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지만, 이것은 결국 물리적 실체를 영점 좌표로 삼은 선언이다. 우리의 육체는 스스로를 증명하는 압도적인 데이터를 갖고 있다. 그 데이터의 양이 어찌나 방대한지, 실제로 질량을 가질 정도다.
현실 세계의 데이터가 중력을 갖는다면, 디지털 세계의 데이터는 링크 장력을 갖는다. 개념적으로 보면 둘 다 연결과 인력의 문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러 겹의 정체성 레이어를 갖고 산다. 혈연, 지역사회, 학연 같은 현실 기반 관계망이 있고, 그 위에 종교, 국가, 문화 공동체의 규범들이 덧씌워진다. 사명과 신념이 각기 다르지만, 이런 다층적 구조 덕분에 대부분의 삶은 대동소이하게 안정적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다르다.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의 데이터가 존재 구성 비중에서 압도적으로 높다. 그들에게 그 커뮤니티의 데이터 오류나 사소한 해석 차이는 단순한 의견 불일치가 아니다.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듯한 모욕적 위기감을 불러일으킨다.
예전에는 이를 애니메이션에 중독된 오타쿠와 히키코모리의 사회성 결여로 이해했다. 하지만 이것은 오진이다.
이것은 정체성의 저대역폭 현상이다.
현실의 대면 상호작용을 보자. 우리는 표정, 목소리, 체취, 분위기, 몸짓 등 초고대역폭의 데이터를 동시다발적으로 주고받는다. 이 풍부한 정보 흐름 속에서 작은 오해는 자연스럽게 보정된다.
반면 텍스트 기반 온라인 커뮤니티는 극도로 제한된 대역폭으로 소통한다. 문제는 이 낮은 대역폭 채널이 누군가에게는 자아를 구성하는 메인 회선이 될 때 발생한다.
약간의 패킷 손실, 사소한 오역, 뉘앙스의 차이. 일상적 소통에서라면 무시될 노이즈가, 저대역폭으로만 존재하는 이들에게는 통신을 교란하고 자아의 블루스크린을 유발하는 치명적 오류가 된다.
히키코모리를 이해하려면 관점을 바꿔야 한다.
그들은 방에 갇힌 것이 아니다. 방이 현관인 사람들이다.
방의 터미널 장비를 통해 자신과 진정으로 소통 가능한 사람들과 연결된다. 그들에게 방은 세이브 포인트이자, 현실 세계 거점이자, 포탈이다. 오히려 물리적 사회생활은 잠시 퀘스트를 하러 나가는 원정 경기에 가깝다. 온라인 커뮤니티로 돌아오는 것이야말로 안락한 본진 귀환이다.
이 설명이 어디서 본 듯 낯익지 않은가?
요즘 'MZ세대 특징'이라고 회자되는 것들 말이다.
거리를 보자.
1990년대 오타쿠들은 무거운 데스크톱과 전기통신선 때문에 방에 머물러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거리의 모든 이들이 주머니 속 스마트폰으로 똑같은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모바일 기기로 온라인 정체성을 실시간으로 관리하며 살아간다.
즉, SNS로 성장기를 보내거나 캐릭터를 확립한 모든 이들에게 저대역폭 정체성 현상은 공통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더 이상 일부 서브컬처 커뮤니티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을 포함한 디지털 국가 전역의 문제다.
오타쿠가 미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무엇인가?
일본은 1990년대부터 히키코모리 현상과 씨름해왔다. 벌써 30년이 넘었다. 지금은 50-60대가 된 1세대 오타쿠들의 생애 전체를 추적한 장기 임상 데이터가 축적되고 있다. 이것은 그 어떤 나라도 갖지 못한 귀중한 국가 자산이다.
국가 자산이 뭐 대단한 것인가? 미국 국회도서관에 소장된 마블, DC 만화책들도 문화 자산이다. 마찬가지로 일본의 30년간 히키코모리 임상 데이터는 디지털 시대 인간 심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자료다.
그렇다면 한국의 자산은 무엇인가?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온라인 게임 인프라 속에서 '게임 중독'이라는 사회적 낙인과 싸워온 독특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일본이 '아니메'라는 새로운 문화 현상에 대한 사회적 항체를 만들기 위해 당사자들을 연구했다면, 한국은 '게임'을 질병으로 규정하려는 시도에 맞서왔다. 원인과 결과를 분리하고, 순기능을 증명하고, 섣부른 규제에 저항해온 기록이 우리에게 있다.
이 값비싼 '사회적 면역 형성 과정'의 데이터야말로 우리의 독자적인 미래 자산이 될 수 있다.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
이번에야말로 우리는 배운 것을 써먹어야 한다. "AI가 큰 문제인데 국가는 학생들의 AI 사용을 규제하지 않고 뭘 하는가?"라는 익숙한 대증요법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게임 논쟁을 통해 우리가 깨달은 것은 무엇이었나? 새로운 기술은 그 자체로 선도 악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관계 맺으며, 어떻게 통합하느냐다.
지성과 합리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AI 통합 지식 체계가 합리적 복잡계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김동은 WhtDrgon@MEJEworks 2025.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