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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작위의 총합 세계>

by 김동은WhtDrgon

소설이나 웹툰에서 연인의 식사 장면에서 냉면 그릇에 파리가 앉아있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메시지이며 스토리텔링일 것이다. 이곳은 우연과 자의가 없는 작위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출퇴근 버스 안에서 스치던 낯익은 얼굴, 지하철역에서 마주치던 그 ‘우연한 눈맞음’조차 이제 디지털 세상에서는 공짜가 아니다.


현실에서는 호르몬과 우연과 도시의 밀도가도가 알아서 만들어주던 그 미묘한 순간들이, 앱 안에서는 누군가가 설계하고, 알고리즘이 큐레이팅하고, 서버가 돌려줘야 생긴다. 자연스러운 건 없다. 모든 ‘우연’은 의도된 랜덤이고, 모든 ‘서프라이즈’는 유료 기능이다.


•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던 사람이 ‘오늘도 봤네?’ 하는 미소 Tinder의 Swipe Right (유료 부스트로 상단 노출)

• 버스 정류장에서 매일 마주치던 그 사람과의 어색한 인사 Bumble의 ‘Extend’나 ‘Spotlight’ (24시간 추가 유료)

• 우연히 같은 카페에 앉아서 눈 마주치던 순간 ->Hinge의 ‘Most Compatible’ 추천 (프리미엄 구독 시 더 자주 노출)

• 친구 따라갔던 모임에서 알게 된 인연 -> 소모임 앱 ‘온오프믹스’ ‘프립’ ‘데브레인’ 등의 유료 참가비 + 호스트 수수료

• 심지어 길에서 강아지 보고 “귀여워요~” 하며 시작된 대화 -> 강아지 산책 매칭 앱 ‘Pawdates’ (프리미엄 멤버십 월 4.9달러)


심지어 ‘우연을 가장한 우연’까지 팔고 있다.

Spotify의 AI DJ가 “네 취향에 딱 맞는 숨겨진 곡을 찾아줬어!”라고 말할 때, 그건 정말 우연이 아니라 누군가 짜놓은 플레이리스트고, 광고 없는 경험을 원하면 스포티파이 프리미엄.

Netflix가 “너랑 취향 98% 일치하는 사람들도 이걸 봤대”라고 띄워줄 때, 그건 그냥 알고리즘이 만든 가상 군중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운명’처럼 느낀다.

현실에서 공짜였던 모든 서사가 디지털에서는 하나하나 구현 비용이 들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사용자에게 전가된다.


심지어 ‘외로움’조차 이제 상품이다.

“혼자 밥 먹기 싫어서” -> ‘먹줍’ 앱 유료 매칭

“누군가랑 술 한잔하고 싶어서” -> ‘술자리 매칭’ 앱 프리미엄

“그냥 누군가랑 눈 마주치고 싶어서” -> VRChat 아바타 스킨, 보이스체인저, 유료 월드 입장권

결국 디지털 세상은 이렇게 속삭인다.

“네가 현실에서 공짜로 누리던 모든 인간적인 순간들?

여기선 내가 만들어줄게. 대신 돈 내.”


진짜 부족한 건 기술이 아니라,

‘아, 이건 너무하네…’라는 윤리적 상상력이고,

‘이런 것까지 돈 받는다고?’라는 도덕적 거부감이다.

그걸 느끼지 못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우연마저 구독하고 있는 거다.@

월 9,900원에 ‘우연 같은 인연’ 무제한 이용권.

자동 갱신. 당신이 내고 있지 않다면 다른 사람이 내고 있는 것이다.


미래 디지털의 모든 사건은 시퀀스이며 식별할 수 있어 과금의 포인트로 삼을 수 있다. 동시에 과거 피지컬의 재현은 끊임없이 비싸진다. 은행 창구 입금 수수료처럼.


미래는 더 싼 곳으로 흐른다.

대체과금. 분리과금으로.


김동은WhtDrgon.2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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