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프로젝트의 5가지 차원, 환경조성
어떤 일에 깊게 몰입해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리는 경우가 있다. 업무를 할 때, 친구들과 놀 때, 책을 읽을 때, 게임을 할 때 등 이런 순간은 인생의 곳곳에 찾아온다. 현재 클레어몬트 대학원의 교수이자 세계적인 심리학자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이 상태를 플로우(flow)라고 부른다. 칙센트미하이의 연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몰입에 빠져있을 때’의 표현을 ‘물 흐르는 것처럼 편안한’, ‘ 마치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가는 느낌’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일반 대중들에게 유명한 경험표집법 연구가 실행되기 이전인 1970년대 초, 칙센트미하이는 한 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그는 피실험자들에게 의무감이나 특정한 목표를 위해서가 아닌 그저 자신이 즐기면서 하는 모든 일들을 기록하라고 말했다. 평소처럼 해야 할 일은 모두 하되,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대해서는 절대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칙센트미하이가 연구를 통해 알아내고자 했던 것은, 일상에서 ‘몰입하는 순간’이 빠지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였다. 직장업무를 좋아하던 사람들은 직장에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을 의도적으로 피해야 했고, 심한 육체운동을 즐기던 사람들은 운동을 중단해야 했다. 설거지를 하면서 공상하는 시간을 즐겼던 여성은 설거지를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어떤 현상을 보였을까?
실험은 오래 진행되지 못했다. 사람들의 삶에서 불과 48시간(2일) 동안 몰입을 배제했을 뿐인데 나타나는 결과는 심각했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두통을 호소하며, 삶이 무기력해지고, 생각이 정리가 안 되고, 잠이 안 오거나 졸음이 쏟아져서 생활이 안 되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칙센트미하이는 이 실험 이후에도 시카고 대학의 젊은 동료인 리드 라슨(Reed Larson)과 함께 일상적인 행동이 미치는 심리적 영향을 파악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당시에는 실시간으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확인하기가 어려웠으나, 칙센트미하이는 ‘경험표집법(experience sampling method)라는 새로운 연구방법을 개발하여 이를 가능하도록 했다. 연구팀은 피실험자들이 일주일동안 들고 다닐 무선 호출기를 나누어 주었다.
이 호출기는 임의로 선택한 간격에 따라 울리는데, 피실험자들은 그 순간에 하던 일과 느낀 감정을 즉시 기록해야 했다. 정해진 시간 없이 불규칙하게 하루 7~8번씩 호출기가 울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무시하기가 어려웠다. 일기장에 기록을 하거나, 전화를 통해 연구팀의 질문에 답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방법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중간에 즉각적인 설문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신빙성 있는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들을 통해, 칙센트미하이는 사람들이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이 우리의 일반적인 통념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재에도 그렇지만 연구 당시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휴식과 여유만이 행복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그러나 칙센트미하이는 연구결과를 통해 최고의 순간들은 대개 어렵고 가치 있는 일을 이루기 위한 자발적인 노력 속에서 육체와 정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일 때 찾아온다고 말한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푹 빠져 있는 상태로 나타났다. 오히려 휴식을 취하면서 아무것도 안하는 순간에는 행복감을 느끼는 확률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휴식에는 목표와 피드백, 과제가 없기 때문에 몰입하기가 힘들다. 반면에 업무는 목표와 피드백, 과제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몰입하기가 더 쉽다. 즉, 사람들은 쉽거나 무료한 일보다 어려운 일에 깊이 몰입할 때 최선의 상태(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몰입에 대해 이렇게 강조 했다.
‘몰입은 스스로의 힘으로 행복감을 만드는 경험입니다. 죽기 전에 한번 삶을 뒤돌아보면서 충만한 삶을 살았다고 느끼기 위해서는 몰입이 꼭 필요합니다. 몰입 상태에 들어가면 본인은 행복한지 그렇지 않은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상태가 끝나면 자아가 확장되는 느낌을 갖게 되죠. 자신의 잠재력에 대한 확신은 개인의 창의력, 나아가 사회문화 발전으로도 연결됩니다.“
몰입은 어떤 영역에서든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루 종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게임에 몰입할 수도 있다.(물론 게임을 직업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아주 좋은 케이스다.) 또한 하루 종일 독서와 글쓰기에 집중할 수도 있다. 실제로 나는 중요 집필시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글을 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책상에 앉으면, 시간은커녕 배고픔조차 거의 못 느낄 정도이다.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 최소 10시간에서 12시간 이상을 집필에 몰입한다.
몰입에 있어 중요한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은 도둑질이나 살상 등 파괴적인 일에 몰입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가정과 인간관계, 여가 등에는 전혀 눈길도 주지 않고 회사 일에만 몰입한다면 이 또한 큰 문제가 된다. 때문에 몰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디에 몰입할 것인가’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세계적인 심리학자인 브라이언 리틀(Brian Little)의 ‘개인 프로젝트(personal projects)’를 참고하면 된다. 개인프로젝트란 글자 그대로 한 개인이 일상에서 목표로 하는 프로젝트이다. 리틀에 의하면 개인 프로젝트는 5가지 차원으로 구분될 수 있다. 또한 이 각각의 차원들은 인생에서 행복, 의미와 깊은 연관성을 보인다.
<개인 프로젝트의 5가지 차원>
1)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정도(self benefit)
2) 성공 가능성(Efficacy) : 프로젝트가 성공할 가능성에 대한 개인의 지각
3) 재미(fun)
4) 타인의 지지(support)
5) 통합(integrity) : 자신의 개인 프로젝트가 자신의 정체성과 얼마나 부합하는지
개인 프로젝트의 5가지 차원이 많이 부합될수록 몰입하기에 좋은 과제가 된다. 나의 예시를 들자면, 책을 쓸 때와 강의를 할 때 깊이 몰입함을 느낀다. 수익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 큰 도움이 되고, 이미 수차례 성공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도 높다. 책을 쓰는 것은 재미와는 거리가 멀지만, 출간 되는 순간에는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낀다. 책을 쓰고 강의를 하면 수강생, 가족, 친구들, 독자 등의 지지를 받는다.
내 인생의 사명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사랑하게 하고, 의미있는 삶을 추구하도록 돕는 것’이다. 때문에 책을 쓰고 강의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나의 정체성과 완전히 일치되는 일이다. 당연히 몰입하기에 최적의 주제다. 이뿐만이 아니다. 운동을 할 때도 깊이 몰입하는 경우가 많다. 땀을 흘리고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당연히 나에게 도움이 되고, 재미있기 때문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몰입할 때가 많다.
인생을 살면서 어떤 일에 몰입할 것인지, 어떤 것에 몰입하고 싶은지 생각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몰입하여 쓰는지가 행복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이 하는 일에 몰입할 수 있다면 전문성을 갖고 성과를 내기가 수월해진다.
어떤 분야에 몰입해야 하는지를 알아봤다면, 어떻게 몰입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자연스럽게 몰입이 되면 물론 좋겠지만, 몰입하기 힘든 상황에서 몰입을 만드는 과정은 많은 성과와 행복을 창출해내기도 한다.
몰입을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경이다. 심리적으로 자신을 컨트롤하여 몰입을 경험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런 숙련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가 추구해야할 방법은 ‘환경주의자의 기술’이다. 특별하게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방법은 적극적인 활용이 가능하다. 수많은 방법들이 있지만 여기에서 소개할 방법은 가장 중요한 3가지이다.
‘프로젝트 데드라인 수립, 스마트폰으로부터 멀어지기, 정신을 흩뜨리는 사람들을 멀리하기’
첫 번째, 목표 설정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도 이미 이야기했지만, 시간을 한정시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신경을 한 가지에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다. 수많은 연구결과들이 데드라인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현실적인 기준 안에서 데드라인을 정하라.
두 번째, 스마트폰은 몰입의 가장 큰 적이다. 스마트폰을 옆에 두고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것은 ‘나는 이 일에 몰입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연락이 오면 언제든 받을 준비가 되어있다’ 라고 무의식에게 이야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일을 하면서 SNS 혹은 메신저를 습관적으로 들여다보는 경우가 있다. 아주 잠깐의 시간일지라도 이것는 몰입상태를 깨는 장본인이다.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몰입을 깨는 외부 방해가 30초밖에 되지 않더라도 다시 몰입 상태에 빠지려면 20분이 걸린다. 스탠퍼드의 뇌과학 교수 비노드 메논은 공상과 집중 상태의 전환이 섬엽(insula)이라 불리는 뇌 영역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영역은 두 상태 사이의 스위치처럼 작동한다.
메논은 이어진 연구에서 이 스위치를 자주 사용할수록 피곤함과 졸림을 자주 경험하고, 몰입에 빠지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공부나 일을 하면서 스마트폰을 자주 볼수록 쉽게 피곤해지고, 몰입에 빠지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적으로 중요한 연락을 받아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겠지만, 효과적인 몰입을 위해 현실적인 한도 내에서 스마트폰을 최대한 멀리해두는 것이 좋다.
세 번째, 몰입을 깨려하는 사람들을 멀리해야 한다. 공부를 할 때는 스마트폰과 멀어지고, 불필요한 약속들을 잡지 않아야 한다. 만나자고 하는 사람 다 만나면서 몰입을 이끌어낼 수는 없다. 직장에서 일에 몰입하고 있을 때마다 쓸데없는 말을 걸거나, 중간중간 잡일을 주는 상사가 있다면 불편하더라도 정확히 말해두는 것이 좋다. 그러기에 힘든 상황이라면, ‘제가 지금 제일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서, 이 일이 끝나는 대로 최대한 빨리 처리해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해야 한다.(물론 상황에 따라 바로 해줘야 하는 일도 있다. 직장에서는 최대한 융통성을 발휘하라.)
회사에서 도저히 몰입을 할 수가 없는 분위기라면 진지하게 이직도 추천한다. 몰입이 안 되는 환경이라면 전문성을 쌓기도 어렵고, 일 자체에 애정을 느끼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보면 일 자체의 난이도가 어려운 경우보다 몰입이 불가능한 환경인 경우가 많다. 이는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커리어적으로도, 인생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몰입을 위한 환경설정이 끝났다면, 이번에는 해야 할 일들을 몰입하기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게임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게임은 인간의 심리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프로그램이다.
게임에서는 레벨 1부터 엄청나게 강한 몬스터를 잡으라고 시키지 않는다. 가장 약한 몬스터를 잡도록 시킨다. 레벨이 오르면 점점 더 강한 몬스터를 잡게 해주고, 보상도 점점 커진다. 만약 처음부터 가장 쎈 보스몹을 잡으러 간다면 절대 이길 수 없다. 하지만 하나씩 몬스터를 잡아가면서 경험치를 쌓고, 아이템들을 모으고, 기술들을 배운다면 보스몹을 잡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이때의 보상은 엄청난 뿌듯함과 최고의 아이템들이다.
우리도 인생에서 크고 중요한 프로젝트들을 게임처럼 하나하나의 세부목표로 나눌 필요가 있다. 가장 쉬운 목표부터 하나씩 처리해 나가고, 실력이 쌓이면서 다음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몰입을 할 때에는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은 목표’가 가장 좋다. 너무 쉬워도 몰입하지 못하고, 너무 어려우면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내 수준에 맞으면서도 적당히 힘든 목표를 정해야 한다. 적당히 힘든 목표를 정하기 위해서는 이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메타인지가 필요하다.(메타인지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한다.)
요약정리 :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안한 상태보다, 깊게 몰입하는 순간에 행복을 느낀다. 반대로, 삶에서 몰입할 수 있는 순간을 추출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무기력해지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몰입을 했을 때 행복과 의미를 동시에 느끼려면 브라이언 리틀이 제시한 개인프로젝트의 5가지 차원을 기준으로 삼아라.(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정도, 성공 가능성, 프로젝트가 성공할 가능성에 대한 개인의 지각, 재미, 타인의지지, 통합) 몰입할 주제를 정했다면,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라. 마지막으로 게임의 원칙을 활용하여 세부적인 목표를 정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