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낯을 가리고 예민한 줄 알았던 아이에게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함들이 있음을 초등학교 입학 후에야 깨달았다. ‘ 모든 아이들은 서로 다르다.’는 생각에서 ‘ 우리 아이는 조금 더 다른 것 아닐까? ’ 하는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아이는 학교 적응만으로도 힘들어했기에 학원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집에서 책 읽기, 일기 쓰기, 영어책 읽기, 수학 교과서 복습을 했는데 매시간들이 전쟁이었다. 아이의 하루는 온종일 짜증으로 시작해 짜증으로 끝났다.
언제 영어책 읽을까? 글쓰기 할까? 간식 먹고 할까? 나의 머릿속은 하루의 미션을 완수하려는 생각으로 가득하고, 아이는 엄마가 언제 공부하라고 하려나 서로 눈치를 보며 지내는 하루. 심지어 내 눈에 아이가 그날 해야 하는 미션으로 보이기도 했으니 그 하루가 행복할리 없었다.
다른 집 아이들은 영어학원은 기본이고, 수학에 논술까지 하루가 바쁜데, 그렇게 못하니 집에서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안했고, 아이를 채근했다. 아이에게 조금만 시키는 엄마라고, 다른 아이들의 반도 안 되는 양이라고, 겨우 하루에 한 장이라며 나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아이는 3년 동안 영어책을 읽었는데, 결과적으로 한 단어도 읽어내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은 영어학원에 다니며 영어를 점점 잘하고 있는데, 이렇게 또 1년을 허비하면 4학년도 아무런 성과 없이 보내게 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렇게 첫 사교육, 영어 과외를 보내게 되었다. 하지만 진짜 전쟁은 그때부터였다. 일주일에 단어 20개 외우기, 그것이 유일한 숙제였는데 그 단어 20개를 외우는데 일주일을 다 소비했다.
아이는 외우고 또 외워도 외우지 못했다. 보고, 읽고, 쓰고, 말하는 어떠한 방법을 써도 영어 단어 하나 외우는 게 너무 힘들었다. 학교에 다녀와서 밥 먹고 자는 시간 빼고는, 단어만 외워야 했다.
괴로웠다. 아이는 숙제이기에 단어를 다 외우길 원했고, 하루의 모든 에너지를 단어 암기에 쏟아야 했다.
이건 정상이 아니야. 이제 4학년인데.. 앞으로 모든 10대를 이렇게 살 순 없어.
누군가에게 아이에 대해 듣고 싶었고 들어야만 했다. 아이가 바보가 아니라면 이러는 이유가 있을 거야.
누군가가 " 이 아이는 공부시키면 안 됩니다."라고 말해주면 정말 안 시킬 거야라는 마음으로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를 예약했다. 많이 지쳐있었고, 내 아이는 왜 이럴까?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아이를 키우는 11년 동안 한 번도 이해되지 않았고, 이해할 수 없었던 아이. 나와 정말 맞지 않는다며, 너는 나를 너무 힘들게 한다는 이유로 때로는 밀어내기도 했던 시간들. 그렇게 그 시간들의 이유를 찾는 첫 단추를 꿰게 되었다.
초진, 수많은 종이에 그동안 머릿속에만 가득했던 아이의 이상한 점들에 대해 기록해야 했다. 이상한 점은 한두 개가 아니었기에 적고 또 적어도 부족했다. 11살인 아이는 아직도 밤에 옷을 소변을 본다. 틱이 있다. 어릴 때부터 지금도 종종 엄마와 잘 못 떨어진다. 엄마와 잠시라도 통화가 되지 않으면 악을 쓰며 운다. 아직도 자다가 깨서 소리를 지른다. 친구를 잘 못 사귄다. 말을 잘 못 듣는다. 글을 부정확하게 읽는다. 글씨가 엉망이다. 등등등.. 이유 모를 조합되지 않는, 수많은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점을 적어냈다.
아이는 풀 배터리, 학습장애, CAT(ADHD 확인 검사), 이렇게 3가지 검사를 권유받았다. “ 보통은 비용적인 문제도 있고 해서 아이에게 해당될 것 같은 한두 가지 검사를 권하는 편인데, 모두 다 심한 건 아니지만 모든 영역에 걸쳐있는 느낌이 있어요. 세 가지 검사를 모두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의사 선생님의 말씀과 함께 검사를 하게 되었다. 드디어. 후련했고, 또 두려웠다.
결과는 진단명 다섯 개.
ADHD, 학습장애(난독), 불안장애, 야뇨, 틱, 그리고 이어지는 말들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진단 전과 후의 아이는 똑같다. 똑같이 사랑스러운 내 아이인데, 왜 진단을 받은 후 마음은 지옥일까? 달라진 게 없는데 마음속이 지옥인 것을 나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을 것이라 예측했었고, 그게 뭔지 궁금했고, 명확히 알고 싶어 찾아간 병원. 그곳에서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아이의 상태를 확인 후 알려주신 것뿐인데, 내 마음은 하루아침에 괴로움으로 힘들어졌다.
며칠을 울다가 끙끙대다가, 마음은 정리되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아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해주기 위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5가지 진단을 받은 아이 엄마로의 버전업을 꾀했다.
사진출처_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