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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세빈 Sep 19. 2020

공부 좀 그만하세요. 독서하세요.

공부와 독서는 다르다.

1-3 책은 공부가 아니다.

  공부를 하는 것과 책을 읽는 것은 다르다. 공부는 지식을 습득하고 현상에 대한 이해에 목적을 두고 있다. 어떠한 일을 할 때 알지 못하면 일을 그르치게 되고 실수하기 마련이다. 실수를 줄이고 더 능숙하게 일을 하기 위해서 공부를 한다. 필요한 자격을 얻기 위해서도 공부를 한다. 시험에 합격하여 좋은 대학에 가기를 희망하며 공부를 하고 자격을 갖추기 위해 자격증 공부를 한다. 목표가 있으니 그것을 이루기 위한 조건부 공부를 하는 것이다. 과거 선비들과 같이 소양을 쌓고 자신을 찾는 과정을 배제한채 그저 시험 통과만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공부는 실력을 증명받아야 하고 평가 받아야한다. 시험을 보고 점수가 나오면 순위가 매겨진다. 그러나 독서에는 순서가 없다. 다양한 장르가 있고 관심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쟁이 없으니 중요도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당장 해야할 일들과 공부할 내용을 모두 암기를 하려면 책 읽은 시간 10분도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근 몇 년사이에 카페형 독서실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것이 아닌 독서실에서 커피와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것이다. 카페에서 커피나 음료를 하나만 시키고 장시간 앉아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시각이 있었다면 지금 그런 비판을 할 수 없도록 아예 독서실 자체를 카페형으로 만들어 이용하게 하는 것이다. 카페형 독서실을 자주 이용하면 보이는 풍경이 남녀노소 할 것없이 책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책들은 공부를 위한 책이다. 대부분 이용하는 사람들을 책을 읽으려고 독서실을 찾지 않는다. 공부를 하려고 독서실을 찾는다. 공부가 절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공부는 인생에 있어 평생 필요한 부분이고 새로운 것을 알아나가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응원하고 격려하고 존경한다. 그저 공부가 공부로 끝나는 것이 안타깝다.

  공부 중독은 다른 중독보다 훨씬 유익하다.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자기의 인생과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는 아주 좋은 중독이다. 하지만 이 공부 중독에는 독서가 빠져있다. 교재에 쓰여있는 사실만 머리 속에 외우고 생각하지 않는다. 암기가 되지 않는다고 머리를 감싸지만 시험을 치루고 나면 사라질 지식들이다. 생각을 동반하지 않은 공부는 일회용 종이컵에 지나지 않는다. 한 두 번 물을 떠 마시고 난 뒤에는 쓰레기통에 버리는 그런 지식들인 것이다. 이 공부 중독은 지극히 일회성이다. 자격을 갖추고 나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지식들, 시험을 잘 치루든 못 치루든 시험 이후에는 잊어버리는 지식들, 교육으로 흥한 나라가 교육으로 망하고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 기초지식에 대한 조사를 보자면 점차 기초학력 미흡 학생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해력 부족, 수리력 부족, 문제 이해도와 해결력 부족 등 기초적인 초등 교육에 필요한 부분이 충분히 학습되지 않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중,고등학교에서도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공부를 못해서 국포자, 수포자, 영포자, 과포자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가장 기본인 독서가 되지 않아 독포자가 생기고 이로 인해 공포자가 생기는 것이다.

  독서는 공부의 상위 단계이다. 독서가 기반이 되지 않으면 반드시 이후 단계에서 문제가 생기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

  문자가 생긴 이후로 문명은 빠르게 발전되어 왔다. 과거에 발견된 사실들을 기록해 나가면서 점차 지식의 확장과 생각의 확장이 되었고 다양해졌다. 출생을 하면서 신분이 정해졌던 시대에는 자유롭지 못하고 제한이 많았다. 노비는 노비로 살다 노비로 살다 죽는다. 양반은 양반으로 살다가 양반으로 죽는다. 왕족은 왕족으로 살다 왕족으로 죽는다. 큰 공을 세워 신분 상승이 되는 경우는 적었고 교육의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알지 못하면 멸시 당하고 무시당한다. 무식하다며 천대 받는다. 또한 신분이 낮은 자가 지식을 알고 있으면 천한 것이 글을 읽고 세상의 이치를 한다고 하여 죄라고 하였다. 결국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신분의 족쇄는 벗을 수 없었다. 

  지금은 그 옛날보다 훨씬 평등의 기회가 주어졌고 교육의 질도 향상되었다. 세계의 역사를 기준으로 보자면 대한민국은 이제 태어난 갓난아이와 마찬가지다. 민주주의 공화국이 된지 이제 겨우 100년이다. 왕정 사회에서 민주주의 국가로써 변화가 생겨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일본으로부터 강제 점령을 당했던 시가, 이데올로기의 충돌로 인한 민족 상잔의 아픔, 가난에 대한 굶주림과 울분, 독재의 위협에 대한 피의 투쟁, 강대국들의 압력 등 스스로 생각을 이야기하고 소리 내어 외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은 그리 먼 과거가 아닌 것이다. 이 모든 자유와 변화와 생각의 혁명은 모두 책으로부터 전해지는 막강한 힘에 있다.

  읽지 않으면 깨어날 수 없다.

  읽지 않으면 싸울 수 없다.

  읽지 않으면 막을 수 없다.

  읽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

  읽지 않으면 자유로울 수 없다.

  이미 어린 나이부터 스마트폰과 게임, 영상미디어에 노출이 많이 된 아이들은 책만큼 지루한 것이 없다. 가만히 앉아서 글자를 읽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유발되는 현상이고 몸이 간질 거릴 것이다. 장난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사고를 치는 것보다 앉아서 유튜브 영상이나 만화 영화를 시청하는 것이 더 조용하고 말썽을 부리지 않기 때문에 많은 부모들이 활용한다. TV의 바보상자 타이틀은 이미 스마트폰으로 옮겨진 것은 기정 사실이다. 어른들도 스마트폰을 손에 떼어내지 않고 심지어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보는 스마트폰에 나오는 글들이나 영상물들이 그렇게 중요한 것들도 아니면서 말이다.

  부모로부터 책을 읽으라는 소리는 자주 들어보았을 것이다. 체감상 무엇에 대해 지시받으면 괜한 반발심이 생긴다. 숙제를 하라고 하면 더 놀고 싶어지는 그런 심리와 같은 것이다. 부모가 책을 읽지 않으면 자녀도 책을 읽지 않는다. 자녀에게만 책을 읽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독서 시간을 만들어 그 시간에 함께 책을 읽고 책에 대해 토론하며 사고력과 상상력을 길러주는 것이 책을 읽으라고 잔소리 하는 것보다 더 좋은 효과를 발휘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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