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과 이끼와 고양이의 집

제주 '하우스 오브 레퓨즈'

제주도 애월읍 유수암리, 바다가 보이는 언덕.

ⓒ허남설

2000년대 초, 누군가 이 터에 제법 큰 식당을 하나 내려고 했던 모양이다. 사업이 뭐가 잘 안 됐는지, 회색 콘크리트 구조체만 덩그러니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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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는 제주의 비바람을 맞으며 20년 넘게 그 자리에 있었다. 그사이, 불현듯 나타난 인공체에 놀라 잠깐 숨죽였던 기운들이 다시 이곳에 스며들었다. 나무랑 풀이랑 이끼 같은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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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이 건축물을 다시 매만지게 된 사람, 건축가는 그 생명력이 너무 좋았나 보다. 풍화한 콘크리트 틈새에 꾸린 서식지 중 한 곳만은 끝까지 지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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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제주 날씨가 궂을 때다. 맑은 날을 겨우 건져 월요일에 찾았더니 방문객은 나 하나뿐. 고양이 하나가 제집처럼 드나들었는데, 어쩌면 그는 오래된 주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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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부디 이 장소가 이 친구에게 낯선 곳이 되지 않았기를, ‘최소한의 개입’을 추구했던 건축가의 의도를 너그럽게 이해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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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소의 이름은 '하우스 오브 레퓨즈House of Refug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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