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은 항상 나에게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리 떨어진 분야였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아이돌 춤 영상을 자주 보았고 그 춤을 따라 하며 놀았지만, 전공으로 혹은 생업으로 춤추는 사람들은 나와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춤추는 사람의 길쭉하고 근육 잡힌 몸이 나와 매우 다르다고 여겼고 그들의 몸이 보여주는 균형 잡힌 스킬을 부러워했다. 대학에 입학해 벨기에 연출가 ‘제롬 벨(Jérôme Bel)’의 무용 공연 <갈라>를 접했다. 내가 생각해 온 무용과는 확연히 달랐다. 살찐 몸, 장애가 있는 몸, 아이의 몸, 노인의 몸처럼 무용수의 ‘표준’에서 벗어난 몸이 춤을 추고 있었다. 앞에 나온 퍼포머의 동작을 따라 하고, 다 같이 춤을 춘다. 물론 훈련된 무용수만큼 동작이 안정되거나 섬세하진 않다. 하지만 불안정한 몸동작 자체가 춤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댄스 네이션> 속 10대의 춤은 그 자체로 안정성과 정교함을 넘어선다. 그들의 내면에는 불안함과 충돌이 가득 차 흘러넘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경험했고, 경험할 10대 시절의 갈등이 그들의 몸과 춤으로 보인다. 그들이 겪는 고민과 경쟁, 내 안의 평가와 외부의 시선이 얼기설기 엮인 무대 장치로 드러난다. 강렬한 음악과 조명을 덧입은 무대는 춤을 사랑하지만 춤 때문에 갈등하는 10대 청소년의 내면과 그들을 둘러싼 바깥세상을 겹겹이 엮어낸다.
공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은 배우들이 표출하는 몸의 감각과 열정을 관객이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서툴지만,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 노력하는 10대의 분투가 유려하면서도 거친 동작으로 드러난다. 유려하지만 거칠고, 아름답지만 어지러운 몸동작이 뒤엉켜 어린이와 성인 ‘사이’에서 갈등하는 청소년의 모습을 드러낸다. <댄스 네이션>은 이분화된 요소가 얽히는 ‘충돌의 감각’,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분투하는 ‘열정의 감각’, 그리고 춤을 사랑하는 마음과 잘함과 못함으로 갈리는 외부의 평가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이의 감각’을 몸과 춤으로 드러낸다. 추상적인 감각이 무대와 객석의 간격을 넘어 관객에게로 흘러들어온다. 관객의 몸에 꽂힌다.
또한 무대 위 청소년은 분노와 경멸을 표출하고, 펄펄 끓는 자신의 열기를 주체하지 못해 소리친다. 24시간 춤을 생각하며 노력하는 친구가 메인 주인공으로 뽑힌 다른 친구의 실수를 덮기 위해 퍼포먼스를 대신했을 때, 그러니까 메인 주인공의 자리를 뺏은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이들은 설전을 벌인다. 공연은 10대의 갈등을 숨기거나 검열하지 않는다. 욕설과 비방 섞인 대화는 자신의 의견을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인물들의 직설적인 성격을 닮았다. ‘10대 소녀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완전히 순수하거나 멋모르지 않는다. 공연은 표백된 10대 여성의 이미지를 되돌려 있는 그대로를 보인다.
공연 속 여자아이들은 월경과 자위를 경험하며 자기 몸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감각을 가진다. 이 경험을 자기 신체를 관찰하고 긍정하는 계기로 삼는다. 이들은 감각을 체화한 자신의 몸을 부정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공연은 ‘보지’라는 단어가 끊임없이 등장하는 노래를 부르며 끝난다. 그들은 춤을 추지만, 그들의 몸은 ‘아름답거나 정교할’ 필요가 없다. 이들은 있는 그대로를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노래 가사에 등장하는 것처럼, 인물들은 자기의 성기가 ‘자신의 것’이기 때문에 제일 ‘훌륭한 보지’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여성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충돌과 갈등은 그들의 열정과 함께 성장하며, 그들이 가진 꿈과 몸은 부정당해서는 안 된다. <댄스 네이션>은 여자는 조신하고 얌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귀에 못 박히게 들으며 자라온 한국의 여성들에게 속 시원함과 돌파구를 동시에 선사한다.
연극
작 클레어 배런 Clare Barron
번역 함유선
윤색·연출 이오진
드라마터그 장지영
출연 홍윤희 이미라 윤현길 마두영 황미영 백우람 강보람 부진서 장호인
기획·제작 두산아트센터
두산인문극장 2023: Age, Age, Age 나이, 세대, 시대
2023.05.02 ~ 2023.05.20
두산아트센터 Space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