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유하는 사유 Apr 19. 2023

네가 나를 몰랐으면 좋겠어

숨기기 위해 드러내는 수많은 것들

  "넌 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지. 그게 이 모든 사태의 진상이지?"


  '세일즈맨의 죽음' 中


  늦은 밤, 가장 친한 친구가 눈물을 흘리며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내가 너무 한심해. 


  술에 잔뜩 취해 있었다. 나보다 월급도 많이 받고, 회사에서 인정도 받는데 그게 무슨 소리냐며 위로를 해줬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스스로에 대한 친구의 자책은 한참이나 이어졌고, 그러다 우리는 어영부영 전화를 끊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나서야 내가 '그게 무슨 소리냐며' 친구에게 한심하다고 느끼는 이유를 물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사실, 나는 친구의 자존감을 무너뜨린 장본인이 나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즈음 친구는 회사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매일 밤 같이 게임하자며 내게 연락을 걸어왔는데, 내가 그때마다 제발 생산적인 일을 하자는 말로 친구를 다그쳤기 때문이다. 당시의 나는 PT를 받으며 운동하고 있었고, 영어 공부를 하고 있었고, 누군가의 지시를 받기 싫다는 이유로 나만의 영상 콘텐츠도 준비하고 있었다. 연초였으니까, 이제는 달라져 보자는 다짐이 아직 힘을 잃지 않았을 때였고, 그래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언제까지 게임만 하고 살 수는 없지 않냐. 우리도 정신 차리고 인생 한번 멋지게 살아봐야지' 뭐 그런 말을, 참 듣기 싫게 포장해서 친구에게 선물했던 거다. 


  12살 때였던가, 한창 날이 추운 때였는데 친구들과 떠들며 내가 분홍색 내복을 자꾸만 언급했던 기억이 난다. 대화의 흐름에도 전혀 맞지 않았을 거다. 너 속에 분홍색 내복 입고 있지? 와 같이, 무차별적으로 친구를 빨간 내복 입은 놈이라고 몰아세우며 장난치는 식이었다. 

  그러다 체육 시간이 찾아왔는데, 나는 50m 달리기를 하다 그만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넘어지면서 내 체육복은 위로 말려 올라갔고, 나는 분홍색 내복을 입고 있었다. 내가 입기 싫다고 아무리 떼를 써도, 날이 추우니까 무조건 입고 가라던 할머니의 작품이었다. 내가 내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친구들이 알면 놀릴 거라는 것도, 그리고 내복의 색이 분홍색이라는 것도 좋은 놀림거리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숨기려고 했는데, 사실을 숨기기 위해 택한 방식이 '덮어씌우기'였다.


  나는 종종 그런 얘기를 듣는다. 그렇게라도 생각하는 게 어디야. 너 정도면 열심히 살고 있는 거야 같은. 그럼 나는 내가 항상 일을 얼마나 미루고, 얼마나 패배주의적인 생각에 절어 살고 있는지 잘 몰라서 하는 소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프리랜서라 안정적인 수입이 없다 보니 만일을 대비해 저축도 꾸준히 해야 하고, 이직을 준비하는 한 두 달 동안 몸값을 올리는 데 열과 성을 다해야 하는데도 그렇게 살지 않는 걸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스스로를 한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여간 쉽지 않다. 항상 외줄 타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타성에 젖어있다니, 놀라우리만치 답답한 모양새다.


  그래서 이제는 말을 아끼려 한다. 여태 살아온 길을 보면 나라는 놈이 딱히 무언가를 도전할 것 같지는 않아서, 적어도 내 치부를 드러내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려면 주변 사람을 들쑤시는 일은 이제는 멈춰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렇다. 친구들은 나의 분홍색 내복을 보고도 놀리지 않았고, 스스로가 한심하다며 눈물 흘리던 친구도 나 때문에 우는 건 아니라고 했으니까. 그리고 내가 운동도, 영어 공부도, 다른 어떤 일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으니까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가 너무 무능하게 느껴져서, 오늘은 짧게나마 글이라도 써봤다.

작가의 이전글 우린 어떤 죽음에 눈물 흘릴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