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 길드의 회의실은 언제나 감로 향으로 가득했다. 천장의 유리관을 타고 흐르는 푸른빛 액체는 마치 별빛처럼 반짝였고, 그 빛은 전통 목재와 현대 금속이 조화된 실내를 은은하게 물들였다. 감로 특유의 향기는 달콤하면서도 묘하게 쓸쓸했다. 한 모금 마시면 머릿속이 맑아지고, 모든 것이 이해되며, 무엇보다 불필요한 고민이 사라졌다. 그것이 감로의 가장 훌륭한 점이었다. 아니, 가장 끔찍한 점이었다.
이나경은 테이블에 팔꿈치를 괴고 앉아,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풍경을 응시했다. 거대한 빌딩 숲 사이로 수없이 자리 잡은 신단들이 푸른 빛을 내뿜고 있었다. 감로가 흐르는 도시. 질서정연한 침묵 속에서, 신단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은 평온했다. 감정이 깎여나간 듯한 그 얼굴들을 볼 때마다, 이나경은 숨이 막혔다.
처음 감로 신단을 만들었을 때, 그녀는 단순히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신단출이 가라앉을 때 감로가 맺히는 모습이 신비롭고 인상적이었고, 기왕이면 아름다운 신단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신호조각사들에게 감로 신단을 만드는 법을 공유했지만, 돌아온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걸 왜 만드는데?” “이쁘라고? 신단이 그럴 물건인가?”
그때만 해도 그들의 반응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신단은 기능이 전부였고, 미학적 요소는 불필요한 사치처럼 여겨졌으니까. 하지만 감로 신단은 점점 대중화되었고, 결국 감로분말이라는 형태로 발전해버렸다. 감로를 가공해 분말 형태로 만들면 어디서든 쉽게 신단을 활성화할 수 있었다. 신사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것을 문자 그대로 복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거리의 사람들은 감로를 마신 후, 점점 말을 줄였고, 갈등을 잊었으며, 새로운 선택을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 감로를 장기간 복용한 사람들은 더 이상 ‘선택’을 하지 않았다. 대안이 있는 삶을 떠올릴 수 없는 상태, 그것이 감로가 만든 사회였다.
그 변화의 중심에 (주)동백이 있었다.
이들은 감로의 감화 효능을 일찍이 알아차렸고, 신사 길드에 대규모 연구 자금을 투자하며 감로 유통 사업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신사 길드를 착취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주)동백은 감로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엄청난 수익을 신사 길드와 아낌없이 공유했다. 신사 길드 내에서도 신기 능력이 부족해 벌이가 시원찮은 이들은 (주)동백으로 이직했고, 이제는 길드 내 회의에서도 (주)동백 사무직과 영업직 출신들이 절반을 차지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이나경은 이 모든 흐름에서 방해가 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감로가 문제라는 말씀이십니까, 조각사님?”
테이블 반대편의 신사가 감로잔을 돌리며 느긋하게 웃었다. 감로의 푸른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자, 마치 물속에 잠긴 것처럼 일렁였다.
회의실에 모인 신사들은 하나같이 감로잔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와인을 음미하듯 감로를 홀짝였고, 잔을 비출 때마다 더욱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이나경의 눈에는 그 모습이 마치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처럼 보였다.
이나경은 감로잔을 바라봤다. 액체의 푸른빛이 유리잔을 타고 내려가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이 어떻게 사람들을 바꿔놓았는지 알고 있었다.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나경이 차갑게 말했다. "감로를 마신 사람들이 신단과의 연결을 필수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신단 없이는 사고할 수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녀의 말에 신사들은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누군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는 펜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에는 어떤 위기감도 보이지 않았다.
“그게 뭐가 문제겠습니까?” 젊은 신사 하나가 하품을 하며 끼어들었다. “우리가 원한 게 바로 그거 아닙니까? 안정적인 사회 시스템이라는 게 결국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이나경은 잠시 말을 멈추고 그를 바라봤다. 그는 일 년 전에 새로 들어온 신사였다. 한때는 반체제 운동가였다고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감로에 물든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감로가 너무 잘 퍼져서 문제라는 거죠?" 길드장의 왼쪽에 배석한 유정현이 코웃음을 쳤다. 그는 신기사였지만, 신사 길드보다는 (주)동백 쪽에서 더 많은 월급을 받고 있었다. 이나경이 한숨을 쉬었다.
"감로는 점점 더 신단을 신격화하고 있어요. 길드는 이걸 방관하고 있고요."
"뭐 어때요. 신사들이 신도를 만들면?" 유정현이 어깨를 으쓱였다.
"덕분에 우린 편하잖아요."
"그게 우리 역할이었어?"
"역할이요?" 유정현이 비웃듯 웃었다.
"우리 역할은 월급 받는 거예요. 안 괜찮으시다고 해봤자, 감로 공급을 끊을 수 있나요? 아니면 신단이라도 부수실 건가요?"
이나경은 침묵했다. 그럴 수 없었다. 감로 없는 세상은 이제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있잖아요." 유정현이 책상 위의 감로를 만지작거렸다. "어차피 사람들은 히어로폰이나 빨고 있었어요. 그건 백만 원짜리 동심이잖아요. 우리 감로는 그에 비하면 성수죠. 성수."
"그러니까 우리가 자비롭다는 거야?"
"자비요?" 유정현이 웃었다. "그냥 비즈니스죠. 공짜지만 결국 사업이 돌아가니."
결국 신사 길드는 감로를 조절하지 않기로 했다.
(주)동백은 감로의 공급을 더욱 정밀하게 '관리'하기 시작했다.
거리를 걷던 이나경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조각한 신단을 바라봤다. 감로가 분출되어 흘러나오는 그곳.
그 순간, 감로의 빛이 이나경의 얼굴을 비췄다. 그녀는 자신이 만든 완벽한 감옥을 보며,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우리 모두 천국에 있네요. 지옥 같은 천국에.'
그녀는 천천히 팔목에서 한 줄기 신기를 뽑아내어 벼렸다.
조각도의 형태로 틀어쥔 그녀의 신기는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빛났다. 마치 외과의의 메스처럼.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겨누었다.분노인가, 후회인가, 혹은 그 너머의 감정인가. 하지만 손은 떨리지 않았다. 그녀에겐 신호조각사로서 새로운 도안이 완성되어있었다.
새로운 신단. 이번에는, 감로가 아닌 것을.
✅ 신단: 신기가 흐르는 초점이자 에너지 생성·증폭 장치. 자연물 또는 인공 구조물로 형성됨.
✅ 신기: 인간이 제어할 수 있는 신성한 에너지. 능력·기술·임플란트·장비 등에 활용됨.
✅ 신사: 신기를 다루는 직업군의 총칭. 신호사, 신기사, 신수사 등 다양한 분야 포함.
✅ 신기사: 신기를 축적·방출하는 역할을 하는 보조직업. 신단 엔진 관리, 돌칩 충전 등 수행.
✅ 신호조각사: 신단을 조각·설계하여 신기를 안정화·증폭시키는 희귀 직업. '신내림'을 받은 자만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