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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보자기 Feb 23. 2022

고향에 노인이 산다

요조와 장강명이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다시 들었다.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를 쓴 임희정 작가 편이었다. 자식 입장에서 쓴 이야기가 공감돼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그러다 그가 지나가는 말로 ‘한 달에 한 번 부모님을 뵐 때마다’라고 말했는데, 듣는 동안 만끽하던 동질감이 일순간 달아났다.


한 달에 한 번 부모를 만나는 삶은 어떨까. 다정할까, 무심할까, 아니면 그저 일상일까. 낯설었다. 그의 절반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횟수로 고향의 부모를 찾아가는 입장에서는 부모를 만나는 일이 반갑고 소란해 큰마음이 필요하다. 휴가를 내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그 마음을 먹는 일이다. 그래서 끽해야 일 년에 두어 번뿐이다.


결혼을 하고 몇 년 동안은 명절이면 전국 8도를 경유하며 양가를 꾸준히 방문했지만 해가 갈수록 피로감이 늘었다. 사방이 차로 꽉 막힌 도로에서 7시간 이상을 보내는 것을 반복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덧 명절에는 양가 중 한 곳만 가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시가를 택했다. 옛날 사람인 엄마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했다. 며느리가 없는 명절이 가당키나 하냐며 딸 가진 부모 특유의 저자세를 취했다. 나 역시 심리적 거리는 멀지언정 물리적 거리는 시가가 훨씬 가까웠기에 한정된 연휴에 여유를 부려 보고자 시가만 방문했다.


명절엔 못 가더라도 엄마 생신이 있는 한여름이나 연말에는 고향에 가기 위해 노력한다. 지난 크리스마스 즈음에도 고향에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엄마는 며칠 전부터 코로나가 무섭다, 날이 춥다 등의 이유를 대며 오지 말기를 바랐다. 서운함을 내비치자 마지못해 ‘그래, 그럼 내일 와라’했다. 그래 놓고 당일 아침 ‘아야, 뉴스 보니께 서해안에 눈이 많이 온단디야. 다음에 오면 어짜까?’하며 말렸다. 반복되는 만류에 처음의 서운함도 푸스스 사라지고, 먼 길 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몰려왔다. 부모 만나는 일을 유보한 나는 늘어지게 게을렀다. 고향 가는 일은 점점 더 큰 체력을 요하기도 한다.


자식이 행여 밉보이거나 고생할까 싶어 걱정인 부모와 부모의 말을 핑계 삼아 쉬고 싶어 하는 자식 사이의 만남은 이렇게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내가 엄마를 만난 건 지난해 여름이다. 일 년에 한두 번 부모를 보는 일은 슬프다. 부모의 늙음이 더 선명하게 인식되기 때문이다. 일 년 동안 누적된 부모의 노쇠함을 한 눈에 알아보고 싶지 않아 더 자주 가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어느덧 해가 바뀌었다.


엄마가 좀 더 젊었을 때는 농사일 없는 겨울이면 서울에 오곤 했다. 반가운 방문이었다. 나는 엄마와 함께 처음 보는 친척의 결혼식, 병문안 등을 다녔다. 하지만 70대 중반이 넘어가니 엄마는 밖에 나오는 게 부끄럽다고 했다. ‘다 늙고 꼬부라져서 나다니는' 노인을 볼썽사납다고 생각하는 엄마는 이제 집안 행사에도 참가하지 않는다. 본인이 그런 ‘완전한 노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겨울이 왔다고 해도 이제는 이 거리를 엄마가 와주리라 기대할 수 없다.


숙련된 그리움 때문인지 엄마를 닮은 사람들에게 눈길이 오래 머문다. 농촌을 소재로 한 TV 프로그램에서 사투리를 쓰며 지금 무슨 작업을 하는지 열심히 설명하거나, 구성진 노랫가락을 한 소절 풀어내는 이를 보면 엄마를 떠올렸다. 그들은 대게 우리 엄마와 비슷했다. 허리가 굽고, 알록달록한 몸빼를 입고, 한 손에는 호미를 한 손에는 엉덩이 방석을 들고 밭을 무대로 살아가는 농촌 노인네들. 또래 친구들마저도 농활이나 할머니 계신 곳으로만 간간히 방문했을 그 풍경이 내가 자란 고향이고, 그곳에 여전히 부모가 산다.


한편으로는 먼 고향이 있다는 게 위안이 될 때도 있다. 자본이 잠식한 도시에서 밀려난다면 고향은 내가 갈 수 있는 최후의 보루 같다. 그곳에는 영원히 늙지 않을 것만 같았으나 이미 너무 늙어버린, 아마 이십 년을 채 못가 소멸해 버릴 마을과, 부모와, 노인들이 있다.


내가 사랑하는 노인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까. 한 달에 한 번 부모를 만날 수 있는 근거리의 자녀들이 부럽다. 아마 누군가는 부모가 같은 하늘 아래 있기만 하면 거리 따윈 상관없다고 말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부모가 너무 가까이에 있어 괴로울 수도 있다. 나는 어떤 자식에겐 이미 부러움의 대상일 텐데 이렇게 다른 자식의 처지를 부러워하고 있다.


‘농촌 소멸’, ‘지방 소멸’이라는 말이 ‘부모 소멸’처럼 들리는 나의 고향은 한 걸음에 달려가기엔 어쩐지 먼, 쉬지 않고 달려도 차로 5시간이 걸리는, 대략 이곳으로부터 410km 떨어진,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송평로에 있다.


202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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