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7,"깃털과 털의 차이"

부제: 앵무새 마을에 떨어진 치즈냥의 체류기

by 김동은WhtDrgon

1-1. 아침의 풍경 - 우아함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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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루는 눈을 떴다.

햇살이 창문으로 비쳐 들어왔다. 먼지가 빛 속에서 천천히 떠다녔다.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루루는 기지개를 켰다. 앞발을 쭉 뻗고, 허리를 활처럼 휘었다. 우아하게, 고양이답게.

그때였다.

목 안쪽에서 무언가 올라왔다. 걸린 느낌이었다.

"으윽..."

루루는 몸을 웅크렸다. 가슴이 욱신거렸다. 뭔가 잘못됐다.

"케헉, 케헉!"

기침이 나왔다. 한 번, 두 번. 멈출 수 없었다.

"꾸에엑—"

토악질 소리와 함께, 작고 축축한 덩어리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회색빛 털 뭉치였다. 헤어볼이었다.

루루는 숨을 몰아쉬며 그것을 봤다. 자기 몸에서 나온 것이었다. 축축하고, 비틀어져 있고, 역겨웠다.

'나는... 왜 이렇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루루는 우아하고 싶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털을 고르고, 예쁘게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고 싶었다. 새들처럼 깃털을 다듬고, 가볍게 날아오르고 싶었다.

하지만 루루는 그럴 수 없었다. 루루는 헤어볼을 토하는 짐승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야만적일까.'

루루는 앞발로 뭉치를 밀어서 침대 밑으로 숨기려 했다. 하지만 늦었다.

똑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루루? 아침 식사 준비됐어."

앵무새 할머니의 목소리였다.

루루는 당황했다. 헤어볼을 숨길 시간이 없었다.

"잠깐만요!"

하지만 할머니는 이미 문을 열고 있었다.

"뭐가 잠깐... 어머!"

할머니가 문을 열다가 바닥의 털 뭉치를 봤다. 표정이 굳었다.

루루는 고개를 숙였다. 창피했다. 할머니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루루, 너... 이게 뭐니?"

"죄송해요. 저... 제가..."

루루는 말을 잇지 못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할머니는 루루에게 다가와서 이마에 손을 대봤다.

"열은 없네. 아픈 데는 없어?"

"아파요... 마음이..."

루루는 작게 중얼거렸다.

할머니는 루루를 안아 들었다.

"괜찮아. 우리 그루밍 샵 가자. 거기 언니가 잘 알 거야."


1-2. 여정의 시작 - 안 맞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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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깃비깃 그루밍 샵"은 광장 서쪽 골목 안쪽에 있었다.

문을 열자, 부드러운 종소리가 울렸다. 딸랑. 샵 안은 환했다. 거울이 벽마다 걸려 있었고, 창문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공기가 달랐다. 라벤더 같은, 아니 좀 더 달콤한 향이 났다. 꽃과 기름이 섞인 냄새였다.

카운터 뒤에 홍학이 서 있었다. 분홍색 깃털이 햇빛에 반짝였다. 목에는 작은 가위 목걸이를 하고 있었고, 흰 앞치마가 깔끔했다.

"어서 오세요! 비깃비깃 그루밍 샵입니다."

홍학의 목소리는 밝았다. 하지만 루루를 보자 눈이 커졌다.

"...고양이?"

할머니가 설명했다.

"얘가 아침에 털 뭉치를 토했어요. 헤어볼인 것 같은데... 괜찮은 건지 모르겠어서요."

홍학은 루루를 보더니, 부드럽게 웃었다.

"아, 헤어볼이요. 걱정 마세요. 고양이한테는 자연스러운 거예요. 병 아니에요."

"정말요?"

"네. 털을 핥다가 삼키면, 위에서 뭉쳐서 나와요. 포유류 특유의 현상이죠."

루루는 안도했다. 병은 아니구나.

하지만 여전히 부끄러웠다.

홍학은 루루에게 말했다.

"털 관리 한번 해볼래요? 빗질하고, 정리하면 훨씬 나아질 거예요."

"네... 부탁드려요."

홍학은 루루를 의자 위에 앉혔다. 높은 횃대였지만, 밑에 쿠션이 깔려 있어서 루루도 앉을 수 있었다.

홍학은 서랍에서 빗을 꺼냈다. 가늘고 촘촘한 빗이었다.

"새들 전용 빗인데... 한번 써볼게요."

홍학이 루루의 등에 빗을 댔다.

쓱—

빗이 걸렸다.

"어머?"

홍학이 빗을 빼려 했지만, 털에 엉켜서 안 빠졌다.

"아야!"

루루가 소리쳤다. 아팠다.

"미안해요!"

홍학이 조심스럽게 빗을 풀었다. 루루의 털 몇 가닥이 빗에 걸려 나왔다.

"이 빗은... 안 맞네요."

홍학은 다른 빗을 꺼냈다. 좀 더 넓은 간격의 빗이었다.

"이건 어때요?"

쓱싹.

이번엔 빗이 지나갔다. 하지만 털이 따라 올라왔다.

"어우, 털이 빠지네요."

루루 주변에 회색 털이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마치 작은 눈송이처럼.

"미안해요... 제가 털을 많이 흘려서..."

루루는 또 사과했다. 점점 더 부끄러워졌다.

'역시 나는 여기 안 맞아.'

홍학은 빗을 내려놓고, 다른 물건을 꺼냈다.

"깃털 윤기 오일이에요. 이거 발라볼까요?"

투명한 병에 담긴 기름이었다. 홍학이 손에 조금 따라서 루루의 등에 발랐다.

미끌미끌했다.

하지만 털에 스며들지 않았다. 기름이 표면에서 동동 떴다.

"이것도... 안 되네요."

홍학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루루는 더 작아졌다. 몸을 웅크렸다.

'나는 왜 아무것도 안 맞을까.'

새들의 빗은 루루 털을 엉키게 했고, 새들의 오일은 루루 털에 스며들지 않았다. 루루는 이곳에 속하지 않았다.

홍학은 루루를 봤다. 루루의 축 처진 귀를 봤다.

"루루,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거짓말이었다. 괜찮지 않았다.

홍학은 잠시 생각하더니, 밝게 웃었다.

"알았어요. 우리 다시 해봐요. 네 털에 맞는 방법으로."


1-3. 위기와 조우 - 파직, 그리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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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학은 서랍 깊숙이 손을 넣었다. 뭔가를 꺼냈다.

"이거 써볼까요? 인간계에서 온 물건인데..."

작고 동그란 롤러였다. 끈적한 테이프가 감겨 있었다. 돌돌이 클리너였다.

"이건 털을 제거하는 거예요. 새들 깃털에는 안 쓰는데, 포유류한테는 좋을 것 같아요."

홍학이 돌돌이를 루루 등 위에 굴렸다.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테이프가 털에 닿는 소리였다.

루루는 눈을 감았다. 기분이 좋았다. 아프지 않았고, 부드러웠다.

"우와, 진짜 많이 붙네요."

홍학이 테이프를 봤다. 회색 털이 빽빽하게 붙어 있었다.

"이렇게 많이 빠지는 거예요?"

"네... 봄이랑 가을에는요."

"신기하다. 우리는 깃털이 통째로 빠지는데, 너희는 조금씩 계속 빠지는구나."

홍학은 돌돌이를 계속 굴렸다. 사각사각. 부드럽고, 리드미컬한 소리였다.

루루는 골골거렸다. 기분이 좋았다.

그때였다.

파직—!

작은 불꽃이 튀었다.

루루와 홍학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뭐야?"

정전기였다.

루루의 털과 홍학의 깃털이 마찰하면서 전기가 생긴 것이었다. 건조한 크레스티엘의 공기 때문에 정전기가 심했다.

파직, 파지지직!

불꽃이 계속 튀었다.

홍학의 머리 깃털이 쭈뼛 섰다. 분홍색 깃털이 사방으로 퍼지며 부풀어 올랐다. 마치 솜사탕 같았다.

루루도 마찬가지였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꼬리가 두 배로 부풀었다. 마치 커다란 솔 같았다.

둘은 서로를 봤다.

그리고 동시에 터졌다.

"푸하하!"

"꺄르르!"

웃음이 터져 나왔다.

홍학은 거울을 봤다. 자기 머리를 보고 더 웃었다.

"나 봐, 완전 웃겨!"

루루도 거울을 봤다. 온몸이 뻗친 자신의 모습이 우스웠다.

"저도요!"

둘은 한참 웃었다.

루루는 깨달았다. 완벽한 홍학 언니도, 지금은 자기만큼 웃기게 생겼다는 것을.

그게 왠지 위로가 됐다.

'우리 둘 다 웃기네.'

홍학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어휴, 깜짝이야. 정전기 장난 아니네."

"죄송해요..."

"아니야, 괜찮아. 재밌었어."

홍학은 루루를 보며 웃었다. 경계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따뜻한 눈빛이었다.

"루루, 너 털 정말 특이해. 깃털이랑 완전 다르네."

"이상한가요?"

"아니, 신기해. 부드러워 보여."

홍학이 조심스럽게 루루의 등을 만졌다.

"우와... 진짜 부드럽다."

"그래요?"

"응. 깃털은 좀 빳빳한데, 네 털은 구름 같아. 실크 같기도 하고."

루루는 놀랐다. 구름? 실크?

"정말요?"

"응. 너 이 털, 자랑해야 해."

홍학은 진심이었다.

루루는 가슴이 따뜻해졌다. 처음으로, 누군가 자기 털을 예쁘다고 했다.


1-4. 밤의 안식 - 스팀과 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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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학은 루루를 샵 안쪽으로 데려갔다.

"특별한 거 해줄게."

작은 방이 있었다. 문을 열자, 온통 거울이었다. 바닥, 벽, 천장까지.

"거울 방이에요. 스팀 사우나예요."

홍학이 버튼을 눌렀다.

쉬이이이...

바닥에서 따뜻한 증기가 피어올랐다. 하얗고, 부드러운 증기였다.

"여기 앉아봐. 털이 부드러워질 거야."

루루는 증기 속에 앉았다.

따뜻했다.

증기가 털 사이로 스며들었다. 루루의 몸을 감쌌다. 마치 포근한 담요 같았다.

루루는 눈을 감았다.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라벤더 향이 났다.

털이 촉촉해졌다. 무거워졌다. 하지만 싫지 않았다.

루루는 거울을 봤다. 증기 때문에 거울이 뿌옇게 흐려졌다. 자기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젖은 털, 큰 귀, 작은 코.

루루는 앞발을 들어 거울을 닦았다.

쓱.

거울이 조금 선명해졌다. 루루의 얼굴이 보였다.

예뻐 보였다.

'나... 괜찮네?'

루루는 처음으로 자기 모습이 싫지 않았다.

홍학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에 부드러운 타월을 들고 있었다.

"이리 와봐. 닦아줄게."

홍학은 루루를 타월로 감쌌다. 톡톡톡. 물기를 두드려서 닦았다.

"털 정말 좋다. 관리만 잘하면 깃털보다 훨씬 예뻐."

"정말요?"

"응. 깃털은 기름을 발라야 하고, 갈고리가 엉키기도 해. 하지만 네 털은 자연스럽게 부드러워. 그냥 빗질만 하면 돼."

홍학은 부드러운 빗을 꺼냈다. 포유류용 빗이었다.

"이거 써봐. 이게 네 털에 맞을 거야."

쓱싹, 쓱싹.

빗이 부드럽게 지나갔다. 엉키지 않았다. 아프지도 않았다.

사각사각.

소리가 좋았다. ASMR 같았다.

루루는 눈을 감았다. 골골거렸다.

홍학이 웃었다.

"기분 좋아?"

"네..."

"너 털, 진짜 특별해. 깃털이랑 완전 다른 매력이야."

루루는 가슴이 벅찼다.

'나는 깃털은 없지만, 세상에서 제일 부드러운 털을 가졌어.'

빗질이 끝났다. 루루의 털은 부드럽고 윤기가 났다.

홍학이 거울을 보여줬다.

"어때?"

루루는 거울 속 자신을 봤다.

예뻤다.

털이 매끄럽게 정돈되어 있었고, 빛이 났다. 귀가 쫑긋 서 있었고, 눈이 맑았다.

"예뻐요..."

루루는 중얼거렸다.

홍학이 웃었다.

"그치? 네가 예쁜 거야. 원래."

루루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오늘 아침, 헤어볼을 토하고 부끄러워했던 자신이 떠올랐다.

'나는 야만적이지 않아. 그냥... 고양이일 뿐이야.'

루루는 홍학에게 말했다.

"언니, 감사해요."

"천만에. 또 와."

루루는 여관으로 돌아왔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새들이 날고 있었다.

부럽지 않았다.

루루는 날지 못하지만, 부드러운 털을 가졌다. 손이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나대로 괜찮아.'

루루는 그렇게 생각하며 집으로 걸어갔다.


털뭉치 7화.jpg

=== Day 7 ===


오늘의 가계부

수입: +5 Seeds (설거지)

지출: -3 Seeds (그루밍 샵 빗질 서비스)

잔액: 37 Seeds

생선까지 13 Seeds 남았다. 이제 정말 가깝다!


오늘 나는...

☑ 외로웠다 - 내 몸이 다르다는 걸 느꼈을 때

☑ 두려웠다 - 헤어볼 때문에 병원 가는 줄 알았을 때

☑ 안심했다 - 병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

☑ 호기심이 들었다 - 깃털 구조를 배웠을 때

☑ 화가 났다 - (없음)

☑ 고마웠다 - 홍학 미용사가 친절했을 때

☑ 뿌듯했다 - 다름을 받아들였을 때


몸 상태

식사: △ (여전히 부족)

수면: 보통

부상: 없음

특이사항: 털 관리 받아서 부드러워짐, 정전기 감소


오늘의 한 줄

"다르다는 건 틀린 게 아니야. 그냥 다를 뿐이지. 오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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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 https://brunch.co.kr/@whtdrgon/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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