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컬이라는 개념은 원래 지리적 마찰을 전제로 했다. 맥도날드가 지역 입맛에 맞게 변형되거나, K팝이 로컬 감성을 입고 수출되는 방식. 이건 여전히 현관 밖의 세계, 지도 위의 세계를 상정한다. 어떤 사람들의 사회는 현관 밖이 아닌 자기 방 안에 있었다. 지금은 모두의 호주머니 안에 있다.
아니메 오타쿠나 러브크래프티안, 퍼리, SCP. 그리고 더 많은 주제들. 이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지만, 그들의 공간 경험은 현관 밖에서 형성되지 않는다. 내 방, 내 가방, 내 손의 컴퓨팅 머신으로 이뤄지는 공간이다. 접근에 지리적 마찰이 없으니, 서울이든 상파울루든 거의 동등한 위치에서 같은 팬덤 안에 존재한다.
글로벌은 사라졌는가? 꼭 그렇지는 않다. 단지 글로벌성이 그들의 소속감에 중립적인 것이다. 소속의 기반이 지리가 아니라 취향 밀도이기 때문이다. 폴란드에 1명이 있다면 폴란드는 관계없다. 그 1명은 이미 밀실 안에 있다.
이걸 기존 개념과 구분하기 위해 분산된 밀실, 혹은 글로벌 니치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전 세계에 퍼져있지만 인구 대비 극소수, 그러면서도 내부 결속은 강한 구조다. 지리 × 문화 동질성이 아니라, 취향 밀도 × 지리적 분산이라는 완전히 다른 축 위에 있다.
그런데, 하지만.
배틀그라운드의 중국인 유저들을 생각해보자. 이건 취향으로 묶인 공간 안에 국가 단위 세력이 재침투하는 현상이다. 지리적 마찰은 사라졌는데, 세력화된 집단성은 결국 다시 들어온다. 디지털이 지정학을 무력화하는 게 아니라, 다른 형태로 재출현하는 것이다. 비지정학적 국가 세계관.
AI 발달로 언어 소통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이 현상은 점점 희석되겠지만, 내가 '인접 세계관'이라고 부르는 침투 현상은 언어보다 깊은 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총을 든 집단의 대결"이라는 긴장 상황에서 "같은 국적"은 논리적 정합성과 자연스러운 신뢰를 부른다. 국가 세계관은 타 국가에 대한 공격과 배신을 정당화한다. 지리적 가까움은 관계없다. 어차피 안 보이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것은 인접 세계관의 연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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