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키오스크의 목적과 경험 콘텐츠>

by 김동은WhtDrgon


키오스크가 힘든 것은 당신 나이 때문이 아니다.


디자이너나 프로그래머 잘못도 아니다.


고객이 불편하든 말든 ‘결국 매출이 오르잖느냐’며 끼워팔기를 당연시하고, 혼란을 유도하는 제공자의 탐욕 때문이다.


처음에는 햄버거 하나만 사려던 마음이었다. 그러나 주문 화면이 뜨자마자 콜라 사이즈를 묻는다. 콜라를 고르니 치킨너겟과 애플파이가 따라붙는다. 세트를 고르면 디저트까지 제안한다. 하나의 명확한 용건은 점점 흐려지고, 그 자리에 제공자의 계산된 선택지가 순차적으로 끼어든다. 사용자는 단순한 목적을 가진 소비자에서 점차 설계된 여정을 따라가는 피동적 존재로 바뀐다.


이러한 구조는 고객의 결정권을 돕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틀어버리는 일이다. 경험형 콘텐츠가 나쁜 것이 아니라, 목적형으로 들어온 사용자를 억지로 경험형 경로에 태우는 것이 문제다. 본래의 의도를 무시하고 기획된 시나리오로 이끌어가는 방식은 안내가 아니라 납치에 가깝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콘텐츠를 찾는다. 주민센터에 가는 이유는 서류를 떼기 위해서이고, 앱을 켜는 이유는 식사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목적형 사용자에게는 명확한 검색, 간결한 분류, 빠른 완료가 핵심이다. 그러나 일부 콘텐츠는 이 흐름을 방해한다. 검색창 대신 추천 화면이 먼저 뜨고, 명확한 분류 대신 트렌드가 우선 노출된다. 사용자가 무엇을 원하는지보다, 무엇을 팔고 싶은지가 먼저 고려된다.


물론 경험형 콘텐츠에도 고유한 역할이 있다. 아직 결정하지 못한 사람에게 맥락과 제안을 통해 새로운 선택을 열어주는 것은 긍정적인 설계다. 문제는 목적이 분명한 사용자를 대상으로 경험형 경로를 강제할 때 발생한다. 이 과정은 사용자의 의지를 존중하지 않고, 설계자의 목표에 사용자를 맞추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콘텐츠 설계는 사용자의 상태를 구분하고, 거기에 맞는 경로를 제공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이미 목적이 있는 사람에게는 방해 없이 도달할 수 있는 통로를 주고, 방향이 없는 사람에게는 안전하고 설득력 있는 여정을 제공해야 한다. 그 반대는 설계가 아니라 왜곡이며, 편의를 가장한 장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콘텐츠가 반드시 둘 중 하나일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사용자 대부분은 어느 한쪽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하나는 정했지만 나머지는 정하지 않은 상태일 수도 있고, 목적형으로 진입했지만 여정형 제안이 매력적이라면 기꺼이 유도될 수도 있다.


결국 핵심은 ‘조정’이다. 목적형 구조는 검색과 분류, 효율성으로 탄탄하게 만들되, 그 안에서 적절한 제안과 유도를 심는 방식. 반대로 여정형 구조는 탐색과 발견의 재미를 제공하되, 사용자가 빠르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탈출구를 함께 준비하는 것.


콘텐츠 설계란, 사용자에게 맞는 타이밍과 방식으로 선택지를 제시하는 일이다. 당길 것인가 밀 것인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게임 기획 화두 - 게임기획에서 생각할 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