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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우리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전략적, 기술적 방법론에 대해 논했다. 하지만 어떤 화려한 기술이나 세련된 구성도 창작자 내면의 단단한 중심 없이는 공허한 기교에 그치고 만다. 결국 좋은 포트폴리오는 '무엇을 만들었는가'를 넘어, '누가 만들었는가'를 보여주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이 파트에서는 성공적인 창작 활동의 가장 근원적인 동력이자, 당신의 포트폴리오에 영혼을 불어넣을 내면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창작의 길은 외롭고 고된 여정이다. 수많은 자기 의심과 외부의 평가 속에서 자신을 지켜내고 꾸준히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에너지가 있다. 우리는 그것을 '자기애'라고 부른다. 여기서 자기애란 이기심이나 근거 없는 자만심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생각과 감각, 그리고 가능성을 온전히 신뢰하고 존중하는 창작자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다.
수많은 창작자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세상에 꺼내놓기 전에 스스로를 검열하며 좌절한다. "이런 생각은 너무 유치해", "누가 이걸 좋아하겠어?" 하는 내면의 목소리는 창작의 가장 큰 적이다. 특히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것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도록 배우곤 한다.
그러나 창작자에게는 어느 정도의 '건강한 나르시시즘'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내 아이디어는 세상에 나올 가치가 있다"고 믿는 확신이자, 타인의 평가에 앞서 스스로가 자신의 첫 번째 팬이 되어주는 용기다. 당신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유치하고 하찮게 여긴다면, 다른 누가 그 가치를 알아봐 주겠는가?
당신의 포트폴리오에 담기는 '날것'의 스케치, 서툰 첫 작품, 엉뚱한 상상력의 기록들은 모두 이 용기의 산물이다. 그것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펼쳐 보일 수 있을 때, 당신의 포트폴리오는 꾸며낸 완벽함이 아닌, 생동하는 개성과 진정성을 얻게 된다.
자기애를 갖췄다면, 그 다음은 외부의 평가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항해를 계속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오늘날의 창작 환경은 유행하는 콘텐츠, 조회수가 높은 영상, '좋아요'를 많이 받는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무엇이 잘 팔리는가?"를 기준으로 삼는 순간, 창작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만다.
히트작을 만들고 싶고, 잘 팔리는 것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것이 창작의 유일한 목표가 되면, 당신은 유행을 좇는 기술자가 될 뿐,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예술가가 될 수는 없다. 결국 AI가 가장 잘하는 '그럴듯하지만 개성 없는' 결과물을 끝없이 복제하다 소모될 뿐이다.
진정한 창작자는 외부가 아닌 '나'에게 기준을 둔다.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가?"가 아니라 "나는 무엇을 만들고 싶은가?"
"어떤 스타일이 유행인가?"가 아니라 "나의 스타일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당신만의 오리지널리티가 탄생한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렇게 탄생한 당신만의 고유한 세계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당신의 포트폴리오는 유행하는 스타일의 집합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취향과 철학이 일관되게 드러나는 하나의 작품이어야 한다.
자기애의 완성은 타인이 보내는 긍정적인 평가를 제대로 받아들이는 자세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칭찬을 들었을 때 "아니에요, 별거 아니에요"라며 손사래를 치거나 과도하게 겸손을 보이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이는 당신의 노력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칭찬을 건넨 상대방의 안목과 진심까지 무색하게 만드는 태도다.
최고의 경지에 오른 창작자는 타인이 보내는 존경과 찬사를 의젓하고 예의 바르게 받아낼 줄 안다. "감사합니다. 그 부분을 알아봐 주셔서 기쁘네요"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 그것은 자신이 쏟아부은 노력의 가치를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성숙함의 증명이다.
이러한 자세는 포트폴리오를 넘어 면접과 같은 실제적인 상황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자신의 작업물에 대해 위축되거나 변명하지 않고, 그 장점과 의도를 자신감 있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평가자에게 깊은 신뢰감을 준다. 당신의 창작물에 대한 가장 강력한 지지자는 바로 당신 자신이어야 한다.
당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단단한 중심을 세웠다면, 이제 지도를 펼쳐 당신의 창작물이 가닿을 목적지를 설정할 차례다. 모든 창작물은 결국 누군가에게 읽히고, 보여지고, 경험되기 위해 존재한다. "나는 과연 어떤 관객을 위해 창작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당신의 포트폴리오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모든 창작 활동의 방향을 결정하는 '창작 좌표'가 될 것이다.
창작의 세계는 크게 세 개의 대륙으로 나눌 수 있다. 당신은 어떤 대륙에 당신의 깃발을 꽂을 것인가?
대중 예술 (Mass Art): 넓고 얕은 바다
이곳의 목표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관객들은 일상에 지쳐 있으며, 자신의 삶과 가족을 위해 대부분의 에너지를 소진한 상태다. 따라서 이들을 위한 콘텐츠는 복잡한 해석이나 깊은 학습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트렌드에 민감하고, 직관적으로 재미있으며, 짧은 시간 안에 감정을 해소시켜주는 '경박단소(輕薄短小)'의 매력이 핵심이다. 이곳의 창작자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대중의 욕망을 포착하는 예리한 감각이 필요하다.
장르 예술 (Genre Art): 깊고 명확한 항구
이곳은 불특정 다수가 아닌, 특정 장르(SF, 판타지, 로맨스, 스릴러 등)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진 '글로벌 소수 팬덤'을 위한 세계다. 인터넷 덕분에 이 '소수'는 전 세계적으로 연결되어 거대한 시장을 형성한다. 이 관객들은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해당 장르의 역사와 문법을 꿰뚫고 있는 전문가에 가깝다. 따라서 이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피상적인 흉내가 아닌, 장르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과 자신만의 독창적인 해석이 요구된다.
순수 예술 (Fine Art): 미지의 대륙 탐험
이곳의 창작자는 대중의 즉각적인 반응이나 팬덤의 기대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이들의 목표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기존의 형식을 파괴하며, 동시대의 불안과 희망을 담아내는 '시대정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길고 고독한 사유와 철학이 필요한 길이며, 그 결과물은 당대에 이해받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류의 지적, 감성적 지평을 넓히는 가장 중요한 탐험이기도 하다.
만약 당신이 '대중 예술'의 길을 가기로 마음먹었다면, 스스로에게 반드시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나는 지금 당장 대중문화 차트 1위부터 10위까지의 작품들을 보았을 때, 그것들이 왜 사랑받는지 이해하고 진심으로 존경할 수 있는가?"
만약 당신의 대답이 "아니오"라면, 당신은 대중문화 창작자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차트 상위권의 작품들이 유치하고, 구성이 엉성하며, 공감되지 않는다고 느낀다는 것은, 대중의 마음을 읽어내는 감각과 해석력이 부족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대중을 위한다면서 대중이 사랑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존중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다. 성공적인 대중문화 창작자는 대중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욕망과 호흡하며, 그 안에서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하는 사람이다. 이 지점에 대한 정직한 자기 성찰 없이 대중 예술에 뛰어드는 것은 실패로 가는 지름길일 뿐이다.
'장르 예술'의 길은 더욱 혹독한 전문성을 요구한다. 장르 팬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똑똑하고 집요하다. 그들은 당신이 만든 작품을 그 장르의 수많은 명작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평가할 것이다. 그들은 작가를 자신들 중 한 명으로 여기는 습성이 있고, 리스펙의 가치가 있는지를 끊임없이 시험한다.
판타지 소설을 좋아해서 판타지를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당신의 작품이 수많은 다른 판타지 소설의 아류작이 아니라 독창적인 무언가임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당 장르의 팬들을 압도할 정도의 방대한 지식과 깊은 이해도가 필요하다. 장르의 클리셰를 자유자재로 비틀고, 그 역사 속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낼 수 있어야 비로소 팬들의 존경을 얻을 수 있다.
어설픈 지식으로 장르 팬들을 감동시키려는 시도는 곧바로 간파당한다. AI가 그럴듯한 장르물을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시대에, 인간 창작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바로 이 '깊이'다. 당신이 그 장르의 '오타쿠'가 될 자신이 없다면, 장르 예술의 길은 생각보다 훨씬 더 험난할 것이다. 그럴거면 차라리 뻔하니까 친구처럼 다가가는 자세가 더 좋을 것이다.
순수 예술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이미 스스로를 알고 있기에, 감히 내가 이 자리에서 더 이상 논할 내용은 없다.
김동은WhtDrgon.@MEJEwor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