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자 시점
두 여인이 있습니다. 두 여인은 나이가 같습니다. 한 분은 저를 낳아 기르신 엄마이고, 한 분은 결혼을 통해 맺어진 엄마인 ‘시어머니’가 있습니다. 나에게 다가 오는 두 분의 “mom”으로서의 삶은 사뭇 다르게 전달되곤 합니다.
나의 엄마는 유독 혼자 잘 지냅니다. 그리고 유독 자기애가 강합니다. 아프면 아주 빠르게 병원을 다니시고, 먹고 싶거나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친구들과 어울려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다닙니다. 하물며 동네 인싸라 전화기가 쉴 틈 없이 울려댑니다. 엄마를 만나려면 미리 선약이 필수입니다. 그럼에도 엄마 자신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어김없이 전화를 해서 요구사항을 말합니다. 필요한 물품을 인터넷을 통해 구매해야 하거나 생활 속에 업무적, 행정적 절차가 필요하면 도움을 요청합니다. 여느 엄마들처럼 딸들이 걱정되거나 궁금해서 전화를 하는 경우는 드문 듯합니다. 대부분은 뭔가 부탁하거나 요청할 것이 있을 때 전화를 걸어오는 편입니다. 반대로 저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싶다가도 밥은 잘 먹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생존은 확인하고 살아야 하겠기에 안부를 묻고, 뜸한 듯싶으면 찾아가 함께 외식을 하곤 합니다. 본인에게 쓰는 돈은 아끼는 것 같지 않습니다. 적당히 누리는 것 같습니다.
나의 시어머니는 유독 혼자 못 지냅니다. 그리고 유독 걱정이 많습니다. 매일 자식들과 통화를 합니다. 밥은 뭘 먹었는지? 어디 있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등의 반복되는 일상의 이야기를 거르지 않고 나눕니다. 이미 혼기를 넘은 막내딸을 데리고 살고 있으며, 그 막내딸의 끼니와 남편(나에게 시아버지)의 끼니를 걱정하는 일상을 보냅니다. 허리와 다리가 불편한 관계로 혼자서는 외출이 힘들어 집에서 잘 나가지를 못합니다. 하여 시아버지의 케어를 받으며 한의원을 다니시고, 산책을 하고, 운동을 합니다. 아들(나의 남편)이 길 건너 아파트에 살고 있기에 오며 가며 살림살이며, 어른들이 힘들어하는 것들을 챙깁니다. 시어머니는 경제적 어려움은 없습니다. 아버님의 연금과 본인명의의 건물에서 나오는 월세가 있기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습니다. 경제적 여유에 비해 아주 검소한 편입니다. 적당히 누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결혼 후, 너무 다른 두 여인의 자식으로 살아온 탓에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남편은 장모가 이해가 안 갔고, 나는 시어머니가 이해가 안 갔습니다. 남편은 엄마라 함은 무조건 “모성애”로 똘똘 뭉쳐져 있어야 하고, 자식이 1순위여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나는 성인이 되면 부모로부터 완전 분리가 되어야 하고, 독립된 한 개체로서 살아야 하는 것이라 여겼다기보다 그렇게 커버렸습니다. 능력이 출중한 부모의 케어가 있었다기보다 스스로 대학생이 된 이후, 어떻게든 경제적 독립이 되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대부분의 고민이나 문제, 집안의 대소사를 어머니의 허락과 의논을 구했습니다. 물론, 시어머니의 아바타처럼 굴지는 않았지만 어떤 결정마다 어머니의 의사를 물었습니다. 나의 모든 고민은 엄마의 의사와는 무관한 것이었습니다. 결혼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모든 경비가 남편은 부모님으로부터 장만된 것이었고, 나는 나의 경제력에서 장만되어 출발하였습니다. 다행히 나의 경제력은 결혼을 위한 절차상 기울어진 저울이 아니었기에 당당함을 지키려 애를 썼습니다.
시어머니가 제일 자주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너희들끼리 잘 살면 된다. 우리 신경 쓸 거 없다.” 그 말은 거짓말이었습니다. 결혼한 아들의 도리는 왜 그렇게 자주 있는 것인지? 집안에 손님이 오거나, 인근에 사는 친척들에게 인사를 거르지 않아야 하는 거추장스러운 의식은 명절마다 반복되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는 매일 전화를 하셨고, 가까이 살면서는 매주 아이와 시댁 방문을 은근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자식에게 준 것이 많은 부모는 너무 당연하게 그런 요구를 합니다. 남편은 불만이지만 대부분은 따르려고 노력을 합니다.
내가 받은 것도 아닌데,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 나는 매번 받은 게 많은 자식이 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여 부모님이 하나를 주면 하나를 드렸습니다. 어쨌든 받는 쪽은 주는 쪽보다 어깨를 조아리기 마련이기에 거저 받지 않았습니다. 그 균형과 조화를 지키려 애쓰며 세월을 보냈습니다. 나라는 사람은 마음이 닿지 않으면 행동이 힘듭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 행동은 하되 불편한 사항은 최대한 남편과 조율을 하였습니다.
어쨌든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들은 부모에게 의지하는 대상에서 부모가 아들에게 의지하는 대상으로 바뀌었습니다. 남편은 아주 많이 성장했거든요. 부모로부터 독립적으로 살아냈습니다. 이제는 너무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계시다는 점이 버거웁기도 합니다. 받은 게 많은 아들은 뭔가 보답하는 심정으로 열심히 효도를 합니다.
자주, 두 여인(엄마와 시어머니)에 대해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혼자 있는 엄마는 유독 바쁘고, 즐겁고, 자기애를 지키며 잘 지내는 듯 보이는데, 시어머니는 자식 걱정을 입에 달고 살며, 아직도 자식의 끼니와 남편의 끼니에 일상을 할애하고, 모든 일을 자식과 공유하고, 남편과 자식에게 의지하고 계시는 것 같다고. 그렇다고 더 많이 행복해 보이시지 않는다고. 단 한 번도 자식을 떼어놓고 삶을 영위하신 적이 없는 것 같다고.
한 때, 나는 우리 엄마는 왜? 그럴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식이 밥은 먹고 다니는지? 힘든 일은 없는지? 묻지 않고, 본인이 힘들면 연락해서 해결해 달라는 식이라 철이 없는 엄마라 여겼습니다. 어쩌면 독립적으로 키워진 자식들이 자신보다 훨씬 믿음직스러워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의 엄마는 사랑한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잘합니다. 마치 진심이 아닌 것처럼. 오늘도 “막내 공주, 사랑해~~”라고 전화를 끊습니다. 오늘도 시어머니는 여유가 없는 목소리입니다. 더 가진 것이 많은 분이시지만, 더 많이 즐기지 못하는 분이시라 안타까웠습니다.