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항상 좋았다

그때가 좋았지

by 와이 주

신호 대기에 잠시 멈춰 섰다. 두 모녀의 시선에 꽂힌 차창 밖 풍경은 딸아이의 회상모드에 젖은 대화에서 시작되었다.

“엄마, 나 저때로 돌아가고 싶어. 유치원 때로. 유치원 차에서 내리면 엄마가 마중 나와서 기다려 주잖아. 그때로. “

키 작은 아이들이 유치원 차량에서 하나 둘 내릴 때마다 두 팔을 벌려 엄마들이 환한 미소로 아이를 맞이하고 있었다. 유치원생의 시선으로 보면 마치 출근 후 퇴근 한 느낌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느낌이었을까? 엄마의 시선으로는 격하게 환영하지만 또 다른 육아의 시간으로 접어들 테니 전투모드가 될 것이고.

그 풍경과 상반된 듯 시간에 쫓기듯 우리는 수영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하물며 걸어갈 수 있는 거리지만 시간의 효율성에 기대어 엄마가 픽드롭을 자처하는 상황에서 엄마의 마중을 회상하며 딸은 추억에 젖었다.

“엄마, 유치원 때가 좋았어 “

“왜? 그렇게 생각해?”

“뭘 배우지 않아도 되고, 그냥 즐겁잖아 “

“그때도 너는 뭘 배우고 있었는데.. 세상에 태어자나마자 배웠는데… … 아마 중학교 올라가면 초딩때가 좋았다고 할걸 “


생각해 보면 중학교 때는 “초딩때가 좋았지”라고 했고,

고딩 때는 “그나마 중학교 때는 생각 없이 즐거울 때였어”라고 호기롭게 말했던 것 같고,

대학 때는 “고딩 친구들이랑 공부는 안 했어도 공부 핑계 대면서 놀러 다녔을 때가 그립다”라고 했던 것 같고,

취업 준비 할 때는 “대딩 때가 그래도 좋았다”라고 인생을 다 아는 듯 말했고,

입사하고 본격적으로 경제력을 장착했을 땐 “학생일 때가 뭐니 뭐니 해도 좋았다. 부모님께 용돈 받으면서 다니고”라고 말했다.

애 키우면서는 ”직장 다닐 때가 호사였다 “라며 과거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노년의 시간을 보내는 부모님이 가장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애 키우고, 뭐라도 일궈보려고 아등바등할 때가 좋았지”, ”젊을 때가 좋은 거다 “




항상 현재의 상태는 왜? 덜 행복하고, 힘든 것일까? 과거가 될 오늘을 회상해 보면 더 좋았던 시간이 될 텐데 말이다. 인간은 오늘이 가장 힘든 날일까? 이 달에 읽었던 고전 카뮈의 [시지프 신화]가 삶 속에 계속 소환되는 요즘이다. 신들을 기만하고 공경에 빠트려 신들의 노여움을 산 시지프스는 끝없이 바위를 언덕에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게 된다. 바위를 언덕 위에 올려놓으면 다시 굴러 떨어지고 시지프스는 또 바위를 언덕에 올려놓는다. 우리의 삶처럼 매일 출근하기 싫지만 몸을 일으켜 하루를 살아내는 직장인으로서의 시지프스도 존재하고, 반복되는 육아로 지친 엄마로서의 시지프스도, 공부가 제일 싫지만 해야 하는 일상을 사는 수험생 시지프스도, 학원에 가기 싫지만 끌려가듯 가야만 하는 학생들도, 하루종일 엄마와 집에서 뒹굴거리며 놀고 싶은 유치원생으로서의 시지프스도.. …[시지프 신화]는 카뮈의 부조리 시리즈 중, 부조리의 시론을 철학적 에세이로 담은 책이다. 공부하듯 필사를 해가며 읽었음에도 다 이해가 부족하였던 책이었지만, 내가 이해한 바로는 삶은 원래 부조리한 것이다. 하루하루 소진하며 살아가는 가운데 우리는 존재하며, 구원을 호소하지 않은 채 아무 의미 없을 것 같은 삶의 책임을 감당하려는 의지를 통해 인간 존엄성을 회복하는 것이라 이야기한다. 산다는 것은 부조리한데 살아 내는 것이라고 카뮈는 아주 건조하게 말해주는 듯하다. 오히려 허무맹랑한 희망은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것일 수 있으며, 자기 체면에 정작 오늘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마치 행복은 내일 있는 것처럼 오늘을 희생하게 만든다는 말이 꽤 설득력이 있었다.




삶은 힘든 게 맞다. 그럼에도 지난날들을 생각하면 좋았다. 하여 삶은 항상 좋았던 것이 아닐까? 지나고 보면 그 힘든 가운데 우리는 좋은 것들을 치열하게 채워가며 살아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