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행복감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행복이 실체라면 행복감은 그 주위를 감도는 향기와 같다. 행복은 비로소 행복감을 통해 완성되지만, 행복감은 절대 홀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 행복 없는 행복감. 누구라도 이 지점에서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낄 것이다. 오늘 이 글에서는 이것을 말하고 싶다.
매출과 매출감은 다르다. 진짜 매출은 내 통장에 남는 이익, 회사의 생존 능력이다. 하지만 우린 종종 매출감에 속는다. 실속 없이 가게만 북적이고 거래액 규모만 부풀려진 상태, 그 헛된 분주함에 취하면 정작 곳간 비어가는 줄 모르게 된다.
학습과 학습감의 차이도 명확하다. 진짜 학습은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 견디며 내 생각이 바뀌고 실력이 느는 과정이다.
반면 학습감은 서점에서 책 사서 꽂아둘 때의 뿌듯함이나, 유익한 영상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의 기분이다. 뭔가 똑똑해진 것 같지만 막상 혼자 하려면 아무것도 못 하는 상태, 그건 학습이 아니라 학습감을 소비한 것에 불과하다.
쉬움 역시 상대적 개념이라 그냥 정보성이 없는건 쉬운 것이 아니다. 정밀한 배려로 학습 곡선을 만든게 아니라 본질의 가지를 분질러 나무막대를 만든 무미함이거나, 위험한 전선 위에 예쁜 천 덮개만 씌운 눈속임일 때가 많다.
내가 속임이라 표현했다 해서 배제하거나 나쁘다거나 죄악시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가 수용자가 아니라 공급자,창작자,기획자이기 때문에 효능감이 아닌 효능 위해 기획의도가 정확해야 한다는 의미다. 누구도 진짜 위험한 롤러코스터를 타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시선을 돌려 행복이 아닌 위험한 것들을 대입해 보면, 게임이나 시뮬레이션, 그리고 예술 작품이 우리에게 무엇을 파는지 그 본질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들은(우리는) 본질 없이 안전한 본질감을 제공한다. 대가 치르지 않고 과실만 따게 해 준다. 아 이건 비유처럼 꼭 나쁜게 아니다. 우리는 마트에서 과일이 천정이 아닌 가판대에 놓여있기를 원한다.(웃음)
전쟁 게임을 예로 들어보자. 전쟁 본질은 죽음의 공포, 썩어가는 살점, 가족 잃는 슬픔 같은 끔찍한 현실이다. 하지만 게임은 이 본질적 대가 거세하고, 승리의 쾌감과 아드레날린이라는 감각만 남겨 판다. 우린 안전한 방 안에서 목숨 걸지 않고 영웅 되는 착각, 리스크 없는 모험감을 즐기는 것이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투자 실체는 농부처럼 씨 뿌리고 비바람 견디며 기다리는 인고의 시간이다. 하지만 요즘 시장은 우리에게 투자감을 판다. 등락하는 그래프 보며 느끼는 도박적 흥분, 클릭 한 번으로 부자 될 것 같은 환상. 땀 흘리는 고통이란 본질 외면한 채 수확의 기쁨만 맛보려는 욕망이다.
심지어 슬픈 영화나 비극적 작품 보는 행위조차 일종의 안전한 슬픔감의 소비다. 타인의 고통 실제로 껴안는 희생 없이, 눈물 한 방울로 내가 도덕적 사람이라는 카타르시스만 챙긴다. 내 삶은 전혀 위협받지 않는 안전한 곳에서 타인의 비극을 효능감으로만 취하는 셈이다.
결국 우린 의도로서 또는 의도치 않게 무거운 실체는 외면하고 가벼운 감각만 취할 수 있다.
예술은 감성휘발용제다. 실제 경험은 비교할 수 없는 밀도와 정보량 가지고 있어 때로는 해석되지 못해 휘발성 소재의 예술이 끼얹어져야 과거 내게 쌓여 내재된 것이 피어나 그제서야 경험 할 수 있다.
내재함 없는 뿌리 없는 감성 짜내는 것들을 예술이라 불러선 안 된다. 여기에 찌들면 페이크 노스텔지어 증상이 나온다. 그 거짓 그리움과 추억의 감성.
뿌리 없는 꽃을 탐하고, 리스크 없는 보상을 바란다. 실체 무게 견디지 않고 감각의 단맛만 쫓는 것, 이것이 바로 본질 없는 시뮬레이션 세상이 주는 가장 달콤하고도 위험한 함정일 것이다.
AI시대에 모든 창작자는 기획자가 되어야 한다. 타인의 것을 가져와도 충분한 시간의 고민을 섞으면 계승 발전이 된다. 제작의 과정이 쉬워져 줄어든 시간에 의도를 더 고민하지 않으면 그게 표절이고 도둑질이다.
우린 무엇을 만들고 있는가? 가격과 소재와 편리와 말초적 즐거움, 휘발성의 부담 없음과 내재된 심미 사이에서 기획자의 정밀함이 요구된다. 드라마 속 외과의사처럼.
게임 기획자가 게임 속 캐릭터가 아닌 세상을 위해 기획하게 됨은 이런 의미일 것이다. 살아있는 IP를 살아있는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한 정밀한 배려.
김동은WhtDrgon.25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