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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Jun 18. 2022

'마이걸'을 아시나요? '10대 주유린'이던 시절[1]

드라마를 보고서ㅣSBS <마이걸> 

2005~2006년 방송된 드라마 중에 '마이걸'이라는 작품이 있다.


거짓말을 일삼는 주유린(이다해 분)이 재벌3세 설공찬(이동욱 분)의 가짜 동생 연기를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드라마가 나왔을 때 소스라치듯 깜짝 놀랐다. 주유린이 나의 어린시절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주유린급 거짓말쟁이였다.


3월. 방학이 끝나 학교에 간다는 기쁨과 새 친구를 사귈 기대감에 부푸는 새 학기.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중1의 나는 학교에 갈 때마다 긴장감에 떨어야 했다.


“넌 어느 아파트에 살아?”


친구가 물으면 나는 바로 답을 하지 못하고 굳어버렸다. 거짓말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 중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경제적 수준이 높은 가정의 자녀라는 것을 의미했다. 실제로 반 친구들 대부분 부모님의 직업에 ‘사’자가 들어갔고, 여름방학에는 해외여행을 다닐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그 안에서도 또 어느 아파트에 사느냐를 기준으로 계급이 나뉘었는데, 집이 다른 동네에 있는 학생의 경우 암묵적인 따돌림을 받았다.


반면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의 친구들은 대부분 빌라에 살았다. 초대를 받아 가보면 건물과 건물 사이의 쪽방에 사는 친구도 있었고, 집에 대문이나 초인종이 없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그들의 부모님은 맞벌이하시는 경우가 많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엄마는 내게 중대 발표를 하셨다. 바로 주민등록등본에서 내 이름을 떼어 바로 옆 동네 사는 엄마 친구네로 옮긴다는 것. 좋은 중학교에 진학하도록 하기 위한 엄마의 술수였다.


예술중학교 같은 특별 학교에 지원하지 않는 한, 주민등록 등본상 거주지와 인접한 학교를 다녀야 했지만 약간의 꼼수는 통했다. 가족이 아니더라도 한 주소에서 함께 산다는 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친한 친구들과 떨어져 다른 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게 슬퍼서 처음엔 반항했지만, 결국 엄마의 뜻에 따랐다. 나는 옆 동네 중학교 새내기가 됐다.


우리 집에서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옆 동네였기에 등굣길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거짓말을 잘 못 하는 나였다. 14년 인생에서 거짓말을 해야 할 상황에 부닥쳐본 적이 별로 없었기에 거짓말에 능숙하지 않았다. 친구로부터 처음으로 집에 관해 물음을 받았을 때, 더듬거리면서 말을 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엄마는 혹여나 딸이 말실수를 해서 주소를 옮겼다는 게 들통날까봐 입단속을 철저히 시켰다. 나는 3월 첫 주, 엄마 친구네 집 주소를 자다가 일어나서도 줄줄 읊을 수 있을 정도로 달달 외웠다. 실제 그 집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답사까지 갔다.


그 덕에 행정 서류를 내야 할 때라든가 친구가 내가 사는 아파트를 물어볼 때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었다. 물론, 심장은 쉴새 없이 쿵쾅거렸고 머리칼에서는 식은땀이 났다.


등하교할 때는 가짜 집 쪽으로 가는 척을 하다가 빙 돌아서 진짜 집으로 갔다. 그 바람에 원래 드는 시간보다 30분이 더 걸렸다. 아예 친구들과 마주칠 일이 없도록 어떨 땐 새벽 일찍 학교에 가고 해가 져서 집에 온 적도 있다.


3월 말이 될 즈음, 상대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몇 동 몇 호에 사는 지까지 답할 정도로 나는 거짓말에 익숙해졌다. 말을 줄이고 남들의 말에 동조하는 스킬도 익혔다.


그리고, 문제의 '그 날'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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