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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Sep 02. 2022

멍때리기도 힘든 세상, 반값치킨이나 먹어야지

경쟁에 임하는 백수의 마음을 아시나요?  

한강에서 열리는 ‘멍때리기 대회’가 있다. 코로나19 발생 전에 뉴스에서 토픽 영상 뭐 그런 걸로 접하고 사람들이 참 시간도 많다 싶었다. 그게 또 열린다기에 호기심이 일었다. 일을 쉬니까 할 수 있는 거지 언제 또 해보겠어! 신청 첫날 모집 요강 확인 후, 취준을 하는 친구와 함께 지원을 해보기로 하고 하루가 딱 지났는데 이미 접수가 마감됐단다. 기사를 보니 몇 십팀 모집에 4000팀이 몰렸다는데 머리를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다.

      

멍때리기는 한가한 사람들이 하는 거 아니었어? 이렇게 소식에 빠르고 행동력 있는 사람들이 멍을 때린다고?      

생각해보면 내가 거절당한 것은 이번 멍때리기 대회뿐만이 아니다. 추첨으로 선발하는 청년인생설계학교에서는 1,2차 모두 떨어졌고 다큐멘터리 영화제 자원활동가 모집에서도 합격 통보를 받지 못했다. 숱한 언론사 채용에서는 물론이고 차선책으로 정한 독서 기반의 커뮤니티를 구축해주는 스타트업에서도 오늘 ‘서탈’의 답을 받았다.     


회사 내 경쟁에서 도태된 데 이어 시민참여 대회에서조차 내가 밀리는구나. 세상에는 부지런하고 손빠른 사람들이 많구나. 나는 게으름 피우다가 기회를 놓치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내가 이렇게 놀고 있는 거구나. 한바탕 자조적인 한탄을 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학생 때 수강신청부터 콘서트 티켓구매, 놀이공원 줄 서기, 한정판 운동화 구매, 맛집 줄 서기 등 경쟁을 할 일이 참 많았다. 하다못해 유명 순대국집만 가도 가게 밖으로 긴 행렬이 줄지어 있어 땡볕에 20~30분가량을 기다려야 식사를 할 수 있고, 지하철을 탈 때도 자리를 쟁취하기 위한 눈치싸움을 벌여야 하는 세상이다. 


그뿐만 아니라 웨딩홀을 잡거나 바디프로필 찍을 때만 해도 예약을 몇 달 전에는 해야한다. 유치원에 입학할 때도 몇 달 씩 줄을 선단다. 돈을 준다고 해도 못 얻는 기회들이 생겨나고 있는 상황이니, 핫한 브랜드의 팝업스토어나 공짜로 뭘 준다 하는 SNS 이벤트가 열린다든가 하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조금 더 삐딱하게 생각하면, 비용을 최소화하고 재미를 극대화하려는 사람들의 열망이 큰 거다. 참가비가 없는 대회이니 그렇게 몰린 것이지 내가 늦은 것은 아니다. 신청 기간은 지켜줬어야 했다. 오픈 하루 만에 주최 측이 마음대로 접수를 마감했으니 나는 피해자다.      


커피 4000원, 음식점 소주 5000원, 햄버거 세트 7000원, 샐러드 8000원, 순대국 9000원, 냉면 14000원, 치킨 2만 원. 가게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어느 정도 통용되는 요즘 물가다. 얼마 전 대형마트에서 반값치킨이 나오자 사람들이 오픈 시간에 줄을 서 가져가 5분 만에 준비 물량이 동났다는 뉴스를 봤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속담이 있듯, 정보력과 행동력이 있어야 혜택을 누린다. 


친구와의 식사 한 번에 몇 만원이 훅 깨지니 누굴 만나기도 부담스럽다. 법카로 회사 득을 보는 이들은 편히 먹고 싶은 걸 주문하겠지만, 개카가 전부인 나같은 백수는 카드값 막기에 급급하다.  일을 관둔 후로 통장에 들어오는 돈이 없다. 여행도 한번 안가고 큰돈도 안 썼는데 기존에 남아있던 금액은 바닥을 드러냈다. 소비내역은 러닝 크루 가입비, 수영비, 헬스비, 식비, 교통비 정도가 전부다. 내 생활비는 내가 지불하는 게 우리 집의 규칙인지라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도 없다. 돈을 벌고 싶어도 지원서를 넣는 곳마다 탈락인데 앞으로 밥벌이를 뭐로 해야하는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하고 싶은 걸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까 하고 싶은 걸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내가 넘 조급한 걸까. 인생에 이런 순간 더 없으니 마음 편히 쉬자! 하기에는 나이도 제법 있고 책임감도 큰 것 같다.. 운동을 하려고 해도 돈이 문제다. 헬스장에 상담을 받아보려 갔더니, 트레이너가 돈이 되는 PT를 끊으려고 유도한다. 가격을 들어보니 PT 50회에 삼백 수준인데, 돈 삼백이 누구집 강아지 이름도 아니고 '나를 위한 투자' 명목으로 너무 가볍게 말하는 그들에게 질렸다.


몸뚱아리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서 러닝에 도전했는데, 가입비를 받는다. 프리다이빙 같은 다른 운동보다야 드는 비용이 적으니 괜찮다고 넘겼는데 이번엔 동료 젊은이들이 명품 러닝화 타령이다. 초보일수록 장비가 좋아야 한다나. 땀복과 러닝 슈츠는 물론이고 머리띠, 허리 밴드, 스마트워치까지 장착해줘야 하는 게 요즘 트렌드다. 동료들과 친해지려면 같이 밥과 술도 먹어야 하고, 여기다가 마라톤 대회까지 몇 개 나가려면 최소 3만원이 든다.      


삶을 사는데 있어서 돈이 필수라는 걸 실감한다. 왜 사람들이 대학원을 나오고 자격증을 따는 등 스펙을 쌓는지, 여자들이 남편감을 고를 때 조건을 따지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내가 제법 여윳돈이 생겨 훗날 이 글을 다시 읽게 된다면, 너는 한때 이렇게도 지질했다, 절박했다 하고 느끼길 바란다. 초심을 잃지 않길 바란다. 사치를 부리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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