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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문화의 오해 : '병맛' 아니다.

1줄 요약 : "아쫌, 병맛 아니라구! 이 양산판매족들아."

by 김동은WhtDrgon

마케팅 현장에서 B급 문화를 '병맛'이라 지칭하는 현상이 늘고 있다. 한때 '가성비'란 말이 무분별하게 사용되다 그 의미가 퇴색된 것처럼, B급 문화의 본질도 오해 속에 묻히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이유를 차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B급의 단어에서 문화의 뿌리는 1930-50년대 할리우드에서 찾을 수 있다. 더블피처라는 동시상영 구조에서 전면에 나서는 A무비를 서포트하는 B무비가 있었고, 묶음 판매 효과를 위해 상대적으로 싸고,덜 유명한 배우를 썼을 뿐, 엄연한 1:1 상영의 기회이며 성공의 경로였던 것. 반지의 재왕으로 유명한 피터 잭슨과 많은 감독들은 이 길을 열정과 도전의 문화 경로로 만들어버렸다.


당시 B급 영화는 단순히 저예산이나 조잡한 제작물을 의미하지 않았다. 좀비들이 어설픈 분장으로 등장하고 카메라가 흔들려도, 참신한 설정과 기발한 반전으로 관객들은 열광했다. 이미 화려한 연출의 영화들을 경험한 관객들이 새로운 시도와 참신한 이야기에 매력을 느낀 것이다. 이는 현재의 '방치형 게임' 현상과 닮았다. 언리얼 엔진으로 만든 초현실적 그래픽의 게임들 사이에서, 수많은 정통 게임을 경험한 플레이어들이 오히려 단순하지만 새로운 규칙을 가진 픽셀 게임에서 재미를 발견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B급 문화의 매력은 '언더독' 스토리텔링과 맞닿아 있다. 피터 잭슨이 저예산 고어물로 시작해 '반지의 제왕'의 거장이 되었듯, 완벽해 보이는 주류에 대한 도전은 늘 매력적인 서사가 되어왔다. 1984년 슈퍼볼 광고에서 애플이 IBM을 향해 던진 망치는 지금도 수많은 스타트업들의 영감이 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약자의 이야기가 아닌, 새로운 가치의 발견을 의미한다. '나의 인정'이 존재 자체의 성립조건이 되는 것은 독자로서 당연한 것이지만, 이 부분이 더욱 커지기 때문에 B급정서가 가진 특징이 메인이 되어가는 것.


현실 세계에서 은행들이 거대한 대리석 로비와 석상으로 신뢰를 표현하던 시대는 지났다. 인스타그램의 완벽한 필터보다 어설픈 폴라로이드 사진이 더 진정성 있게 느껴지듯, 디지털 시대에서 완벽한 3D 그래픽은 더 이상 특별한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손길이 느껴지는 '손맛'에서 더 깊은 진정성을 발견하게 된다. 프랑스의 사상가 보드리야르가 말한 것처럼, 현대 사회에서 문화적 가치는 '원본성'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복제는 표현이고 표현은 공감된다. '원래 콘텐츠'와 '보는 이의 공감'이 만나 새로운 가치가 탄생한다. 마치 초창기 틱톡의 어설픈 챌린지들이 오히려 더 큰 공감을 얻은 것처럼.


이러한 '공감'의 방식은 여러 층위로 나뉜다. '힙'은 개인의 독특한 취향을, '쿨'은 특정 그룹 내의 인정을, '핫'은 트렌드 선도층의 선택을, '팝'은 대중적 수용을 의미한다. 을지로 골목의 허름한 카페가 '힙'하다고 불리다가, 특정 그룹에서 '쿨'한 장소가 되고, MZ세대 사이에서 '핫'한 명소가 되어, 결국 '팝'한 관광지가 되는 과정이 이를 잘 보여준다. 최근 등장한 '칠'은 이런 구분 자체를 거부하는 새로운 흐름이다. "그런 건 너무 많이 생각하는 거 아냐?"라며 등장한 이 정서는 역설적으로 또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지난 100년간 매스미디어는 대중스타를 만들어내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유튜브와 OTT의 시대는 문화의 세분화를 가져왔다. 달고나 커피부터 네오 아메리카노까지, 밈은 순식간에 퍼지고 변형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 더 이상 하나의 주류 문화가 아닌, 수많은 서브컬처들이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이들은 순간의 밈에 자신만의 색깔을 입혀 공유하며, 때로는 진지한 뉴스도 Z세대의 손끝에서 재탄생하여 서로 다른 문화권 사이를 자유롭게 오간다.


B급 문화를 '원본(고퀄리티)의 실패작'으로 보는 것은 현대 문화 소비의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문화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한 채 B급 문화를 단순히 '병맛'으로 치부하는 것은 결국 마케팅의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90년대 '고객사은대잔치'가 지금은 구식 마케팅의 대명사가 된 것처럼, 그것은 단순한 용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 문화 소비의 본질을 놓치는 '병짓'이 되는 것이다. B급 문화는 완성도의 부족이 아닌, 새로운 가치 창출의 동력이자 현대 문화의 중요한 일부다.


과거에는 모두가 공중파 TV의 유행 코드를 따라할 때, 자신만의 취향을 드러내는 것은 집단에서 고립될 위험이 있어 숨겨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다. 개인의 취향을 드러내지 않으면 오히려 문화적 고립을 겪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현대인들에게는 '개인의 취향'이라는 새로운 활로가 필요하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힙하고 쿨해질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하는 것이 그들의 살길이다.


우리의 진정성을 알아보고 지지해주는 팬들에게 감사하며, 그들을 위해 더 나은 가치를 만들어가야 한다.


김동은WhtDrgon


25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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