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도 사교육 시대
작년 12월 KBO리그 골든글러브 시상식 때다. 아이가 2022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 지명된 야구 관계자와 한참 얘기를 나눴다. 아마추어 현장에서 부모들 사이에서 오간다는 “1억이면 회비도, 2억이면 대학, 3억이면 프로”라는 말이 보편적인 시각인지도 물었다. 그의 답은 이랬다. “그렇게 돈을 써도 프로 지명만 되면 계약금 등으로 어느 정도 만회는 되니까요. 그런데 우리 아들은 계약금 4천만원밖에 못 받았어요.”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아마추어 선수가 프로 지명될 확률은 10% 남짓밖에 안 된다. 10 대 1의 경쟁을 뚫고 프로 유니폼을 입는다고 해도 그때부터 진짜 생존 경쟁이 시작된다. 실제 지명된 선수들이 1~2년 사이 프로 데뷔할 확률은 50%도 채 안 된다. 2군 리그를 전전하거나 아예 2군 리그조차 못 뛰고 방출되는 선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차후의 문제. 일단은 프로 입단이 필요하다. 입단 확률을 높이기 위해 야구 과외는 필수가 됐다. 야구 특성상 단체훈련 때 개개인이 방망이를 치거나 공을 던지는 횟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학생 선수의 학습권 보장 등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가뜩이나 줄어든 훈련 시간에 대기 시간이 더 늘어났다. 이를테면, 50여 명 학생이 2~3시간 훈련했을 때 배팅 케이지 안에서 타격 훈련을 몇 번이나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단체 연습을 하면 “훈련보다 잡담 시간이 더 많다”라는 불만이 나오기도 한다.
부족한 훈련량을 주말 등을 이용해 사설 야구 아카데미에서 채우는 것은 이제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옆 동료가 야구 아카데미에서 원 포인트 레슨을 받는데 무조건 학교 단체훈련에만 의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붙박이 주전이라면 모를까 준주전급이라면 그 불안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학생 선수와 부모의 불안한 심리를 자양분으로 야구 아카데미는 몇 년 사이 우후죽순으로 늘었다. 눈으로만 확인됐던 타구나 투구 궤적, 비거리 등이 기계화를 통해 좁은 공간에서도 충분히 측정할 수 있게 되면서 운동장 같은 큰 공간 대여도 필요 없게 됐다.
야구 레슨비는 꽤 비싸다. 한 달 100~200만원 등이 들어간다. 웨이트 트레이닝 비용이나 재활 훈련 비용을 따로 내기도 한다. 동문회 지원이 없는 경우에는 학교 야구부 감독, 코치 등의 월급을 줘야 하기 때문에 기성회비로 월 70~100만원을 따로 지출해야만 한다. 여기에 선수들 부식비, 교통비와 겨울 전지훈련비가 또 따로 들어간다.
이뿐일까. 고교, 대학 진학을 위해 일정 성적이 필요하기 때문에 보통의 아이들처럼 영어, 수학 학원도 다녀야 한다. 형제 모두 야구를 시켰다가 강남 아파트를 팔아 이사했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일반 학생도 대학 입학이나 진로를 위해서 고액 과외를 받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를 위해 집까지 팔았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기둥뿌리 뽑아 대학 졸업시켰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말이다)
소위 ‘돈이 되는’ 아카데미 개설에 프로 은퇴 선수들이 몰리면서 강남은 이미 공급이 수요를 초과했다는 말도 들린다. 프로에서 물의를 빚어 불명예 은퇴한 선수가 이름을 바꿔 아카데미를 개설한 예도 있다고 한다. 한 야구 관계자는 “프로 1군에서 전혀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아카데미를 낸 예도 있다”라고 귀띔했다.
아카데미가 많아지면서 선수 유치는 그만큼 치열해졌고 이 와중에 아카데미 간 흑색선전도 난무해졌다. 주로 “OOO 아카데미 코치가 아이들에게 욕설했다더라”라는 식이다. 지도자로는 자격이 부족한 이들이 아카데미를 운영해 물의가 빚어지는 일도 허다하다. 스테로이드 약물 불법 주사 등도 이런 상황에서 터져 나왔다. 아이와 부모의 간절함은 돈에 눈먼 이들의 먹잇감이 되기에 십상이다.
비단 아카데미뿐만이 아니다. 학교 현장 비리는 계속해서 적발되고 있다. 대개 입시 관련 비리다. 대학 입학을 빌미로 고교야구 감독이나 대학야구 감독이 학부모에게 돈을 받았다는 제보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학부모가 대학 감독이나 심판 등에게 로비를 해달라면서 주머니에 돈뭉치를 찔러주더라며 한숨 쉬는 아마추어 지도자도 여럿 만났다. 가장 최근에 들은 말은 “리틀야구에서 야구 주전 못 나가는 아이 아빠가 더그아웃에서 감독한테 몰래 돈 봉투를 찔러주는데 눈치 빠른 감독이 큰 소리로 ‘얘들아, OO아빠 덕에 오늘 우리 회식하겠다'라고 말하더라”였다. ‘돈 봉투'가 불러올 파장을, 그리고 평생의 족쇄를 해당 감독은 알고 있던 것이다. 관성적으로 이를 거부하지 못하는 감독 또한 물론 있을 것이고.
몇 년 전 인터뷰를 했던 한 전직 야구 감독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말을 했었다. “김 기자 아들 야구시키면 프로 데뷔는 시켜줄 수 있을 텐데요.” 다른 몇몇 베테랑 감독, 코치 등도 아들에게 원포인트 레슨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들은 운동 신경이 둔했고, 야구를 비롯한 스포츠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만약 아들이 야구를 하고 싶다고 몇 날 며칠을 졸랐다면 어찌 됐을까. 철저하게 객관적 입장에서 설득에 설득을 통해 야구를 포기하게 했을까, 아니면 무엇이든 꿈꾸기 힘든 시기에 꿈이 있다는 데 감사하며 20년간의 사회적 친분을 최대한 발휘했을까. 어느 쪽이든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폭등하는 사교육비 등을 생각하면 운동으로든, 공부로든 아이의 꿈에는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시대가 됐다. ‘헝그리 정신'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는 시대가 된 듯하여 서글프기도 하다. “아이는 계속 야구를 하고 싶어 했지만 집 경제 사정상 포기시켰습니다”라는 한 페친(페이스북 친구)의 글을 보고 씁쓸함만 더 밀려온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과연 우리 아이의 꿈은 얼마짜리일까.
*이 글은 <한겨레21>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