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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Sep 15. 2022

왜 그런 날 있잖아. 손대는 것마다 꽝이 나오는 날

일기ㅣ 9월 13일

무슨 시트콤도 아니고. 하루 종일 불운의 연속이다.   

  

가장 타격이 컸던 건 신용카드 분실. 서울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반납하러 시청역까지 가는 길이었는데, 문득 카드를 꺼내려고 보니 있어야할 자리에 없었다. 가방 주머니, 바지 주머니를 비롯해 짐을 모두 꺼내서 책 사이사이까지 살펴봤는데 없었다.      


곧 열차에서 내려야 할 타이밍이었다. 몇 년 째 몸에서 떨어지지 않은 분신같은 카드가 사라졌다 생각하니 갑자기 등에서 식은땀이 쫙 났다. 지하철역에서 카드를 찍고 들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기억해내려고 애썼다. 열차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고, 열차 안에서는 책을 읽었고, 왕십리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탔다는 것 외에 특별한 게 없었다.       


플랫폼 의자에 앉아 열차 두 대를 보내고 나서야 분실물보관센터에 연락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하게도 직원은 친절했고 내가 탔던 열차 번호를 확인해줬다. 하지만 나는 탔던 칸과 앉았던 의자의 방향을 정확히 기억하진 못했다. 공익근무요원을 통해 분실물이 있는지 확인해봐준다는 직원의 말을 끝으로 허망하게 전화를 끊었다.     


시청역에 도착했지만 계속 정신이 없었다. 충동적으로 시민청이라는 곳 지하 1층에 갔고, 면접용 메이크업과 이력서 사진촬영을 하는 곳에서 예약 정보를 물었다. 직원의 설명을 한참이나 듣고 나서 시간이 촉박하다는 걸 알았다. 1층으로 올라가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고장난 줄을 10분 이상 지난 후에야 알았다. 신용카드를 찾았다는 연락은 받지 못했다. 지불 수단이 없었으므로 돌아가는 길도 막막했다. 다행히 내 상황을 듣고 이해해준 지하철 직원들 덕에 무사히 집에 왔다.      


이날 저녁에만 해야하는 것이 4~5가지 됐는데, 그 중 하나가 전화로 하는 중국어수업이었다. 걸으면서 대화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수업 교재를 미리 공부해두고는 휴대폰만 들고 나왔는데, 알고보니 노트북으로 교재를 보면서 통화를 해야하는 거였다. 허겁지겁 휴대폰으로 교재파일을 여는 바람에 수업시간이 훅 지나갔다. 당황스러움에 손가락을 덜덜 떤, 그 상황에 적합한 중국어가 생각이 안나서 횡설수설한 나 자신이 한심했다.

     

다음에는 수영 수업이 예정돼 있었다. 수업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20분, 남은 휴대폰 배터리는 10%대. 수영 수업이 끝나고 휴대폰을 계속 쓰려면 충전을 해야했는데 하필이면 충전기를 챙겨오지 않았다. 스포츠센터에 희망을 걸고 안내 직원들에게 도움을 구했지만 매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사막을 헤매다 오아시스인 줄 알고 갔던 곳이 신기루였다는 걸 안 기분이 이런 것일까. 하는 수없이 다시 집까지 가서 휴대폰을 충전기에 꽂아두고 스포츠센터로 갔다.      


운동이 끝나고는 집에 들러 편의점 택배를 부칠 물건을 들고 나왔다. 택배 접수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는데, 편의점 직원이 통화 중이었다. 다른 일정을 위해 가봐야 해서 지체되면 안됐지만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수신호를 보내는 직원을 재촉할 수가 없어서 기다렸다. 생각보다 통화가 오래 걸리길래 계산을 해달라는 제스처를 한번더 취했는데 이번에는 직원이 살짝 짜증섞인 말투로 기다리라고 말했다.      


편의점을 나와서는 뛰어다니기 바빴다. 신용카드가 없어서 30분 거리를 두 발로 이동했고 그다음 30분 거리도 마찬가지 방식이었다. 집에 오니 땀에 흠뻑 젖었다. 그래도 몸이 힘드니까 정신은 좀 맑아지는 것 같았다. 구매해둔 옷이 택배로 와있길래 설레는 마음으로 입어봤는데 치마 사이즈가 조금 작았다. 옷 자체는 문제가 없었는데 내가 살이 찌는 바람에 배 부분이 걸려서 치마길이가 짧아졌다.       


결국 저녁도 못 먹고 배고픈 채로 침대에 누웠다. 종일 참아왔던 분노가 확 치밀었다. 


에잇! 오늘 정말 되는 일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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