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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은WhtDrgon Apr 30. 2024

FEWK:KEITI -Q1-

FEWK 사이버펑크 세계관 오프닝북 텍스트 



0. 신성의 공단계 개통. 40여년전. 


신성 인피니트 디멘션 (Sinsung Infinite Dimension, SID) 


"여러분의 무한한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곳, 신성 인피니트 디멘션(SID)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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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인피니트 디멘션(SID), 당신의 가능성을 현실로! 


-40여년전. 수평101년. (주)신성의 일명 ‘공단계' 개통.  


1-1 새우거리

네온사인이 빛나는 밤, 케이티는 와치벨 새우거리를 걷고 있었다.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이 거리, 골목 구석에  40년 전의 신성 광고가 여전히 빛나는 오래된 거리에서 그녀는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재생사라는 직업으로서.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작은 가게. 그곳에서 케이티는 남의 추억을 되살리는 기묘한 능력으로 연명한다. 손님들이 가져오는 영화상 카드를 통해 그들의 꿈과 상처를 만난다. 때론 위험한 순간도 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 여긴다. 나름 놀라운 기술이지만, 사실 그정도는 임플란트 업그레이드나 재생기기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결국 그녀의 고객은 기술에 적응할 생각이 없는 노인들 정도였다. 

오늘도 문을 열고 그들을 맞이한다.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 펼쳐진 새우거리의 모습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첨단 기술과 인공물들 사이로 각자의 결핍을 채우려는 사람들. 우리는 모두 상처 입은 채 살아간다. 가끔은 자괴감에 빠질 때도 있다. 누구나 꿈꾸는 자본구의 화려함과 달리, 이곳은 너무도 초라하고 더럽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누군가는 상처를 보듬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케이티의 삶의 이유라 믿는다.

그렇게 고단한 하루가 시작된다. 고물 더미를 개조한 컨테이너 건물 안, 그녀는 접속 장치를 점검하고 영화상 카드를 정리한다. 낡은 점퍼를 입은 노인이 가게 앞에 멈춰 선다. 주름진 손에 영화상 카드를 쥐고서. 케이티는 반가운 미소를 짓는다. 이 단골손님은 늘 따뜻한 추억을 찾아온다.

"어서 오세요. 오늘은 무엇을 재생해 드릴까요?"

"요즘 잠이 잘 안 와서 말이다. 예전에 아들이랑 낚시 갔던 게 자꾸 떠오르네..."

침대에 누운 노인의 이마에 접속 장치를 붙인다. 하얀 금속이 스며들고, 이내 그는 평화로운 잠에 빠진다. 

영화상 카드의 장면이 펼쳐진다. 노인과 그의 아들, 녹음이 우거진 호숫가에서 나눈 담담한 대화까지. 케이티는 그 온기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재능은 때론 축복이었지만, 때론 고통이기도 했다. 누군가의 트라우마를 고스란히 껴안아야 할 때면 숨이 막혀왔다. 그럼에도 케이티는 이 길을 택했다. 상처 입은 영혼들을 위로하고, 잊힌 꿈을 되찾아주는 것. 할머니가 남긴 유산이자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라 여기기에.

사실 택했다는 말은 이상했다. 할 수 있는 것, 가진 것이 그 것 밖에 없어서 선택지는 하나였을 뿐이다. 할머니가 터를 잡았던 덕분에 자연스럽게 이곳에 녹아있을 뿐 와치벨 새우거리는 결코 녹록치 않다. 이곳은 전국에 이름난 우범지대이자 환락가이다. 그럼에도 케이티가 익숙한 공간은 여기 뿐이었다. 

골목 끝에서 저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 케이티는 한숨을 내쉰다. 낯익은 골칫거리, 음란물을 찾는 늙은이가 또 오고 있다.

"아이고, 저 진상은 오늘은 또 뭘 찾으려나."

짜증을 감추며 에로 영화 카드 박스를 찾아 준비했다. 저 진상이 자주 찾던 카드가 어디 있었는지와 함께 이 막장 인생이 대체 언제까지 이어질지. 그 해답은 어디있을지가 궁금했다. 

'이대로는 안 돼. 뭔가 변해야 해.'

속삭이는 목소리에 스스로도 놀랐다. 변화에 대한 갈망이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자조 섞인 웃음이 새어 나왔다. 케이티는 새우거리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적어도 누군가에겐 위안이 된다,  상처 입은 이들에겐 작은 희망과 위로가 될 수 있다는 보람을 품었다. 보람. 지금은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1-2 노신사

문이 열렸다. 문 앞에는 고급스러운 정장 차림의 노신사가 서 있었다. 케이티는 순간 얼어붙었다. 호색의  늙은이들과 달리, 그에게선 기묘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Sinsung Corp. LEVEL 5]

노신사가 내민 블랙 카드에 새겨진 글자. 신성, 그 이름은 두려움과 경외감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신의 영역에 다다른 초일류 기업. 그들이 왜 하필 이곳을 찾은 걸까.

"아가씨, 이건 단순한 거래가 아니오. 자네의 재능이 필요해서 찾아왔소."

노신사는 진지했다. 푸른 홍채 위로 사이버 렌즈가 빛났다. 범상치 않은 이의 기색이 역력했다.

불길한 예감에 케이티는 망설였다. 막연한 위험이 엄습해왔다. 주변에는 신성의 제품이 넘쳐나지만 이렇게 만나면 또 다른 부담이었다. 와치벨의 어느 누구도 신성의 손아귀에선 자유롭지 못했다.

“이건 특별한 재생이 필요하겠는데요…. 제가 할 수 있을지,”

“밖에 스페셜 플레이 2만 바이트라고 써있던데?”

“아… 그건 그런게 아니라…. 하…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실 그 스페셜 플레이가 더 집중해서 재생자의 맥락적 해석을 더하기 때문에 훨씬 감성적이 되고 디테일이 살아나지만 그 과정에서 케이티가 트랜스 상태로 들어가서 현실의 의식이 희미해졌다. 이곳의 손님 중에는 그걸 노리고 이 스페셜 플레이를 찾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아예 문 앞에 두 배 가격을 붙여놨던 것이었다. 


노신사를 준비된 자리에 눕히고 영화상 카드에서 피어오르는 염상에 집중했다. 화면 가득 노이즈가 가득했다. 그리고 노이즈 안의 영상. 암호화가 있었고, 해독기가 영상을 풀어냈지만 여전히 알아보기 힘들었다. 케이티는 더더욱 집중하여 노이즈 속의 맥락을 찾아냈고, 먼지낀 창문이 닦이듯 장면이 열렸다. 

음산한 분위기의 회의실. 그곳에선 정체모를 모의가 오가고 있었다. 프로젝트 Z, 금고, 그리고 늙은이의 처분. 단편적인 정보가 뒤섞여 쏟아져 나왔다.

한편으로 이사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려움, 야망, 그리고 잔혹한 결의까지.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면 모든 것이 정당화되는 듯했다. 강렬한 인상의 파편들. 그것은 세상에 알려져선 안 될 진실의 조각이었다. 머릿속에서 웅웅거리는 혼란과 두려움. 케이티는 숨이 막혀왔다.

트랜스 상태가 끝나고 케이티가 눈을 떴을 때, 노신사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케이티의 손에 쥐어진 묵직한 광제금화뿐. 진실은 위험하다… 노신사의 혼잣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다. 불길한 계시처럼 다가오는 그 말에, 케이티의 심장이 요동쳤다.

광제금화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처음 봤지만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빛나는 표면 아래 감춰진 어둠. 그것은 자신을 덮쳐올 폭풍의 전조처럼 느껴졌다. 영화가 던진 수수께끼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노신사의 방문이 우연일리 없다. 중요해보이는 그런 것들이 새우거리의 인간 비디오재생기에게 우연히 흘러왔을리 없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운명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미지의 세계로 발을 들이는 계기. 

케이티는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있었으면 했다.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표류하는 작은 배처럼. 그저 진실의 파편을 움켜쥐고 버텨내는 수밖에 없고 싶기도 했다.


1-3 가상의 몸, 진짜 고통

문신 남자는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 낡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머리를 한쪽으로 쓸어넘기며 주변을 둘러보던 그가 튼튼해 보이는 손을 뻗어 케이티에게 영화상 카드를 건넸다.

"야, 이거 특별 재생 좀 해주쇼."

남자의 팔뚝에는 푸른 깃발 모양의 문신이 선명했다. 러너들 사이에선 자신들만의 문양을 스티커처럼 새기는 게 관례같은 유행이긴 했지만 그보다 케이티의 주의를 끈 건 깃발 위로 어렴풋이 보이는 'Z'라는 문자였다. 노신사가 언급했던 프로젝트 Z가 떠오르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불길한 예감을 감추며 트랜스 장치를 장착한다. 영화상 카드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피투성이 환자복,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들, 정체 모를 공포. 모든 것이 뒤죽박죽 뒤섞여 쏟아져 나왔다. 절규가 터져 나오려 했지만 목에서 나오는 건 앓는 소리뿐. 

한계에 다다른 순간, 남자의 손아귀가 케이티의 목을 짓눌렀다. 심상에서 겨우 빠져나온 케이티의 눈에 그의 형상이 들어찼다. 사나운 맹수를 방불케 하는 광기 어린 눈빛.

"가만있으랬잖아, 계집애!"

비명도 지를 새 없이 주먹과 발길질이 쏟아진다. 이건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고통의 범주를 넘어선 폭력이었다. 현실이었다면 이미 숨이 끊어졌을 지경. 문신 남자는 미친 듯 케이티를 때렸다. 자신의 광기를 쏟아내기라도 하듯. 그러다 무언가 떠올랐는지 맥없이 케이티를 내팽개쳤다. 

“야, 이거 누군지 알아?” 

어제의 그 노인이다. 그 순간 케이티는 이 폭력과 심상이 자백을 위한 고문도구임을 눈치챘다. 남다른 폭력적 고통이 목적을 가진 설계임을 드러냈다. 케이티는 그 와중에도 기억을 뒤져 평온한 심상을 끄집어내 스스로에게 재생하며 의식을 가다듬었다. 

“아니요. 처음봐요.”

케이티의 대답에 문신남자는 케이티를 던져버리듯 놓고는 몇백 바이트 어치의 칩을 대충 케이티의 몸 위에 던지고는 투덜거리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 

바닥에 널브러진 채 가쁜 숨을 몰아쉬던 케이티의 눈에 남자가 구겨 던진 쪽지 하나가 띄었다. 노신사의 얼굴이 그려진 낡은 사진이었다. 피멍이 들고 살갗이 터진 모습으로 케이티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오늘 당한 폭력에 눈물이 날 법도 하건만, 이상하리만치 무감각해진 자신을 발견한다. 

사실 새우거리 인공계에서의 신체를 수복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죽지만 않는다면. 아니 드랍아웃만 당하지 않는다면. 케이티는 가볍게 신체를 초기화시키고 한숨을 내쉬었다. 신체의 상처는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정신적 충격은 생각보다 오래갈 것 같았다. 

이 모든 폭력이 낯설지 않다. 새우거리에서 보내는 나날들, 고통의 크기만 다를 뿐 본질은 다르지 않다. 

남다르게 전문적인 군사용 전문 고문 영상 덕분에 케이티는 자신이 익숙한 고통 속에 살고있다는 사실을 새삼 자각했다. 그것이 삶의 전부인 듯싶다. 

노신사에게 받았던 광제 금화를 노려보던 케이티의 마음에 씁쓸함이 밀려든다. 아무리 위로금을 받아도 마음의 짐은 가벼워지지 않는다.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진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은 할머니처럼 비극적 종말은 원치 않는다. 뭔가 특별한 존재가 되어 보고 싶다는, 위험한 충동 같은 게 꿈틀거렸지만 케이티는 자신도 모르게 한적한 낚시를 하는  황홀한 상상에 빠져들었다. 


1-4 서민구


새우거리의 재생사에게서 빠져나온 케이티는 이내 서민구 아파트의 좁은 방 안에서 눈을 떴다. 새우거리가 접속자가 제한되어있는 폐쇄 인공계인 탓에 곧 새우거리에 있는 케이티의 몸은 새우거리를 찾아오려는 누군가에게 임대될 것이다. 임대료가 얼마인지는 몰랐다. 그건 새우거리 상인회의 것이었으니까.

삐걱대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 현실의 무게가 그녀를 짓눌렀다. 접속을 끊었지만 폭력의 기억은 생생했다. 창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빽빽이 들어선 아파트 건물들이 하늘을 가렸다. 햇빛 한 줄기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유일한 위안은 이곳이 도시의 최외곽, 노마드들의 영역과 맞닿은 경계는 아니라는 거였다. 약 1km쯤 저 화려한 자본구에 가까운 위치였다. 서민구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보다는 낫다며 자조하곤 했다. 적어도 일정한 수입은 있으니까. 그 1km는 케이티와 이웃들의 자부심이었다. 버려진 삶에서 1km 떨어진 삶. 때론 유랑민들의 자유가 부러웠다. 그들은 이런 궁상맞은 틀에 얽매이지 않을테니까.

욱신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케이티는 부엌으로 향했다. 싱크대 밑에서 진통제를 꺼내 입에 털어 넣고, 낡은 찬장 깊숙이 숨겨둔 컵라면을 꺼냈다. 광제금화를 처분하고 받은 돈으로 산 것이었다. 뜨거운 물에 불려 연명하는 오얏보다는 사치스러운 식사였다. 

광제금화는 지금은 쓰지 않지만 어디선가에서는 무척 비싸다고 들었다. 노신사에게 광제금화를 받았을 때 크게 기대했지만 상인회에 처분하고 받은 금액은 기대만큼 대단하진 않았다. 그래도 적지 않은 금액이라 밀린 월세와 잡비를 모두 내고, 이것저것 살 수 있는 돈이었다. 

포트 안의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어스름 저편, 자본구의 마천루가 번쩍이고 있었다. 그곳에선 복제기라는 기계가 흔하다고 했다. 정제된 흑공 용액만 있으면 원하는 대로 음식을 뚝딱 만들어낸다는 마법 같은 물건. 그것은 영화상 카드와 흑공의 만남으로 탄생한 혁명이었다. 정확한 상상력의 설계도인 영화상 카드에 흑공 용액을 결합하면, 원하는 물건을 국한 없이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신의 영역에 가까운 기술의 승리였다.

'보석은 물론이고, 명품 가방까지도 순식간에 만들어낸대. 그런 삶은 나에겐 영원히 허락되지 않는 걸까… 이 거리의 사람들에겐 평생 무의미한 기계겠지. 더 노력하지 않은 내 잘못인걸까…' 아무리 하찮은 존재라 해도 이런 식으로 살 죄까진 없었다.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꿈틀거렸지만 고문영상이 플래시처럼 터지며 케이티를 괴롭혔다.  

최근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려보려 애썼다. 오래전 노마드 클럽 공연에 간 적이 있었다. 친구의 끈질긴 졸라붙음에 못 이겨 따라갔던 곳이다. 그날 만난 덥수룩한 금발의 남자가 유독 따듯하게 대해줬던 게 기억났다.  하지만 그 기억도 이내 우울함으로 물들었다. 그 친구가 얼마 지나지 않아 노마드 구석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던 것이다. 범죄였는지, 사고였는지, 아니면 자살이었는지조차 알 길이 없었다.  

삶은 케이티에게서 좋은 것들을 앗아가기만 하는 것 같았다. 행복이라는 감정은 언제나 덧없이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마치 빛바랜 꿈처럼.  하지만 최근의 일들은 달랐다.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사건들이 무언가를 시사하는 듯했다.  

케이티는 늘 돈에 쪼들렸고, 미래는 늘 막연하기만 했다. 게다가 노신사와 Z, 그들이 남긴 깊은 인상이 자꾸만 케이티의 뇌리를 맴돌았다. 미스터리한 사건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듯한 그들과의 만남을 그냥 잊기에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심상치 않았다. 지금 아니면 두 번 다시 기회가 없으리라는 예감. 익숙한 일상을 깨줄 한 줄의 금. 

창밖을 응시하던 케이티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힘없던 어깨를 폈다. 다리에 힘을 주고 버티듯 섰다. 흔들리는 눈동자엔 작은 불씨가 이는 듯했다. 제발. 이 불씨를 옮겨붙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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