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추 May 09. 2020

터무니없는 욕심

김치볶음밥


 매주 일요일이면 우리 집 식탁에는 큼지막한 후라이팬 하나가 놓여있다. 마치 연례행사와 같이 우리 가족은 주기적으로 김치볶음밥을 먹는다. 따지고 보면 가족 전체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는 대로 먹을 뿐이다. 맛이 없음에도 억지로 먹는다는 뜻은 아니다. 자주 먹어서 김치볶음밥의 황홀함에 익숙해졌을 뿐, 우리 어머니의 감칠맛 나는 김치볶음밥은 내 인생 음식에 꼽힌다. 평일에는 아버지를 비롯한 나와 오빠 모두 외출시간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식사시간 또한 겹치기 어렵다. 아버지는 자식들이 성인이 된 이후로 얼굴 마주 보며 함께 밥 먹는 시간이 줄어들었다며 섭섭함을 자주 토로하시지만, 식사시간을 맞추는 일이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우리 가족은 매주 일요일 아점(아침과 점심 사이의 시간에 먹는 식사를 일컫는 말)만은 반드시 함께 식사를 해야 한다는 암묵적 규칙을 만들게 되었다.


 이 신성한 일요일 아점 시간을 독식하는 메뉴가 바로 ‘김치볶음밥’이다. 굳이 다른 반찬을 만들 필요 없이 간단하고 쉽고 빠르게 우리 가족 모두의 만족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유명하고 비싼 음식점의 김치볶음밥을 먹더라도 우리 집 김치볶음밥 이상의 맛을 선사하지는 못했다. 어머니 표 김치볶음밥은 우선 잘 달구어진 후라이팬에 스팸을 볶는 일부터 시작한다. 그렇다. 그냥 쌀밥과 먹어도 한 공기 후딱 사라진다는 바로 그 스팸 햄이다. 스팸과 함께 송송 썰어놓은 대파도 달달 볶아준다. 향긋한 파 향기가 코 끝을 자극할 때쯤이면 대망의 김치가 투입될 순간이다. 이 순간만을 위해 냉장고에서 잘 숙성되고 있던 신 김치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이내 후라이팬 재료들과 한 몸이 된다. 김치가 투입되는 순간, 자글거리는 후라이팬의 소리는 한층 더 커져 내 청각을 강하게 자극한다. 설탕과 고춧가루로 감칠맛을 더하고, 진간장으로 깊은 풍미를 더해준다. 재료들이 후라이팬 위에서 춤을 추며 조화롭게 섞였다면 이제 밥이 투입될 순간이다. 절대 금방 지은 밥이 이 자리를 차지해서는 안 된다. 어제 먹다 남은 꼬슬꼬슬한 찬밥을 넣어야만 떡지지 않고 살아있는 밥알을 만날 수 있다. 밥을 재료들과 함께 뭉치는 곳 없이 고르게 볶아준 뒤, 화룡점정인 참기름으로 마무리를 해주면 엄마 표 김치볶음밥이 완성된다. 어머니의 기분이 좋은 날이면 계란 후라이까지 추가적으로 올라간다. 터뜨리지 않은 계란 노른자를 김치볶음밥 위에 조심스레 올린 후에 토옥 터뜨려 살살살살 같이 비벼먹으면 정말 그야말로 환상적인 맛이다.


 어머니는 워낙 손이 크시기에 네 식구임에도 항상 6인분 가량의 김치볶음밥을 내놓으신다. 완성된 김치볶음밥이 식탁에 놓이는 순간부터 숟가락 전쟁이 시작된다. 이는 나와 오빠 간의 숟가락 전쟁이다. 여기서부터 내가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려는 주제가 시작된다. 사실 오빠는 음식을 조금이라도 더 먹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전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다. 그저 평범하게 건장한 20대 남성의 식성에 맞추어 밥을 먹는 것이다. 문제는 욕심이 많은 ‘나’이다. 음식에 대한 욕심보다는 무조건 오빠보다는 더 많은 음식을 차지하겠다는 욕심이 항상 나를 과식하게 만들었고, 이 패턴이 몇 년째 계속되며 지금의 몸에 이르렀다. 참고로 나는 근육 0%에 가까우며 완벽한 지방으로 가득한 통통한 몸매를 소유하고 있다. 오빠는 원래 빠르게 많이 먹고 나는 억지로 빠르게 많이 먹는 사이에 식사속도가 느리신 아버지는 항상 피해를 보신다. 성인이 되어서까지 이런 터무니없는 욕심을 부리는 내 모습이 창피하지만 이 글을 통해 나의 행동과 감정을 직면해보고 싶기에 털어놓아야 할 것 같다.


 오빠에게 터무니없는 욕심을 부리는 것은 비단 김치볶음밥뿐만이 아니다. 음식을 비롯한 옷, 신발, 화장품 등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항상 욕심을 부린다. 어머니가 오빠에게 옷을 사주면 반드시 나에게도 옷을 사달라며 떼를 썼고, 오빠가 작은 용돈이라도 받으면 나는 노발대발하곤 했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그 빈도가 확실히 줄어들긴 했지만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과연 나는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 이러한 억지를 부리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오빠가 싫어서일까. 이상하게도 그것은 또 아니다. 나는 나보다 순진하고 침착한 성격을 지닌 오빠를 참 좋아한다. 이것은 확실하다. 아마 내가 욕심을 부리는 대상은 오빠라는 사람이 아닌 오빠라는 위치이지 않을까?


 나는 우리 오빠와 한 살 터울인 연년생이다. 친구인 듯 친구 아닌 친구 같은 연년생 남매였기에 우리 둘은 어렸을 적부터 항상 같이 붙어있었고 또 그만큼 많이 다투었다. 오빠를 향한 욕심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시절부터였던 것 같다. 모든 학생들이 그러하듯 우리 남매는 시험 점수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시험 점수가 높으면 착하고 성실한 아이, 시험 점수가 낮으면 생각 없는 아이로 말이다. 방목형 교육을 실천하신 부모님께서는 결코 시험 점수로 우리를 나무라거나 보채지 않으셨다. 그저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격려해주셨다. 오빠는 오빠대로 첫째의 부담감이 있었던 모양인지 항상 우수한 성적을 받아왔다. 사교성 좋은 성격 탓에 학급 회장은 물론이고 전교 회장까지 도맡아 할 만큼 친구관계도 좋았다. 부모님은 이러한 오빠를 너무나도 자랑스러워하셨고 진심으로 기뻐하셨다.


 나는 이렇게 잘난 오빠에 비해 미운오리새끼마냥 내세울 것이 없었다. 공부도, 재능도, 친구관계도 그저 그랬다. 부모님이 나를 닦달하지 않으셨음에도 스스로 자괴감과 열등감에 자주 빠져있었던 것 같다. 학급친구도 아닌 연년생 친오빠에게 말이다. 한 살 터울인 데다가 더욱 가까운 가족관계였기에 비교 아닌 비교를 자주 당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해 주실 만한, 부모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을만한 무언가를 증명해 보이고자 계속해서 발버둥 쳤던 것 같다. 이 발버둥은 자연스레 오빠를 향한 열등감으로 옮겨갔다. 뭐든지 오빠 이상은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옥죄어왔다.


 드넓은 숲을 보지 못하고 눈 앞의 나무만 바라보던 나는 성적으로 줄 세워지는 세상에 물들어갔고, 오빠보다 더 나은 성적을 쟁취하기 위해 이 악물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덕에 중학교 입학 이후 나의 성적은 점차 향상되어갔고 주변에서도 모범생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삼 년 동안 학급 임원을 맡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상위권의 자리에 올라서니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오빠에 대한 열등감과 더불어 주변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기대까지 더해져 부담감의 무게는 나날이 커져만 갔다. 오빠 또한 고등학교 시절까지 여전히 모범생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나는 오빠를 쫓아 부담감을 얹고 계속해서 공부해나갔다. 내게 혼란이 찾아온 것은 대학 입학 이후부터였다.




 열심히 공부한 결과 나는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문제는 우리 오빠였다. 3년 내내 전교권 10등 내를 유지하던 오빠가 가장 중요한 시험인 수능을 망쳐버린 것이다. 오빠는 수능에서 고등학교 3년을 통틀어 최하위의 등급을 받게 되었고, 결국 재수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 허탈감은 이루 말하지 못할 것이다. 오빠는 또다시 그 지긋지긋한 수능 문제집들을 펼쳐들 수밖에 없었고 오지선다의 정형화된 암기세계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고역과도 같은 1년의 수험생활을 더 보낸 오빠는 무슨 불운이 닥쳐온 것인지 그 다음 수능마저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얻게 되었다. 4년간의 수험생활에 지칠 대로 지쳐버린 오빠는 자신의 목표보다 한참이나 낮은 대학에 가겠다고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어디에서든 항상 나보다 앞서가던 오빠가 처음으로 멈칫했던 순간이었다. 오빠만큼 당황스러운 것은 나 자신이었다. 그토록 오빠를 견제하고 질투했던 나인데, 오빠를 제쳤다는 사실이 전혀 반갑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보다 나는 대체 무엇을 얻기 위해 이토록 달려왔으며 무엇을 위해 이리도 욕심을 부린 것인가 하는 혼란스러운 감정이 나를 뒤흔들어 놓았다. 그 후에 불쑥 찾아온 감정은 미안함이었다. 내 스스로 만들어낸 열등감 때문에 오빠에게 근거 없는 욕심을 부리고 질투했던 것이 너무나도 낯부끄러워졌다. 자극제가 되어준 오빠 덕에 대학에 온 나는 오빠가 없었더라도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까? 항상 일 년 앞서 내 갈 길을 닦아주던 오빠가 없었더라도 탈선하지 않는 올바른 삶을 살 수 있었을까?


 글을 쓰는 이 순간을 통해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끼던 나 자신을 직면한다. 어느 순간부터 열등감에 사로잡혀 정작 나라는 존재는 잊고 살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쫓기고 있던 것은 오빠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를 모범생의 틀에 가두면 가둘수록 내 존재는 점차 사라지고 있었음을 왜 알지 못했을까. 누군가가 잘 닦아놓은 길을 억지로 쫓아가는 것이 과연 옳은 길일까. 나만이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찾아나가리라 결심해본다. 험난한 길이던, 유턴하는 길이던, 그 길을 걸어 나가며 나의 모난 부분들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오빠에게 터뜨리지 않은 반숙 계란 노른자를 양보하고 싶다. 그리고는 함께 엄마가 만들어준 김치볶음밥을 오순도순 나누어 먹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다시 우연히 찾아올 편도권 표를 기다리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