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은WhtDrgon@MEJEworks
포트폴리오는 단순히 나의 작업물을 모아놓은 결과물이 아니다. 그것은 '나'라는 창작자를 세상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한 편의 기획서이자, 나의 가능성을 설득하기 위한 전략적인 선언이다. 따라서 포트폴리오 제작에 앞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선언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다.
포트폴리오 전략의 시작과 끝은 '규정 준수'다. 지원하고자 하는 학교나 기관에서 명시한 규격, 양식, 분량, 제출 방식이 있다면, 그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이다. 이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평가자는 수십, 수백 개의 지원서를 검토한다. 이 과정에서 규격을 벗어난 포트폴리오는 평가 과정에 불필요한 번거로움을 야기하며, 이는 곧 평가자의 감정적 피로도로 이어진다. '자신의 개성을 보여주기 위해' 규정을 무시하는 행동은 독창성이 아닌 배려 없는 태도로 비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명시된 규정을 완벽하게 따르는 것은 평가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나의 포트폴리오가 제대로 평가받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략이다. 어떤 창의적인 내용을 담기 이전에, 그 내용을 담을 그릇을 약속된 형태로 만드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규정을 완벽하게 지켰다면, 이제 포트폴리오는 단순한 서류 묶음이 아닌 하나의 '스토리텔링' 매체로 변모해야 한다. 포트폴리오에는 명확한 임무가 있다. 바로 평가자에게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고, 궁극적으로는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감동'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여기서 감동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평가자가 포트폴리오를 넘겨보았을 때, 무의식적으로 "아!" 하는 감탄이나 깨달음을 얻는 순간, 지원자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는 순간이 바로 감동의 시작이다. 나의 작업물들이 단순히 나열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평가자에게 의미 있는 무언가를 전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메시지를 통해 상대를 설득할 것인지 먼저 결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당신의 포트폴리오가 던져야 할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는 지원자의 강점과 이력, 그리고 지향점에 따라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메시지 유형 1: 날카로운 재능과 압도적인 센스
"나의 이 놀랍고 날카로운 재능을 보라." 이 메시지는 타고난 감각과 실력으로 정면 승부하는 전략이다. 포트폴리오에 담긴 한두 개의 작품만으로도 지원자의 독창성과 완성도가 직관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것이다. 보는 순간 감탄을 자아내는 아이디어나 기술적 완성도를 통해, 다른 설명 없이도 자신의 잠재력을 강력하게 어필한다.
메시지 유형 2: 융복합적 사고와 새로운 방법론 제시
"나는 영화의 기법을 게임 엔진과 결합하여,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관객 경험을 설계할 것이다." 이 메시지는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통찰력과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보여주는 전략이다. 예를 들어, 영화를 전공하는 학생이 게임 엔진의 기술적 특성을 깊이 이해하고 이를 활용한 새로운 시네마틱 연출법을 포트폴리오를 통해 제시하는 것이다. 이는 기존 전문가들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려는 시도로, 평가자에게 '이 학생은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라는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
메시지 유형 3: 꾸준함과 노력으로 증명하는 진정성
"나는 이것을 오랫동안, 꾸준히, 그리고 진심으로 해왔습니다." 이 메시지는 성실함과 깊은 애정을 통해 감동을 이끌어내는 전략이다. 수년에 걸쳐 그려온 수백 장의 스케치, 꾸준히 기록해 온 레벨 디자인 습작 등 방대한 양의 과정물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력의 높낮이를 떠나, 오랜 시간 축적된 노력의 결과물은 그 자체로 보는 이를 감동시키는 힘이 있다. 이는 지원자가 해당 분야에 대해 일시적인 관심이 아닌, 삶의 일부로 여기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된다.
포트폴리오를 통해 전달할 핵심 메시지를 정했다면, 이제 그 메시지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그 생명력의 이름은 바로 '진정성'이다. 진정성은 꾸며낼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지며, 이것이 느껴지는 순간 당신의 포트폴리오는 단순한 서류 더미를 넘어 평가자의 마음을 관통하는 하나의 인격체로 다가간다. 그렇다면 이 강력한 무기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진정성은 '척'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태어나는 것이다. 그 탄생의 비밀은 바로 '개연성,핍진성,일치성'에 있다. 당신이 설정한 강인한 목표, 그 목표를 향해 쏟아부은 노력의 과정, 그리고 포트폴리오를 통해 드러나는 당신의 강점이 모두 하나의 방향을 가리킬 때, 진정성은 저절로 발현된다.
"나는 최고의 단편 영화 감독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렇다면 그 목표를 위해 실제로 단편 영화를 기획하고, 촬영하고, 편집해 본 노력의 흔적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포트폴리오에 담긴 스토리보드, 시나리오, 영상물 등의 강점이 그 목표와 노력을 뒷받침해야 한다.
이 세 가지 요소가 톱니바퀴처럼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갈 때, 당신의 이야기는 힘을 얻는다. 반대로, 목표는 거창하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노력의 흔적이 보이지 않거나, 제시된 작업물이 목표와는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면, 그 이야기는 설득력을 잃고 공허한 외침으로 남게 된다.
"이 정도면 속아 넘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금물이다. 특히 교육자나 업계 전문가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예리한 감식안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매년 수백 명의 학생과 지원자들을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와 작업물을 끊임없이 봐온 사람들이다.
동일한 제품이 줄지어 지나가는 상태에서는 곤충의 '홑눈'을 가진 것같은 효과가 나타난다. 조금만 달라져도 눈치챈다. 이러한 경험은 일종의 '촉'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지원자의 말과 글, 그리고 작업물 사이에 존재하는 미세한 불일치나 어색함을 본능적으로 감지해낸다. 정말로 그 길에 미쳐있는 사람의 망설임 없는 눈빛과 말투, 자신의 꿈과 롤모델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막힘없이 쏟아져 나오는 디테일의 차이를 귀신같이 알아챈다. 이것은 기술적인 테크닉이 아니라 대장금의 홍시맛처럼 느껴진다.
따라서 진정성을 흉내 내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힘든 일이다. 단 하나의 질문, 단 하나의 작업물에서 허점이 보이는 순간, 공들여 쌓아 올린 모든 것이 신뢰를 잃게 된다. 진정성을 얻는 가장 쉽고 확실한 길은,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것을 가지는 것이다.
진정성을 확보했다면, 이제 그것을 논리적으로 전달할 차례다. 이는 마치 한 편의 시나리오를 쓰는 것과 같다. 당신의 포트폴리오, 자기소개서, 그리고 면접을 관통할 '나'라는 사람에 대한 견고한 이야기를 미리 구축해야 한다. 이 시나리오는 외워야 할 대본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깊은 고민과 탐색의 결과물이어야 한다. 아래 네 가지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하며 당신만의 시나리오를 완성해 보자.
나의 꿈은 무엇인가? (ex. 단편 영화 감독)
막연하게 "영화를 하고 싶다"가 아닌,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야 한다. "나는 OTT 플랫폼을 통해 공개될 5분 내외의 비선형적 구조를 가진 VR 단편 영화를 만들 것이다."처럼 미디어, 형식, 특징까지 선명하게 정의되야 한다. 진짜 할 생각이었다면 구체적으로 고민했을 것이다. 구체성이라는 과정의 집착은 당신의 고민의 깊이를 증명한다. 이건 작품활동도 마찬가지이다.
왜 그 꿈을 꾸게 되었는가? (필연성과 계기)
"왜 다른 것이 아니고, 하필 그것인가?"에 답해야 한다. 당신의 인생에서 그 꿈이 자리 잡게 된 필연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본 한 편의 독립 단편 영화 '소년과 개'를 보고, 우리동네 뒷산같은 뻔한 공간의 적은 예산으로도 이토록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없어서 못하는 장비와 세팅과 긴 서사보다 함축적인 영상미로 승부하는 단편 영화만이 나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유일한 그릇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와 같이 구체적인 계기를 통해 꿈의 당위성을 설명해야 한다.
나의 롤모델과 작품은 무엇인가?
이는 당신의 지향점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증거다. 봉준호 감독이 마틴 스코세이지를 언급하듯, 당신의 꿈에 영감을 준 롤모델과 작품을 구체적으로 댈 수 있어야 한다. "저는 OOO 감독의 작품 △△△에서 보여준 □□□ 기법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당신의 꿈은 막연한 동경이 아닌, 구체적인 연구와 학습이었음이 증명된다. 이 역시 진짜였다면 없을리 없다.
그 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고 싶은가?
결국 당신이 만들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이것이 당신의 창작 활동의 최종 목적지다. "저는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싶습니다." 또는 "기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와 같이, 당신의 작품이 사회와 관객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가길 바라는지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어야 한다. 이 메시지가 정해지는 순간, 당신의 포트폴리오는 비로소 하나의 주제를 향해 나아가는 일관성을 갖추게 된다.
마치 인간이 살아만있다면 이산화탄소라는 물질을 생산해낼 수 있듯, 진정일때 진정성은 그냥 호흡처럼 흘러나오는 것이다. 진짜라면 구체적이지 않을리 없고, 다른 사례를 모를리 없고, 메시지가 없을리 없다. 그저 맘에 들려는 생각이라면 그 기준이 불변할 자신에게 있지 않고, 매번 바뀌는 상대방에게 있기 때문에 무엇 하나 제대로 대답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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