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시트콤
순간 흠칫한다. 이 조합은 뭐랄까 딱히 정의 내릴 수가 없다.
내 눈 앞의 현재 풍경. 구찌 가방 안에 대형마트 냉동고에서 꽁꽁 언 용가리 치킨너겟이 들어 있다. 방금 마트에서 나왔으니 내가 산 것은 맞고 재활용 봉투 사기가 애매해 그냥 들고 있던 구찌 숄더백에 욱여넣은 것도 맞다. 그런데 잠시 숨을 고르고 보니 뭔가 부 조화스럽다. 헛웃음까지 난다. 구찌 가방에 미안해지는 점도 있다. 가방의 품격을 대단히, 아주, 많이 실추시킨 것 같아서.
명품가방에 그다지 끌림은 없다. 동생은 결혼 전이나 후이나 고생한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생 로랑이나 샤넬, 발렌시아가 등의 명품 백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으나(스스로 번 돈으로 사는 것이니 굳이 뭐라 할 것도 없다) 나에게 가방은 그저 가방일 뿐이다. 노트북을 들고 다니니 백팩을 선호하고 취재처에 가서 아무렇게나 던져놔야 하니 비싼 것은 가방에게 미안해서 못 사겠다. 가끔씩은 차디 찬 바닥에 있어야 하니까. 여기저기 긁히는 게 예사니까. 가방 상할까 과보호하는 것은 내가 못 견딘다. 물론 직장인 20년차니까 그에 맞는 적당한 가죽 백팩을 들고는 다닌다. 40대에 20대 대학생처럼 하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아마 구찌 숄더백은 내가 소유한 가장 비싼 가방일 것이다. 결혼 10주년에 남편에게 받았는데 가격은 모르겠으나 미국 출장 중 아웃렛에서 샀다니 그리 가격이 많이 나갔을 것 같지는 않다. 가격이 궁금해 인터넷에서 비슷한 디자인을 찾다가 포기했다. 이후 학부모 상담이나 결혼식 등 격식을 갖춰야 할 때 이 가방을 들고 다닌다. 뭔가 구색 맞추기라고 할까. 구찌 로고를 일부러 앞으로 하려 하니까 가방을 들면 없던 허세도 생기는 듯하다. '나도 구찌백 들었다'라고 과시라도 하듯.
이날도 가족모임이 있어서 들고나갔고 잠깐 마트에 들른 참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너겟을 산 터였다. 용가리 치킨을 품고 있는 구찌 가방을 모욕(?)했다는 마음까지 드는 이유는 아마 내가 그 가방에 부여한 '지위' 때문일 듯도 하다. 그 지위는 사회가 부여한 것일 수도 있고. 명품이라는 것도 결국 지위니까. 다만 물건을 넣는 하나의 가죽 보자기일 뿐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가끔은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해서 내가 물건의 주인인지 물건이 나의 주인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겉모습에 그냥 끌려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갇혀서. 구찌 가방에 못 넣을 것도 없을 텐데 말이다. 인위의 가치에 스스로 숨이 막혀가는지도 모르겠다. 명품과 비 명품에 애써 선을 그어가면서. 명품백을 들었다고 명품이 되는 것도 아닌데.
오늘 맥도널드 드라이브 쓰루를 통해 햄버거를 사다가 앞차가 BMW인 것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씩 웃었다. 고급 외제차와 맥도널드의 앙상블 속에서 명품백 속 용가리 치킨이 떠올랐다. 다음엔 구찌 가방 안에 무엇을 넣게 될까. 이제 뭘 넣든 놀라지 않을 것도 같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