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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Jun 18. 2022

'마이걸'을 아시나요? '10대 주유린'이던 시절[2]

드라마를 보고서ㅣSBS <마이걸>

드라마 <마이걸>의 주인공 주유린은 사기꾼 아버지를 둔 탓에 일본·홍콩·마카오를 전전하며 자랐다. 


가장 감동적으로 본 영화도 <내 사랑 컬리수>. 사기꾼 부녀의 이야기다. 부전녀전이라, 제주도에서 관광 가이드로 일하지만 무면허에 허풍은 하늘을 찌른다. 뻔뻔한 순발력이 가장 큰 특기다.


설공찬(이동욱 분)과 계약을 맺고 남매 행세를 하던 주유린(이다해 분)은 공찬과 사랑에 빠지고, 그를 위한 거짓말을 한다. 바로 모든 사람들을 불러모아 놓고 자신이 의도적으로 공찬에게 접근했다고 거짓말을 하는데.


중학생의 나에게도 문제의 ‘그날’이 왔다.


“넌 어느 아파트에 살아?”


대화 한 번 나눠본 적 없는 친구가 대뜸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갓 입대한 훈련병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가짜 집 주소를 말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반가워하면서 말했다.


“어? 나도 너랑 같은 동에 사는데. 집 갈 때 같이 가자”


아뿔싸! 심지어 그 친구는 내 한층 아래에 산다고 했다. 사실대로 말할까 아니면 일이 있다고 하고 제안을 거절할까 두 선택지를 두고 끙끙대다가 하교 시간이 왔다.


친구와 학교를 나와 가짜 집 쪽으로 걷는 내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된 기분이었다. 친구의 수다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머릿속엔 온통 어떻게 행동할까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찼다.


친구와 아파트 건물에 도착해 나는 갑자기 일이 생겼다는 어설픈 핑계를 댔다. 친구는 이상해하면서도 내 말을 믿어줬다. 친구가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을 확인한 후, 나는 있는 힘껏 달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왔다. 그 행동이 나 자신을 궁지에 몰 줄은 까맣게 몰랐다.


그 친구는 다음 날에도 나와 하교를 함께 하자고 했다. 거절을 못 해 ‘울며 겨자 먹기’로 전날의 상황이 반복됐다. 가짜 집 앞에 도착해, 친구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친구는 우리 집이 복층인지 단층인지를 심문하듯 물었다. 엄마 친구네는 복층이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나는 단층이라고 답했다.


그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말이 친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너, 여기에 산다는 거 거짓말이지?”


알고 보니 친구는 전날 내 뒤를 밟았고, 진짜 집까지 확인한 후 돌아간 것이다. 거짓말이 탄로 났다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거짓말을 덮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이 점점 커지는 것을 체감하면서 신뢰를 잃는다는 것은 참 무서운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앞으로 학교를 계속 못 다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울컥 눈물이 나왔다. 사과하거나 해명할 생각도 못 하고 또 집으로 도망쳤다. 그날 나는 지옥 같은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책상에서 뜻밖의 쪽지를 발견했다. 내 진실을 알아버린 그 친구가 보낸 거였다.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너무 걱정하지 마」


어린 나의 잘못을 감싸준 친구 덕에 나는 인생에서 커다란 변화를 맞았다. 그날 이후 친구들이 집에 관해 물어보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솔직하게 상황을 밝혔다. 진짜 집에 초대해 놀기도 했으며 그들보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우리 집 환경을 떳떳하게 소개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신뢰를 잃을 만한 큰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꾸며진 나로 사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는 게 나를 믿고 아껴주는 이들에게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다.


새 학기, 잊을 수 없는 한 사건이 내게 준 인생의 교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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