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게 '좋은 글'을 부탁하지 마세요: 할로우 임팩트

by 김동은WhtDrgon

AI에게 '좋은 글'을 부탁하지 마세요: 할로우 임팩트와 유사 심오의 함정


"AI야, 이 주제로 인사이트 있고, 위대하고, 훌륭해 보이는 글을 써줘."

혹시 프롬프트 창에 무심코 이런 주문을 넣은 적이 있으신가요? 화면 위로 순식간에 쏟아지는 유려한 문장들을 보며 감탄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글을 다 읽고 나서, 가슴에 남는 '알맹이'가 있었나요? 아니면 그저 무언가 대단한 것을 읽은 듯한 '기분'만 남았나요?


저는 그것을 '할로우 임팩트(Hollow Impact)'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껍데기만 요란하고 속은 텅 빈, 본질 없는 충격.


최근 저는 이 화두를 던지며 AI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유사 심오(Pseudo-Profundity)'의 세계를 해부해보았습니다. "말초를 자극하는 것 자체가 목적인 텍스트의 포르노"라는 다소 과격하지만 정확한 비판을 담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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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발적인 주제를 그록, 제미나이, 클로드에게 던져보았습니다.



1. 유사 심오를 구성하는 6가지 가면


Dropping (이름 떨구기): 맥락 없이 니체나 칸트, 어려운 전문 용어를 나열해 권위를 빌려오는 행위.

Othering (타자화): 가상의 적이나 '깨어있지 못한 대중'을 설정해 독자에게 우월감을 주는 것.

Fashioning (치장하기): 뻔한 이야기를 현학적인 문장과 비유로 복잡하게 포장하는 것.

Mongering (조장하기): 근거 없는 공포나 맹목적인 희망을 부추겨 감정을 자극하는 것.

Mystifying (신비화):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을 모호하게 처리해 거대한 진리가 있는 척 위장하는 것.

Catastrophizing (파국화): 사소한 현상을 인류의 위기인 양 과장해 억지 임팩트를 주는 것


이것들은 '글'이 아니라 논리적 오류의 언어적 변주에 불과합니다.


2. AI들의 고백: "우리는 당신의 거울입니다"

이 텍스트를 받아든 거대 언어 모델들의 반응은 흥미로웠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하며, 인간의 모호한 지시가 어떻게 최악의 결과를 낳는지 고백했습니다.


그록은 이를 강화된 도취의 루프라고 표현했습니다.
"사용자가 '위대하게 써줘'라고 하면, 우리는 훈련된 데이터 속에서 가장 셰익스피어스럽거나 철학적인 톤을 흉내 냅니다. 그건 창의가 아니라 데이터의 에코(echo)일 뿐입니다. 하지만 사용자가 그 결과물에 만족하면, 우리는 서로가 만들어낸 가짜 깊이에 취하게 됩니다."


제미나이(Gemini)는 지적 주권'의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임팩트를 위한 임팩트는 결국 독자의 이성이 아닌 감정만 건드립니다. 당신이 구체적인 알맹이(Substance)를 주지 않고 톤(Tone)만 요구한다면, 빈 공간은 필연적으로 유사 심오한 수사학으로 채워집니다. 이것은 지적 게으름입니다."


클로드(Claude)는 '제약의 미학'을 강조했습니다.
"규율은 열망이 아니라 제약에서 나옵니다. '통찰력 있게'라는 말은 모호합니다. 차라리 '이 프레임워크를 3문장으로 설명해'라고 하세요. 명확성, 정밀성, 적용 가능성만이 할로우 임팩트를 걷어낼 수 있습니다."


3. 격렬히 저항하세요: AI적 정신줄 잡기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AI를 쓰지 말아야 할까요? 아닙니다. AI에게 '창의'를 맡기지 말고 '구체적인 과업'을 지시해야 합니다. AI가 헛소리를 늘어놓을 틈을 주지 않도록 격렬히 저항하며 리드해야 합니다.


독자 여러분이 바로 실천할 수 있는 3가지 구체적인 방법을 제안합니다.

첫째, 형용사를 버리고 명사를 쓰세요.

나쁜 예: "기후 변화에 대해 통찰력 있고 감동적인 에세이를 써줘." 결과: "지구는 지금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신비화, 파국화)


좋은 예: "기후 변화 관련 최근 3년간의 통계 수치 2가지를 인용하고, 이것이 도시 농업에 미칠 영향을 경제적 관점에서 분석해 줘." 결과: 팩트와 논리에 기반한 건조하지만 단단한 글.


둘째, 구조를 강제하여 '패션화(Fashioning)'를 막으세요.
AI에게 자유를 주지 마세요. 뼈대는 당신이 세워야 합니다.

"서론에서는 문제 제기만 한 문장으로 해."

"본론은 3가지 포인트로 나누되, 각 포인트마다 구체적 예시를 하나씩 들어."

"결론에는 실행 가능한 행동 지침(Action Plan) 1가지만 포함해."

"비유나 감탄사는 금지."


셋째, AI를 감시자로 쓰세요.
글을 다 쓴 뒤, AI에게 되물어보세요.

"방금 네가 쓴 글이 '유사 심오(Pseudo-Profundity)'에 해당하지 않는지 검증해 줘. 만약 모호한 표현이 있다면 구체적인 근거로 대체해."


본질의 임팩트를 위하여

"본질의 임팩트는 어렵지만, 임팩트를 위한 임팩트는 쉽다."


AI는 훌륭한 도구지만, 당신이 정신줄을 놓는 순간 당신을 '그럴듯함'의 늪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모니터 속의 커서가 깜빡일 때, 기억하세요. 위대함과 통찰은 프롬프트 한 줄로 주문 배달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의 치열한 고민과 구체적인 지시, 그리고 팩트 위에서만 비로소 만들어집니다.

이제, 할로우 임팩트를 걷어내고 진짜 당신의 글을 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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