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대신 브랜딩에 관심을 가져 보았지만

나에게 브랜딩이 유효한가?라는 질문에 답하다

by 조각보자기

마케팅 토론에서 나오는 주제는 크게 보면 대부분 이 맥락이다.

당장의 매출이 우선이냐, 장기적인 관점의 브랜딩이 우선이냐.

나는 당연히 후자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쪽이다.

장의 생존도 중요하지만 차곡차곡 브랜드를 잘 만들어 가는 것, 브랜드가 세상에 태어난 의미와 가치와 철학에 대해 깊이 탐구하는 것,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 나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편) 다른 것들과 차별화되는 브랜드의 얼굴과 이름과 소개자료에 진심인 것.


그렇다. '모든 비즈니스는 브랜딩이다'라는 책의 제목처럼, 나는 마케팅에서 브랜딩이 무척 중요하다고 믿고, 업무적으로 가장 관심과 흥미가 큰 영역이 바로 브랜딩이다.


어렸을 적, LG의 리뉴얼 된 로고를 처음 봤을 때 가졌던 흥미가 생각난다.

브랜드 네이밍, 제품 네이밍에 꽤 관심도 많아 몇 개의 네이밍을 제안해 채택이 됐던 경험, 그리고 내가 가진 verbal 요소에 대한 민감성 등을 고려했을 때 문득 '마케터'가 아닌 '브랜드 기획자'가 되어 볼까를 생각했다.


어차피 마케터로 성공하긴 글렀고, 쿵짝쿵짝 마케팅 세상 나는 잘 모르겠고, (=관심 없고)

브랜드 기획자들은 왠지 좀 더 현실의 전쟁에서 비껴난 일을 하니까 덜 피곤할 것 같고(천만의 말씀),

무엇보다 진정성 있는 일을 찾고 싶은 나로서는 내가 가진 이러한 브랜딩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직업에 반영됐을 때 더 적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동안 진지하게 생각했다.

내게 브랜딩이 유효한가?


1년여의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아니다'다.





일하는 나 : 브랜딩은 중요해요

그냥 나 : 브랜드에 관심 없어요


나는 미니멀리스트를 동경한다. 최소한의 물건만 소유하고, 한 번 들인 물건을 오래 쓰고 싶다.

아니, 물건이나 소비주의에 관심도 없고 싶다.

어쨌든 내가 생각하는 마케팅은 그 좋은 물건의 구매고려집합군에 우리 브랜드를 넣는 일이다.

구매를 하고 말고는 고객의 판단이다.


만약 내가 그 고객이라면?

나에게 그 브랜드의 이야기가 유효할까? 브랜딩이 잘 된 브랜드를 구매할까?


물론 같은 품질과 가격이라면 선호하는 브랜드를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누군가에게 선물을 해야 하는 경우나,

사회적 평가나 시선이 중요한 자리에 있다면 그럴싸한 브랜드를 고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작해야 한 두번이다. 지속적으로 특정 브랜드와 관계를 맺지 않을 것이다.

더 좋은 품질, 더 좋은 가격이 있다면 나는 갈아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나는 철저히 non-brand의 세계에서 살아왔다.

유년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 문화나 취향, 브랜드 선호도가 없다. 내게 소비의 최우선 고려순위는 언제나 가격이자 가성비이다. 한때는 그것이 마케터로서 부끄러운 적도 있었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그것이 나인걸.

따라서 브랜드 기획자가 되기에도 내 삶은 물리적, 정서적 인프라가 부족한 것 같다.


소비하는 나에게는 메이커, 이미지, 정서적 효용 보다는 물건의 기능, 본래의 목적, 가성비가 우선이다.

휴대폰은 전화만 되면 되고, 향수는 향만 좋으면 된다.

'브랜드'라는 게 내 삶에 큰 의미나 가치를 제공하지 못한다.

그 '브랜드'를 가졌다고 내 삶이 더 특별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때로는 물건이나 경험을 통해 삶이 다채롭길 바라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무언가를 소비하고 사용하는 행위' 그 자체를 통해서지, '특정한 브랜드'가 중요하다거나 필요해서는 아니다.

게다가 나는 그 소비 행위마저 대개는 needs를 따를 뿐, wants가 아니다.


물론 누군가에게 브랜드는 너무나 중요한 선택의 지표다. 브랜드의 힘이나 개인의 취향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내가 그렇지 않다고 해서 브랜딩의 중요성이 감소하는 것 또한 아니다.


하지만 나는 진정성을 갖고 임할 다음의 내 직업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브랜드 기획자로 일하면서 정작 나는 '브랜드'를 믿지 않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


앞으로는 일터에서도 믿는 것을 말하고, 믿는 것을 실천하고 싶은데

나는 브랜딩에 대해 말만 할 뿐, 믿지도 않고 실천하지도 않으므로

브랜드 기획이란 일 역시 마케팅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는 여전히 위선적인 일이다.



이런 걸 핑계삼아 한 발 물러나는 건, 아무리 브랜딩에 관심이 있다 한들 이 일을 '그렇게 까지'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지도. 여러모로 내게 브랜딩은 유효하지 않다고 결론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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