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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과 콘텐츠중 누가 먼저이며 K는 우연인가 필연인가

by 김동은WhtDrgon

시장지배자는 스스로 플랫폼이 되고, 플랫폼은 표준 인프라가 되어 변방의 옷차림이 수도의 최신 유행으로 배송될 수 있게 한다. 거상의 무역선 화물상자가 한 변 96cm로 고정됐다면, 제품 상자뿐 아니라 상자 집게, 심지어 상자 운반 로봇의 그립까지 그 크기에 맞춰 재설계될터다.


이제 이 상자만 있다면 아프리카 코끼리 이빨도 유럽의 상점에 놓일수 있게 된다. 이게 플랫폼의 본질이다. 소비자의 폭을 좁히면서, 공급자의 폭을 재편하는 힘.


왜 그리스 신화인가? 로마라는 월드 플랫폼이 우연히 혹은 정복의 산물로 그리스 문화를 흡수하며 계승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로마의 도로망과 군단이 그리스 신화를 라틴어로 재포장해 지중해를 넘어 유럽으로 퍼뜨린 건, 선택이 아니라 제국의 팽창이 낳은 우연의 결과였을 것이다.


로마로 표준화된 그리스 신화는 로마 플랫폼의 호환성을 타고 세계와 맞물리며 살아남았지만 만일 로마가 페르시아 정복 과정에서 조로아스터교를 더 깊이 흡수했다면? 선악의 이원론이 로마의 다신교를 삼켜, 지금의 신화는 아마 '영원한 투쟁'의 이야기로 변질됐을 것이다.


기독교는 이미 그런 길을 걸었다. 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 칙령처럼, 로마의 행정 네트워크가 기독교를 그리스처럼 선택하며 그리스-로마의 옛 신들과 교대했고, 결과는 1,700년 넘는 서구 문화의 재편이 이뤄지게 된다.


필연적 시작과 우연한 결과의 결합. 플랫폼의 선택은 늘 인과를 역전시키는 경계에 선다. 결과가 원인을 만든다.


그런 흐름으로 넷플릭스는 K-드라마의 로마다. 방송국이 편당 4억, 케이블이 8억, JTBC가 편당 12억을 쓰겠다고 시절즈음부터 넷플릭스는 2028년까지 한국 콘텐츠에 25억 달러를 쏟아붓기로 했다.


이 투자로 원래 괜찮았던 K-드라마는 비닐씌운 애나멜 접시가 아니라, 전세계 수출용 샐러드 케이스에 포장되어 에피소드, 자막 최적화, 클리프행어 구조로 재포장되며 넷플릭스의 알고리즘 상자에 딱 맞춰졌다.


이제 할리우드 스튜디오조차 K-드라마의 로맨스+스릴러 공식을 따라 하며, 2025년 기준으로 한국 콘텐츠가 넷플릭스 차트를 차지한 것은 더이상 우연이 아니다. 플랫폼의 광범위했던 선택은 성공을 통해 필연이 되어, 또 한 번 동도서기로서 세상의 신화를 재정의한다.


김동은WhtDrgon@MEJEworks 2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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