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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녀의 서재 Sep 23. 2022

아버지의 쉼표 여행

쉼표, 마침표는 절대 아님.

매년 하는 일종의 연례행사 같은 여행이었다. 의무감으로 가득찬 여행. 

동생은 왜! 매번 자기가 여행 준비를 해야하냐며 짜증을 냈다.

아직 미혼에 부모님하고 같이 사는 동생이 준비하는게 당연한거 아닌가? 


"언니 새끼들 좋은거 보여주고 맛있는거 먹자고 가는 거 아니야!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어쩌자는 거야!"

아. 정말 진상. 애들은 바다보다 애버랜드를 더 좋아한다고! 어린애가 왜이렇게 센스가 없는지.

늘 우리의 가족 여행의 시작은 이랬다. 


그날 일정은 여수 향일암을 갔다가 점심을 먹고 해수욕장을 가는 것이었다.

향일암 입구에서 나와 남편과 아이들은 계단으로 가고, 부모님과 동생은 평지 산길로 가기로 했다.

무릎이 안좋은 엄마가 계단으로는 가실 수가 없었지 때문이었다.

그때 아버지께서는 입을 반쯤 벌리시고는 

"나는 여기 있을게. 다녀들 와."

하고 말씀하셨다.  이런... 무릎 아픈 엄마도 아무 말씀 없이 가시는데! 

솔직히 짜증이 났다. 아버지보다 더 연로하신 어르신들도 지팡이 집고 잘만 걸어가시는데, 아버지는 왜 가족 여행까지 와서 분위기를 망치시는지. 

아버지는 늘 그런 식이었다. 조금만 어렵다 싶으면 도무지 하려고 하지 않으셨다. 요 몇달은 더 심했다. 집에만 계시지 말고 산책이라도 다니시라고, 운동 좀 하시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해도 대답만 하실 뿐 행동에 옮기지는 않으셨다.  

"아휴. 아빠! 저기 좀 봐! 아빠보다 더 노인분들도 다 가자나. 맨날 안한다고 못한다고만 하지 말고 좀 하려고 노력이라도 해봐! 여기까지 와서 뭐하시겠다는 거야! 아이 몰라. 빨리 가요!"

동생의 말에 아버지는 묵묵히 어렵게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기셨다.

솔직히 속이 후련하기도 했지만 뭐 저렇게 심하게 말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때 아버지는 정말 울고 싶어하는 아이같은 얼굴이었다.


향일암을 어렵게 어렵게 다녀온 후, 여행의 나머지 날들을 아버지는 숙소 침대에 계속 누워계셨다. 

그날 저녁 식사를 위해 아버지께서 잠깐 일어나셔서 처음으로 하신 말씀은

"안녕하세요. 제가 이제 집에 가야할 것 같아요. 저기 저 좀 도와주세요."

였다. 그것도 혀가 말리는 소리로 말씀을 하시니 알아듣기도 정말 힘들었다.

원래 당뇨병을 앓고 계시던 아버지셨기에 무더운 여름 햇볕에 당쇼크가 왔나보나 했다.

몇년 전에도 아버지께서 정신줄을 놓은 적이 있었기에,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아버지께서 계속 옆구리를 부여잡고 아프다고 하셨다.

어떻게든 하시던 청소 봉사활동도 못 나가셨다. 

병원에 다녀오셨다.

몇 주에 걸쳐 검사가 진행되었고 8월의 마지막 날.

암 말기 선고를 받으셨다. 

폐부터 시작된 암세포들은 간으로 이제는 아버지의 뼈까지 파고 들어갔다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잘 걷지 못했고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서 못가겠다고 하셨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누워서 쉬고만 싶어하셨던 것이었다.

안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하고 싶은데,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아빠. 병원 다녀오너라 힘들었지."

"나... 내 여기 몸 속이 다 썩었대."

"아빠. 얼마나 아팠어. 아프면 말을 해야지. 왜 말을 안했어. 왜 참고만 있었어!"

"그게... 내가 잘 한게 없어서 아프다고 말을 할 수가 없었어. 미안해." 

몇날 며칠을 울었다.

꿈을 꾸면서도 울었다. 

그냥... 아버지가 덜 아프시기를 기도했다.


아버지께서는 이제 곧 첫 번째 항암치료를 받으신다.

그리고 나는 아들을 데리고 매일 아침에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 

아버지가 살면서 그렇게 사랑해 본적이 없다고 고백한 아버지의 손자를 데리고 말이다.


우리 모두 알고있다. 아무리 항암치료를 한다해도 아버지의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도 한 번만, 제발 내년 여름 가족 여행까지만 함께 해주시기를 

올해, 아버지와의 여행이 마침표 여행이 아닌 쉼표 여행이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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