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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은WhtDrgon Jul 24. 2021

<포켓몬을 만드는데 우리에게 필요한 것? 존경심.>

김동은WhtDrgon.160724#게임기획자하얀용

개요

이 글은 2016년 7월 24일 페이스북에 포스팅한 글입니다. 포켓몬 Go가 출시되어 '왜 우리에겐 포켓몬 Go 같은 것이 없나?'같은 하찮은 말들이 돌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이 글을 쓰고 5개월 뒤에는 꿈꾸던 쇼 엔터 시네마틱 게임으로 <BTS 월드> 프로젝트 총괄로서 콘셉트부터 팀원 모집까지 모든 것을 바닥에서 시작하게 되는데, 그전에 아이돌 게임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아,  IP에 대한 존경심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는데 중요한 것은 이것이 신념이나 어떤 무형의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관리되어야 하는 비즈니스적인 가치와 방향이라는 것입니다. 돈 외의 것에 진지한 것은 '애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과거의 풍조였지만, 이제와서는 사장이든 직원이든 이걸 아직도 모르면 회사를 망하게 할 겁니다. 


본문

<포켓몬 GO가 태어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 - 존경심>


시설은 모방해도 우리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모방할 수 없다. - 디즈니 

여섯 살이든 여든 살이든, 우리 모두 안에 존재하는 그 아이들을 위해 영화를 만든다. - 월트 디즈니


결론부터 말하자면 '존경심'이다. 

특히 자신에 대한. 


내가 중요하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내 가치를 나눠 받는다. 좋아하는 것이 생업이 되고 자부심이 되고 영혼이 담겨 비범한 콘텐츠가 되어 다시 누군가의 좋아하는 것이 되어 누적되어 부모와 자녀와 콘텐츠가 이어진다. 


 사람들이 밖으로, 속초로 간 게 아니다. 나간 곳이 하필 밖이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그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서라면 밖이라도 나가서 속초까지 간다.  그들이 나간 곳은  '다른 세계'이다. 자신에 대한 가치에 기꺼이 시간과 돈이라는 비용을 지출했다. 그게 눈에 보이지 않으니 뭐하는 짓인가 싶은 거다. 


 AR, IP, Map... 이 중에 더 뭐가 중요한지 묻지 말자. 물리적 구성요소가 아닌 논리적 결합이 가치의 핵심이다. 자동차의 핵심기술은 엔진이지만 엔진은 자동차가 아니고, 엔진 때문에 자동차를 운행 못하는 경우는 비율상 무의미한 정도일 것. 심지어 엔진에 뭔가를 붙여 자동차처럼 굴러가고, 가장 훌륭한 자동차보다 더 훌륭해도 그건 자동차가 아니다. 머신이다. 중요한 것은 '함께' 있다.


게임은 점점 더 게임 같지 않아 보일 것이다. 게이머를 위한 게임이 일반인을 위한 것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 기획도 게임 제작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더 필요하고, 심지어 게임 제작 툴도 점점 게임을 만들기 위한 생산도구만은 아니게 될 것. 


그런 의미에서 올해 말, 내년 초부터 게임학과가 부흥을 맞이하게 될 것. 경력 10년 차 이상의 강사 예비군들도 충분히 축적됐고, 대학도 미래+교양+실무를 적당히 혼재한 과목이 필요하다. 이제 더 많은 게임 전공자가 사회에 나와, 게임을 만들지 않더라도 게임이 섞인 무언가를 바탕으로 많은 것들을 하겠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절박함이 아닌 존경심이다. 


우리는 한 때 기계를 만들었다. '저 하늘을 검은 연기로 덮어버리자!'가 대통령의 공단 건립 축사였고, 박수를 받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는 마치 심시티의 도시처럼 발전하여 이제 검은 연기가 번영의 상징이 아닌 시대를 살고 있다. 더 높은 가치는 더 높은 추상화이고, 추상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1,2차 산업의 노동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음 차수가 있다.


HW와 SW를 배웠다. 눈에 보이지 않는 SW가 곱해지기에 중요하다는 것을 애써 가르쳤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코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게 UX, UI를 포괄하는 기획이다. 어떻게 작동하는 무엇을 왜 만들지가 더 중요하다. 이제 눈에 보이는 기획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건 우리가 어떤 경험을 원하느냐이다. '우리'가 '중요'의 결정권을 쥐었다. 


그러기 위해 사용자가 어떤 경험에 갈증을 느끼며, 얻고자 하느냐. 가치를 느끼느냐가 중요하다. 알다시피 사람은 사회적 통념이나 자신의 믿음과 관계없이 자신에게 중요한 것에 돈과 시간을 지불한다. 골방에서 죽도록 노력해서 기가 막힌 것을 만드는 최선으로는 이룰 수 없다. 


사람이 자신이 즐기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에 대한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것, 나의 욕구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 가치를 더 추구하는 과정에서 '효율'이 도입된다. 


효율은 결핍이다. 더를 위해 덜을 배제 한다. 극도의 효율은 극도의 배제와 동일한 것으로 극도의 비효율을 동반한다. 대체로 현실이란 것이 충분한 2배보다, 부족한 10%가 더 절실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1을 빼앗아 99에게 준다. 


 사람은 때로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데, 취미, 놀이, 잠을 포기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자신도 포기한다. 남에 의해 포기당하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부모님이 있고, 거꾸로 자녀가 있다. 


어떤 학부모들은 자녀가 아닌 미래의 자녀에게 가치를 가지며 그 가치 추구를 위해 극도의 효율을 강요한다. 그 과정에서 자녀가 포기되기도 한다. '미래의 자녀'를 위해 '현재의 자신'을 포기하고 '현재의 자녀'를 포기시킨다. 그런 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존경심이 없다.


 성인 대학생이 중학생처럼 적성을 고민하며,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염원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가치 있다는 것도 모른다. 백이면 백이 자신이 만든 것이 없고, 있더라도 보여주지 않고 부끄러워하고, 공인, 공식을 요구한다. 달라도 그저 오만할 뿐 자신에 대한 존경심이 없다.


효율 추구는 습관이다. 심지어 게임에서도 효율을 추구한다. 더 성장하고 이기고 위치하려 든다. 그걸 방해하는 모든 것에 화내고 욕설을 한다. 게임계는 예부터 북미, 일본 서버와 한국 서버에서 그 차이를 인식하고 있었다. 게임 안에서 미국은 체험하고, 일본은 모으고, 중국은 도전하고, 한국은 성장한다. 목적 없는 성장에는 자신이 없다. 


아이들은 게임에서 욕구를 풀고 있고, 심지어 그 욕구 해소에 중독되기까지 한다. 어떤 쾌락의 절박함에 중독된 것일까? 존경심이 없어진 삶은 맹목적이 된다. 갇힌 환경에서 코카인에 더 중독되는 쥐들의 실험이 연상될 뿐이다. 


 중독이야말로 존경심이 바닥난 극단적 효율이다.  즐거움은 중독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 즐거움의 가치는 자신에 대한 가치를 상속했기 때문에 충족의 한계가 있다. 중독은 가치 추구에 자신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본디 양심, 인격, 도덕, 인간성, 희생, 원칙, 선. 인간의 모든 가치는 '존경심'에서 나온다. 문화와 신앙의 시작이지만 심히 미약한 것들에 대한 존경심. 어린아이에게서 부처를 발견하는 마음의 존경심이 필요하다. 이 존경심이란 결국 자신을 고귀하게 여김으로서 생겨나는 것이다. 


포켓몬은 누군가에게 공부해야 하는 어린이들의 정신과 코 묻은 돈을 빼앗고, 인생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콘텐츠이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가치이고, 제작자들은 그 가치를 인정하고 진지한 존경심을 보였다.


포켓몬은  본디 게임으로 시작했고, 위기를 맞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 안에는 그 성공을 '돈방석, 돈벼락'으로 보며 종사자들에게  '왜 너는 이런 거 못 만드냐?'라는 뜬금포를 던지는 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진지한 존경심이 있다. 


본디 서브컬처는 그 비효율에 대한 존경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매주 하루 무엇인가를 해도 효율의 정점에 무엇이 있을까에 따라 다른 것이 된다. 같은 게임이라도 '더 우월한 성장과 사회적 위치'라는 가상 효율 추구가 되기도 하고, 즐거움을 지속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자신에 대한 존경심은 삶의 가치를 분별하게 만들어준다. 자신보다 더 높은 가치가 있다면 삶은 결핍으로 이어지고, 결핍은 중독을 일으킨다. 그게 일과 공부라면 적어도 중독 소리는 안 들을 것이고, 중독 소리를 듣더라도 추구하는 가치가 부정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사회는 '사회적인 위치'를 추구하는 자아를 결핍으로 몰아넣는다. 


웰빙. 건강한 삶. 자신에 대한 존경심, 가치 있는 자신이 즐기는 것에 대한 존경심이 문화콘텐츠가 사회에서 성공하는 바탕이 된다.  한국형 명품, 한국형 웰빙. 20만 원짜리 발가락 마사지, 승차감보다 더 중요한 하차감은 한국이 추구하는 가치보다는 자신에 대한 존경심의 결핍을 보여준다. 결핍을 남는 돈으로 치유하길 원하고, 돈이 남는 삶을 꿈꾸며, 눈앞의 돈에 방해되는 존경심을 헐값에 팔아치운다. 그렇게 문화시민은 노예, 개, 돼지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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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토비, 포켓몬, 포켓몬 Go... 하찮은 대박이 부럽다면 먼저 콘텐츠에 대한 존경심, 콘텐츠 제작자들에 대한, 그들이 함께 향유하는 문화에 대한 존경심이 먼저다. 물론 일본이라고 '오타쿠'를 비웃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문화권 내에서는 나름 진지한 존경심이 유지되고 있다. 두근거리는 소년소녀의 심장은 우리의 것이다. 


위대한 창작자란 자신의 것, 오리지널리티가 세상에 통함을 확인한 사람이란 뜻이다. 어린 시절의 경험을 포함해서 자신이 좋아하고 느낀 것에 대한 가치를 인식하고 그 느낌/경험에 대한 완성을 추구한다. 지독하게 비'효율'적인 것이기에 대체로 부모의 반대에 부딪친다.


 더 위대한 것들. 가령 포켓몬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고 믿어지는 '널리 알려진 IP'와 '고도의 기술'이 탄생하기 위해선 종사자의 전적인 헌신을 필요로 한다. 알다시피 전적인 헌신은 높은 존경심에서 나온다. 돈으로 사는 유일한 방법은 그 돈이 존경심의 표현일 때뿐이다. 지금 우리는 이 존경심을 받는 방법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그걸로 '많은 돈을 버는 것'이다. 


돈은 가치를 느끼는 것을 즐기는 교환에 쓰일 뿐이고, 한 군데로 모이면, 그 눈에 보이는 거라곤 교환되고 있는 가치가 아니라 돈뿐이니 그게 '눈먼 돈벼락'으로 보이는 것뿐이다. 돈만 보는 눈은 돈 외의 가치를 이해할 수 없다. 돈의 가치가 자신보다 높은 사람, 자신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사람은, 남에 대한 존경심도 없다. 가장 소중한 그 돈을 주었기 때문에 자신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소비자의 횡포는 그렇게 일어난다.


 그런 횡포 하에 영혼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오직 돈으로만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기에 돈을 빼앗기 위한 오리지널리티의 도둑질과 기만이 횡횡하고, 그런 사회의 문화는 유지될 수 없다.  이제 두근거리는 우리 소년의 심장은 그들의 것이 된다. 


그래서 서브 컬처에 대한 존경심, 타인의 즐거움에 대한 존경심, 자신의 즐거움에 대한 존경심, 자신에 대한 존경심, 인권과 삶, 노동과 돈에 대한 인식, 사회, 정치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 존경심은 생업에 대한 존경심으로 연결되어 현실적 문제가 된다.


 우동을 말아도, 구두를 닦아도, 청소를 해도, 차를 몰아도, 커피를 타도, 편의점에서 일해도, 게임을 만들어도, 만화를 그려도 그 행동에 존경심을 나타내야 하고, 서로 상대가 좋아하는 것에 대하여 존경심을 나타낼 때 사회는 서로 자부심의 영혼이 담긴 최선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 멋진 '선진국'의 바닥에는 컬처, 서브 컬처에 대한 존경심이 깔려있고, 그것이 그것을 만들게 된다. 


그래서 겨우 그따위 포켓몬이나 만들려면, 사회가 그 정도까지는 바뀌어야 된다.  


원래 문화상품의 부가가치는 가치를 부여하는 문화 사회에서 나온다. 이딴 게 무슨 문화냐며 오버하지 말라고, 문화란 더 고결한 것이라 믿는다면, 그래서 가치를 전혀 못 느끼겠다면 , 그래서 이미 텄다. 포켓몬 Go 따위. 애초에 그런 무가치한 것을 부러워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겨우 돌이나 잘 깎는 것들이 영혼을 바쳐 만든 예술품에 인스타 인증사진이나 찍으러 가면 되겠다. 사람들이 당신의 가치를 부러워할 것이다. 


160724 

김동은WhtDrgon.

#게임기획자하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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