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개인의 취향 vs 브랜드의 취향
한 식품 브랜드의 A 대표는 자신의 직감을 철저히 믿는 사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에도 시장 트렌드를 빠르게 분석하여 론칭한 식품이 큰 매출을 만들어낸 성과가 몇 개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신규 브랜드 론칭 방식은 간단했다. 그가 시장분석을 하고 새로운 제품 카테고리를 정하면 브랜드 이름과 패키지 디자인을 센스 있게 만들어 오라고 직원들에게 하달했다.
하지만 브랜드 방향도 없이 내려진 지시 때문에 직원들은 골머리를 앓았다. 참고할 만한 레퍼런스 또한 전달된 바 없었다. 그들은 대표가 좋아하는 취향의 디자인을 고민하고 결국 이전에 만들었던 브랜드의 패키지 디자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잘 나가는 일본 브랜드 제품의 디자인을 약간 베껴오는 안전한 선택지를 택했다. 패키지 디자인 옵션이 몇 가지 완성되고 A 대표는 직원들에게 어줍지 않은 디자인 피드백을 하기 시작했다.
“별로 아름답지 않은데?”
“글자가 너무 큰 거 아냐?”
“좀 고급스럽게 바꾸자”
“기능 얘기를 더 많이 써놓자”
직원들은 아름다운 게 무엇인지, 글자가 얼마나 작아져야 하는지, 고급스러운 게 무엇인지 의아하기만 하다. 이러한 회사의 직원들은 의미 없는 일을 자주 하고 기운이 빠진다. 하지만 이렇게 시장에 내놓은 제품이 어느 정도 잘 팔리는 경우 문제는 더욱 악화된다.
A 대표는 성공의 요인을 본인의 직감이었다고 생각했다. 패키지 디자인 또한 본인의 취향이 소비자들에게 잘 들어맞았다는 착각에 빠졌다. 그는 시장분석과 제품개발에 능력이 있는 것이지 디자인적 감각이 탁월한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패키지 디자인은 A 대표의 사적인 취향이 아니라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약속하고자 하는 방향과 경험을 담아야 한다. 이것들을 전달함에 있어 제품이 어떤 박스에 배송되는지, 패키지의 촉감은 어떤지, 그것을 사용할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마감상태는 어떠한지 구체적으로 고민해야만 한다.
지난 2021년 론칭된 ‘베뉴먼트’라는 브랜드가 있다. 이 브랜드의 소개는 다음과 같다.
“집 안과 밖의 모호한 경계가 주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브랜드입니다. 편안하고 덜 꾸며진 것이 주는 아름다움에 영감을 받아 90’s의 아이코닉한 스타일을 연출하고 내추럴한 소재로 재해석하여 몸에 닿는 부드러운 촉감과 오가닉 한 실루엣은 외출복과 홈웨어의 경계를 허물어 어디에서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이끌어 냅니다.”
이러한 베뉴먼트의 방향은 제품과 패키지 디자인에서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편안함과 덜 꾸며진 것에서 이끌어낸 자연스럽고 일관된 디자인 요소, 오가닉 한 소재와 상품페이지 연출은 베뉴먼트의 방향을 애정하는 고객들의 마음을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내가 진정 브랜드라고 칭할 수 있는 브랜드들은 어떠한 기능에 탁월한 제품을 만들었다고 패키지 디자인에 강하게 어필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이 중요하게 믿는 것은 무엇인지, 왜 존재하는지를 알릴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시각적, 촉각적 요소에도 일관성 있게 반영한다.
브랜드를 구성하는 제품, 디자인 그리고 언어 등 모든 요소는 단순히 대표 개인의 사적인 취향이 아니라 소비자와 약속한 브랜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이자 철저히 지켜 나가야 할 '약속'인 셈이다.
만약 지금 당신이 신제품 패키지 디자인 옵션에 대해서 “아름답지 않다”라는 피드백을 직원들에게 주고 싶다면, 당신의 브랜드가 지향하는 '아름다움'이란 과연 무엇인지부터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하고 정의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사진: 베뉴먼트
글쓴이: Haus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