의 주인공이 부단한 노력으로 싸움을 습득하게 된다는 설정, ‘인생 존망’에서는 학교폭력을 다룬 점과 MMA 등 무술이 자주 언급된다. '프리드로우'에서는 액션 외에 연예계가 다뤄진 것도 '외모지상주의'의 [PTJ엔터테인먼트 편]을 떠오르게 한다.


이들과 비교해볼 때 ‘외모지상주의’는 ‘시빌 워’ 같은 거대한 세계관을 지닌 군단이다. 이미 지구를 넘어 안드로메다로 확장된 이야기가 독자들에겐 동떨어진 느낌을 줄 수 있다. 게다가 “싸우기 시작하면 최소 2달 반”이라는 어느 댓글처럼, 전개 속도가 느리다 보니 독자들은 애가 탄다.      


‘외모지상주의’의 독자들은 요즘 성요한과 장현의 등장을 간절히 기다린다. 어서 그들이 돌아와 이 기나긴 싸움을 끝내주기를 하고 말이다. ‘외모지상주의’의 히어로는 박형석인가 아니면 성요한과 장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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